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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 보는 대한뉴스(25) - 신군부도 못 한 일, 주문식단제

dolf 2024. 5. 1. 08:11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잡아서 고문하고 암살하고 심지어 대놓고 학살까지 해댔던 서슬 퍼런 군사정권, 그리고 신군부 시대. 하지만 그 철권 통치 시대에도 정권이 마음대로 못 하는 일은 있었습니다. 민주화 운동? 노동 해방? 오히려 이런 거창한 것은 두들겨 패기 쉬웠죠. 정권이 마음대로 못 컨트롤한 것은 바로 국민의 '일상적인 삶의 양식' 그 자체였습니다. 미풍양속을 바로 잡는다, 절약과 검소를 일상화한다는 명목으로 정부는 여러모로 국민의 삶에 간섭하려 들었지만 그 시도 가운데 대다수는 국민의 커다란 반발에 직면하고, 최소한 불복종하는 소극적이고 지속적인 저항에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명분만 따지면 타당한 것도 있었지만, 국민의 삶의 양식은 그런 이성적인 명분만 갖고는 바뀌지 않죠.

 

사실 대한뉴스에는 이러한 국민의 삶의 방식을 정권에서 의도적으로 바꾸기 위해 여러모로 시도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다수는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남게 되었죠. 오늘은 그 가운데 하나,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를 위한 정부의 나름 노력이라 할 수 있는 '주문식단제' 이야기를 해봅니다. 사실 이거 말고도 장발 단속/미니스커트 단속, 가정의례준칙 이야기같은 정부의 실패 사례는 꽤나 많은데 이건 나중에 천천히,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죠. 아, 그거 말고도 드물게 성공 사례도 있는데 그것도 나중에.


 

 

일단 이 이야기를 하려면 당연히 '주문식단제'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사실 그렇게 복잡한 것은 아닙니다. 이걸 한 줄요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반찬은 따로 돈 내라'


사실 한식, 정확히는 정식 계통의 음식은 반찬이 꽤 많이 붙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도 한정식집에 가면 깔리는 반찬은 많은데, 한정식의 FM이라 하는 전주나 여기만큼 세련되지는 않아도 반찬의 수로는 절대 못 진다는 남도에 가면 지금도 '상 단위로 바꿔주는' 집들이 있을 정도죠.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밥의 양은 변함이 없는 만큼 한식 정식의 특성상 당시에도 남는 반찬이 버려지는 것은 꽤 많았습니다. 이걸 정부가 보기에는 꽤 마음이 불편했는데, 하물며 겨우 '통일벼 맛 없다, 대머리 색휘야!'라고 말하기 시작했던, 겨우 배고픈 문제가 본격적으로 해결되기 시작했던 1980년대 초반이기에 더욱 버려지는 음식이 아까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음식을 남기지 말자고 캠페인을 벌여본들 사람의 식생활이 쉽게 바뀌지는 않죠. 그래서 꺼내든 것이 어느 정도 강제성을 드러낸 이 주문식단제입니다. 해당 음식 메뉴의 기본 음식은 원래 가격에 나오지만, 거기에 나오는 반찬을 따로 옵션으로 돈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대충 이런 구성입니다.(사진 출처: 이데일리)

 

조금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면... '뚝배기 불고기 쌈밥 정식'이라는 메뉴를 시킨다고 가정합니다. 이 메뉴를 시키면 기본적으로 나오는 것이 뚝불, 밥 한 공기, 상추 몇 장, 김치 한 접시 뿐입니다. 고추는요? 깻잎은요? 마늘은요? 다 하나 시킬 때 마다 돈을 따로 내야 합니다. 상추도 더 시키면 추가 비용, 김치도 한 접시 단위로 추가 비용을 받게 됩니다. 이걸 다 메뉴판에 기재해 놓는 것이죠.

 

물론 이 세상의 모든 대한민국의 음식이 한 상 꽉 차게 반찬이 나오는 것은 아니죠. 예를 들어 설렁탕이나 순대국같은 것은 반찬이라고 해봐야 김치와 깍두기, 잘해야 고추 정도죠. 짜장면으로 가면 단무지와 양파가 전부구요. 그래서 이런 음식까지 타깃으로 한 것은 아니며 실상은 보통 한식 정식으로 불리는 계통의, 상다리가 부러진다 하는 음식이 주된 대상이었습니다. 실제로 대한뉴스를 봐도 나오는 것은 이런 한식 정식집들이죠.

 

사실 명분은 좋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도 줄이고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먹지도 않는 반찬값까지 낼 필요 없이 자기가 먹는 반찬만 제 값 주고 먹으면 더 싸지 않느냐 하는 말이니까요. 진짜 그렇게 돌아갔다면 말이죠. 그렇지만 총칼로 사람은 학살할 능력이 있는 전대머리라도 총칼을 들이대기는 어려운 사람의 밥 먹는 습관을 자기 생각대로 통제하는 것은 할 수 없었습니다. 전대머리의 빛나는 머리보다 시장은 훨씬 더 고레벨(?)이었죠.

 

먼저 음식점에서 가격을 안 내렸습니다. 나오는 반찬 수는 줄었는데 가격은 그대로 받는 것인데, 업주들은 '인건비가 올라서 그렇다' 등 별의 별 이유를 다 댔습니다. 원재료 국제 시세는 떨어지는데 인건비 올랐다고 가격을 안 낮추는 요즘의 공산품 가격을 보고 똑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는지요? 세상은 이렇게 돌고 돕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주문식단제가 가격 인상을 부추긴 꼴만 되고 말았습니다.

 

먹는 사람 입장에서도 먹던 습관이 쉽게 바뀌는지요? 특히 '특식'으로 생각하는 설렁탕이나 짜장면같은 음식이 아닌 일반적인 정식류에 대해서는 반찬이 한 상 가득 차야 마음이 풍성해진다고 믿는 사람이 지금도 많은데 과거에는 얼마나 더 많았겠습니까. 당연히 반찬을 안 내오고 돈 더 내라고 하는 주문식단제 식당들에 뭐라고 하고 보이콧을 했습니다. 그냥 억지로 따르고 추가 반찬을 돈을 더 내 먹는다고 해도 늘어난 부담에 이 제도를 꺼낸 전대머리를 잘근잘근 씹을 수 밖에 없었죠.

 

이러니 슬금슬금 주문식단제를 안 따르는 곳들이 늘기 시작했고, 1983년 7월에 시작한 이 제도는 4년도 못된 1987년 4월에 그 제도 완화를 꺼내들며 사실상 주문식단제 폐지 수순에 들어 갔습니다. 일반 식당에서도 기본 제공 반찬 제공 한도가 크게 늘었고, 관광지 식당은 아예 그 제한을 폐지했습니다.

 

좋은식단제에서 하라고 권장하는(?) 메뉴별 반찬 수입니다. 그런데 이거 따르는 거 보셨나요?(내용 출처: 구로구 보건소)

 

주문식당제가 사실상 무력화된 이후에도 정부의 뒤끝(?)은 이어졌습니다. 1988년부터는 음식물 쓰레기 감소보다는 위생에 초점을 맞춰 반찬 재사용 금지 등을 내세운 위생식단제를 내세웠으나 역시 흐지부지되고, 1992년부터는 이들을 나름 짬뽕한 좋은식단제를 꺼내들어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서 뭐 그냥 선언적인 단계에서 그치고 있습니다.

 

사실 주문식단제의 흔적(?)은 지금도 있기는 합니다. 식당 가운데 '자율식당'으로 부르는 카페테리아식 식당이 그렇습니다. 수도권에서 이걸 보려면 죽전휴게소에 가시면 됩니다. 다만 자율식당은 주문식단제와는 좀 다른데, 주 메뉴라는 것이 아예 없고 모든 것을 전부 하나씩 돈을 주고 사는 것입니다. 즉 '뚝불 쌈밥 정식'이 아니라 뚝불 따로, 밥 따로, 상추도 따로 시키는 것입니다. 이건 그나마 진짜 모든 것을 따로 사는 것이니 그냥 극단적으로 싸게 먹자면 싸게 먹을 수도 있어서 주문식단제같은 반칙은 나름 발생치 아니합니다.

 

나랏님은 국민의 개념적인 자유와 평등은 빼앗을 수 있고, 사람의 목숨도 빼앗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밥을 먹는 방식만큼은 바꾸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