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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 나영이 사건, 화를 내는 방향이 문제다?!(2009/10/1)

dolf 2023. 5. 25. 11:02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동물'의 폭력에 겨우 목숨만 건지게 된 불쌍한 어린이의 이야기에 대해 더 긴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 내용을 다시 끄집어내 적는 것이 오히려 그 본인과 가족을 힘겹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 자체는 이 글의 본질도 아닙니다.

나영이 사건은 강력 범죄에 대한 처벌의 한계, 그리고 유아 성범죄에 대한 처벌의 부족을 보여준 것입니다. 즉, 법률의 미비가 문제이며 우리 사회가 반성하고 고쳐야 할 것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 청소년/유아 성범죄의 처벌 강도를 높여야 한다? 이건 당연한 일!

일단 법 내용을 잠시 볼까요? 우리나라 형법에는 강간의 죄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그 죄에 대해서는 성인. 만 13~19세의 미성년자, 만 12세 이하의 유아가 조금씩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미성년자나 유아의 강간에 대해 가중처벌을 하는가 여부입니다.

일단 성인에 대해서는 강간은3년 이상 징역, 강간 치상은 5년 이상 징역형입니다. 만 13~19세의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은 이 보다 수위가 높아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내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만 보면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을 가중처벌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형법 제 302조) 하지만 여기에는 허점이 있는데,만 12세 이하(13세 미만)의 유아의 강간에 대해서는 가중처벌하지 않고 성인 강간의 처벌 수위를 유지하는 데 있습니다.(형법 제 305조) 즉, 생물학적으로 제2 성징기이자 가임기에 접어든 청소년에 대해서는 보호하되 유아 성범죄에 대해서는 더 처벌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생물학적 관점에서의 처벌 기준'만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이번 사건은 강간 치상이였으며 그 범죄 수위가 보통이 아니었기에 그나마 최종적으로 12년 형을 내릴 수 있었지, 단순 유아 강간이었다면 3년형까지 줄어들 뻔 했습니다.

미성년자나 유아의 성보호는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라는 폼나는 법률에도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은 나이에 관계 없이 '19세 미만 여성'에 대한 강간은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내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라는 더 폼나는 이름의 법률에는 13세 미만의 '여자 어린이'에 대한 강간에 7년 이상 징역형을 내릴 수 있도록 합니다. 두 법은 형법보다 유아 강간에 대해서는 더욱 높은 처벌 수위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아에 대한 강간은 형법과 충돌 가능성이 있기에 검사나 판사의 법 적용 의지가 달라지면 그 처벌 수위가 크게 낮아질 위험도 있습니다. 

이 법에는 그 이외에도 청소년/아동 포르노에 대한 처벌 규정도 있습니다. 포르노를 만들면 5년 이상의 징역형이 내려집니다. 청소년/아동 포르노는 갖고만 있어도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내릴 수 있으니 전 세계적으로 씨를 말리고자 노력하는 아동 포르노 근절에 대해 최소한의 의지는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제작에 대한 처벌 규정이 너무 약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은 듭니다. 아동/청소년 포르노는 전 세계적으로 마약 이상의 악으로서 다루고 있는 것인 만큼 이 부분은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청소년, 더우기 아동에 대한 성범죄에 대해서는 지금보다는 처벌 수위를 더 높이는 것은 이번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사회적인 공감을 얻고 있으며, 선진국일수록 그 처벌 수위가 올라가는 편입니다. 우리나라도 법률 그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지만 여러 법에서 서로 다른 양형 기준을 갖고 있기에 검사나 판사 마음대로 처벌 수위가 낮아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전체적인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여러 법률의 처벌 기준도 통일하도록 법 기준을 바꿀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피해자에 대한 정신적인 치료나 철저한 신변 보호조치도 더욱 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사건은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면서 더욱 확대되는 경향이 있는데, 아무리 뜻이 좋다고 해도 언론에서도 적어도 피해자를 주변 사람조차 식별할 수 없을 정도까지 신변 보호 조치를 하여 보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어기면 언론사도 성 범죄 가해자로 보고 그에 상응하는 높은 처벌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알 권리'를 이유로 피해자의 인권은 가볍게 여기는, 주변 사람이면 대충 누가 피해자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정도의 느슨한 신변 보호만을 일삼는 언론사들의 관행도 이번 기회에 바뀌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이유로 차별을 하려고 하는 그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역시 성 범죄로 보고 강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성 범죄는 '피해자만 영원히 사회에서 매장되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입니다.

■ 하지만... 오버액션은 하지 말자

참으로 어른으로서 눈 뜨고 볼 수 없고 말하기도 답답한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숙제를 남겼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강간의 왕국'이라는 비아냥을 우리 스스로 할 정도로 성 범죄에 대해 처벌 수위가 낮았고 인식 수준 역시 낮았는데, 이 사건은 그러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게 할 것인가, 이대로 강간의 왕국 자리를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인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청소년/아동 성범죄에 대한 매우 강한 처벌 규정을 만들고 피해자에 대한 보호 규정을 강화할 것입니다. 제대로 된 사회가 아니라면 대충 흉내만 내고 말거나 법적/제도적인 업그레이드를 최대한 피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청소년/유아 성범죄에 대한 인식을 다시 갖고 이에 대한 사회적인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게 하는 데 우리의 분노 에너지를 들이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습니다. 폭주하는 분노 에너지는 결국 우리의 몸을 망칩니다. 영화나 만화, 애니메이션을 보세요. 분노하고 폭주해서 제대로 된 꼴을 본 적이 있습니까? 폭주하는 분노는 그 에너지를 다룰 수 있는 어떠한 힘에 의해 전혀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법치'를 강조하는 우리나라의 위대하신 정부를 보십시오. 그 '법치'라는 것이 '이너서클에게는 한 없이 부드럽게, 이너 서클이 아닌 자에게는 없는 것도 만들어서'라는 것을 우리는 지난 2년동안 너무나 많이 겪었습니다. 폭주하는 우리의 분노 에너지가 이들의 손에서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리고 위대하신 정부와 집권당은 법률을 만들고 뜯어고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에 자신들의 엉뚱한 생각을 '여론의 힘'이라는 핑계를 대고 밀어 붙일 수도 있습니다. 이성을 벗어난 폭주 수준의 분노는 우리의 목을 죄는 엉뚱한 법률로서 나타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법률이라는 것은 그 수준을 높일 때는 적용 범위를 매우 좁혀야만 합니다. 그래야 엉뚱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습니다. 애매모호한 법 조항과 다른 범죄에도 적용할 수 있는 처벌 규정은 자칫 잘못하면 힘을 가진 사람들의 의지에 따라서 죄 없는 우리의 억울함을 만들게 됩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이러한 애매모호한 법률은 권력자의 의지에 따라서 죄 없는 사람도 죄인으로 만들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들었으며, 인혁당 사건 등 그러한 예는 적지 않습니다. 3권이 서로 견제하지 않고 행정(정권)의 의지에 따라서 서로 결탁하는 세상에서는 폭주하는 여론을 자신들의 이익에 활용하려는 세력이 활동하기 매우 좋습니다.

이번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가해자의 삼족을 멸하자, 거리에서 공개처형하자, 지금 사형수들을 다 형장의 이슬로 보내자, 사형 확정 판결이 나면 바로 집행해 버리자 등 과격한 의견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당장 분노에 눈 앞이 빨개져 폭주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과격한 생각이 자신의 이익에 눈이 먼 권력자들의 눈에 띠면 어떻게 될까요?

사형 판결을 내면 바로 집행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제 2의 인혁당 사건은 심심하면 벌어질 것입니다. 가해자의 삼족을 멸해버리는 내용이 형법에 들어간다면요? 가카의 모국에 이득이 안될 말을 했 했다는 이유로 내 가족과 친척까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런 법이 실제로 적용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권이 막 나가는 상황이 된다면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말은 누구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우리가 누리고 있던 자유를 정권이 조금이나나 빼앗는 데 악용할 힘으로서 우리의 분노가 쓰일 수도 있습니다. 가카와 정권이 좋아하는 '법치' 강화의 근거로서 이번 사건이 쓰여 보십시오. 분명히 이 사건은 강력 범죄인데, 정작 강력 범죄는 아닌 '가카를 비판하는 시위를 했으니 법치에 따라서 FM대로 처벌하는' 논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정부가 재벌의 이익을 위해 땅과 집을 강제 수용하면서 푼돈만 쥐어주면서 그것에 항의한다고 '법치'를 한다는 논리를 세울 수도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법을 엄하게 집행하지 않아서가 아닌 법 그 자체가 엉성했기 때문인데, 명확하지 않은 분노는 권력자들의 입맛대로 새로운 논리를 낳을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분노해야 하는 것은 성 범죄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사회 분위기, 피해자를 완전히 매장해버리는 사회 분위기와 제도, 그리고 청소년/유아 성 범죄에 대해 부족한 처벌 규정과 중구난방식 법 체계입니다. 부족한 법 체계는 채우고 우리 사회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 반성하고 바꾸도록 노력하는 데 우리의 분노 에너지를 써야만 합니다. 그 이외의 방향으로서 분노 에너지를 쏟는다면 그것을 기회로 자신의 배를 채우려고 하는 다른 사람들만 이득을 주며, 정작 고쳐야 하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