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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 보는 대한뉴스(26) - 어린이날, 그리고 만화 탄압

dolf 2024. 5. 6. 09:01

아, 즐거운 어린이날 연휴입니다. 네? 어린이날은 어제였다구요?! 그건 말하지 않는게 불문율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날은 어린이들에게는 선물 받고 놀러 가는 날이라서 부모님들은 시달리는 날입니다. 물론 자녀 없는 솔로 청년들, 그리고 애들을 대충 키워 놓은 어른들 입장에서는 그냥 하루 쉬는 날입니다만 어쨌거나...

 

오늘 대한뉴스 이야기는 어린이날과 좀 어울리지 않는 우울한 이야기가 주제입니다. 어린이가 미래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어른들은 어린이를 보호하고 이끄는 책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준이 지나치게 어른 중심적일 때, 그리고 그 조차도 편견에 사로잡힐 때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어른들은 아이들이 보고 즐기는 것에 대해 무자비한 폭력을 가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 문제는 2024년인 지금도 종목만 달라졌을 뿐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주제... 바로 만화 탄압입니다.


 

 

 

일단 그 전에 어린이날이니 대한뉴스 속 어린이날 풍경을 잠시 보고 가죠. 위의 것은 1959년, 그리고 아래 것은 1981년입니다. 런승만 말기, 그리고 살인마 대머리 초기 시절이라는 세월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어린이가 주인공이어야 할 날에 정작 어른들이 애들에게 재롱잔치를 강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른들 눈에 차도록 이 날을 위해 그 전부터 죽어라 매스게임을 준비했어야 아이들이 뭐가 즐겁겠습니까? 그 때는 그랬지...라고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게 절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가 즐거운 날이어야지 어린이에게 뭘 시키는 날이 아닙니다. 군사정권도, 문민정권도 다 권위주위에 찌들어 실제 아이들의 인권따윈 알 바 없었던 시대의 씁쓸한 산물입니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갑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웹툰이 글로벌화되고 심지어 국산 웹툰이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미디어 믹스가 되는 시절입니다만, 이렇게 된 역사는 정말 몇 년 안 됩니다. 그 이전까지는 대한민국에서 만화라는 것은 '애들이나 보는 것', '두들겨 패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사회를 지배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뭐 어린이와 청소년에 뭔가 문제만 생기면 만화를 엮으려 하는 사람들은 넘쳐납니다.

 

만화 화형식, 대한민국만의 이야기는 아니기는 합니다.

 

일단 이 대한뉴스를 보시면 당시 어른들의 만화에 대한 인식이 바로 나옵니다. 만화의 '거의 전부'를 나쁜 것으로 일단 몰아 세우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문화 탄압의 피날레는 '화형식'이죠. 지금은 디지털화되어 화형식을 치르고 싶어도 못 치르지만, 뭐든 탄압을 들어갈 때는 불부터 지르고 보는게 글로벌 스탠다드입니다. 미국도 뭐 예외는 아니지만요.

 

갑자기 뜬금없이 저 때 왜 저런 일을 벌였는가 하면 나름 이유가 있었습니다. 저 대한뉴스가 나오기 직전인 1972년 1월 말에 발생한 '정병섭 자살 사건' 때문입니다. 12살 어린이가 목을 맸는데, 누나가 '만화에서는 죽어도 살아 나는데 나도 그런지 시험해보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증언했고 이를 근거로 '만화가 애를 잡았다'고 만화를 두들겨 잡은 것입니다. 사실 진짜 자살 이유는 현재까지도 미궁입니다. 저 증언 하나로 마녀사냥을 하는 것으로 사회 전체가 만족했기 때문인데, 가정의 경제난 등 다른 자살의 원인도 있었지만 그건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사실 썬글라스 박의 쿠데타 이후로 만화는 아무렇게나 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반드시 사전 심의를 거쳐야 낼 수 있었고, 그 심의 기준은 그냥 정권 및 심의를 하는 사람의 고무줄이었습니다. 1960년대 말에는 만화 시장을 독과점하는 합동출판사라는 곳이 나타나 만화가들을 그냥 만화 찍는 노예로 취급하면서 획일화된 만화만 나오던 시기라서 진짜 정권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위험한 생각을 주입할 수 있다 생각한 만화는 나올 수도 없었습니다. 즉 이 시기의 만화는 뻔한 내용의, 정권 입장에서는 순한 양같은 내용의 만화만 나왔기에 저 문제를 만화 탓만으로 돌릴 수도 없었습니다. 정말 문제라면 검열을 개판으로 한 정부 잘못이라는 이야기니까요. 그건 싹 입을 씻었습니다.

 

지금은 정말 소수만 남은 만화방. 그 당시에 만화라는 것은 이 만화방을 통하여 보급되었습니다. 당시 만화방은 단순한 만화를 빌려 읽는 곳이 아닌 정말 가진 사람이 드물었던 TV 방송을 볼 수 있었던 곳이기도 하며 군것질 거리를 팔기도 했기에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있어서는 지금의 PC방 그 이상의 중요도를 갖던 장소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없어져야 할 것으로만 인식하던 정부로서는 정병섭 자살 사건으로 탄압할 빌미를 얻었기에 그 칼을 있는대로 휘둘렀습니다. 여러 만화방이 만화 압수를 당했고 별의 별 핑계를 대 업주를 감방에 보냈습니다. 애니메이션도 대부분 강제 종영당했죠.

 

이 사건은 제대로 된 자살의 원인 조사 없이 그냥 어른들 입장에서 나빠 보였던 만화를 두들겨 패는 목적으로 매우 잘 활용되었고, 만화에 대해 그렇게 나쁜 생각을 갖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만화가 나쁜 것이구나'라는 편견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의 30~40대 분들도 어릴 때 부모님들이 만화에 대해 있는대로 폄훼하고 읽지 못하게 한 것을 다들 겪으셨을 것인데, 이 사건이 이런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로도 만화는 어린이나 청소년과 관련되어 무언가 좋지 못한 일이 생길 때 마다 단골 손님으로 불려 나가 두들겨 낮는 샌드백이 되었고, 청소년과 성인 대상 만화 시장이 커질 여지조차 뿌리째 뽑히면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만화(애니메이션 포함)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편견을 형성했습니다. 옆나라와 다르게 대한민국의 애니메이션이 전부 유아나 어린이 대상으로 나오게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만화가 힘을 못 쓰게 된 이후에도 어른들은 아이들을 두들겨 잡을 명분을 열심히 찾아 다녔습니다. 요즘은 게임이 주된 타깃이 되었죠. 사실 어른들의 훈육만 제대로 되어도 아이들이 가상과 실제를 혼동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데, 만화나 게임을 현실과 혼동한다고 하는 시점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을 제대로 안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 훈육 책임의 방기를 게임과 만화에 돌리는 것 뿐이죠. 청소년 범죄자가 게임을 했다고 게임이 나쁘다고 하면... 성인 살인마가 소주를 즐겨 마셨다면 소주 판매를 금지시켜야 하고 성인 폭력배가 벤츠를 즐겨 탔다면 벤츠 수입을 금지시켜야 하는데 그러자고 하는 사람 보셨는지요?

 

어린이와 가정의 달 5월, 어린이와 청소년의 미래를 올바르게 가도록 하는 것은 어른들의 노력이 필수입니다. 그 책임을 방기하고 자신들이 싫어하는 것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반복되어도 세상은 절대 좋아지지 않습니다. 일방적인 혐오와 편견으로 엉뚱한 것에 책임을 떠넘기고 사회의 책임을 피하려 하는 비겁함은 앞으로 볼 일이 없으면 바랍니다. 하지만 세상이 발전할까요?T_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