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바람'이라는 말. 사실 요즘은 과거처럼 듣기는 어렵지만 많은 경우 여성에 대한 비하어로 쓰는 단어입니다. 즉 그리 좋은 단어는 아니라서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여성, 특히 기혼 여성의 외도를 의미하는 이 말. 그런데 왜 하필 '춤'이 불륜의 상징이 되었을까요? 태어나고 사라지는 신조어에는 그 시대상이 녹아 있고, 춤바람이라는 말에도 이러한 시대상이 녹아 있습니다.
50회를 맞이한 대한뉴스 이야기. 이번에는 무거운 주제가 아닌 좀 가벼운 주제로 이 춤바람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이 때려 잡고, 리얼 월드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썬글라스 박이 본보기로 때려 잡으려 한 그 춤바람, 더 정확히는 사교댄스에 대한 이야기를 열어 봅니다.
[다시보기] 야인시대 8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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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야인시대를 한 번 보죠. 이 86회 후반에는 6.25 기간 중 부산의 국제캬바레를 터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에도 나름 심영물에서 쏠쏠하게 쓰이는 '이런 시국'을 비롯한 명대사들이 좀 있습니다만, '조선의 알 카포네'로 불리던 김두한이 건달들의 주 수입원이 될듯한 캬바레를 터는 것은 좀 생뚱맞은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이건 김두한이 극우에 가까운 우익 성향이었고 나라의 위기 상황에서 안전한 후방에서 나름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향락을 즐긴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기는 합니다만, 이게 그렇게 '악'으로 생각할 일이었을지요? 최소한 이 당시, 정확히는 1950년대의 인식은 그랬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사교댄스, 그리고 춤바람이라는 말을 퍼트린 '자유부인'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사교댄스(Ballroom Dance)는 단순 무식하게 적으면 중세나 근대, 아니면 판타지 작품에서 귀족들이 추는 그런 춤을 말합니다. 그러한 춤을 추는 장소, 즉 무도회장을 '볼룸'이라 부릅니다. 반대로 백성들이 추던 춤을 민속무용, 즉 포크댄스(Folk Dance)라 합니다. 만화적인 것으로 표현을 하면 무슨 귀족들이 다닐만한 학교에서 학생들이 춤을 추면 그게 사교댄스요, 그냥 학교에서 축제 뒷풀이로 춤을 추면 그게 포크댄스인 것입니다.
우리가 클래식을 들을 때 많이 듣는 미뉴에트, 폴로네즈, 마주르카, 폴카, 왈츠 이런 것들이 다 원래는 특정한 춤에 맞춰서 연주하는 음악이었습니다. 물론 이 시절의 사교댄스는 특정한 패턴 그대로 춤을 추는, 귀족들의 무도회에서 보던 그런 춤을 췄는데 이걸 '시퀀셜 댄스'라 부릅니다. 이게 19세기까지 주류였습니다. 그러다 20세기에 들어 미국을 중심으로 커플끼리 자유롭게 춤을 추는 현대적인 사교댄스가 재즈 붐과 함께 자리를 잡습니다. 우리나라의 사교댄스도 다 이 미국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스윙재즈 기반의 사교댄스를 의미하는 지터벅, 아니 우리 식으로 '지루박'이 광복과 함께 우리나라로 수입되었고, 이런 최신 문화는 늘 그렇듯이 돈 있고 힘 있는 사회지도층을 중심으로 퍼져 나갑니다.

하지만 어느 나라건 비슷하지만 사회지도층이라 불리는 사람이 서민보다 더 건전한 경우는 별로 없는게 사실입니다. 원래 불건전한 일은 대체로 시간 많고 돈이 많아야 가능한 일인데, 사회지도층의 고급 문화(?)인 사교댄스를 불륜의 상징으로 고착화를 시킨 두 가지 사건이 벌어집니다. 먼저 하나는 나중에 손자병법과 삼국지연의 평역으로 유명해진 정비석의 1954년작 '자유부인'입니다. 당시 소설이 그러했듯이 신문 연재 후 단행본이 나왔는데, 당시로서는 수퍼 베스트셀러라 할 수 있는 초판 4만권을 찍었습니다. 영화로도 나와서 더 큰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사실 내용은 지금 기준으로는 정말 '소프트' 그 자체입니다. 사회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대학 교수의 부인이 그 제자와 춤바람이 났다... 이 정도의 내용인데 이 정도로 사회가 난리가 났습니다. 남자들은 몰래 첩을 두어도 '능력 있는 남자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실드를 쳐주는데 여성은 저 정도로도 무슨 창녀를 보는 듯하게 취급한 것입니다. 이 소설에 대해 썬글라스 박 정권 말기에 법무부 장관을 하게 되는 황산성 교수가 '감히 교수라는 이름을 모욕하다니 참을 수 없다!'고 정비석 작가를 디스했고, 이에 정 작가는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것이 비판은 무슨. ㅋㅋㅋ' 하여 받아칩니다. 이걸 다시 황 교수가 '중공군 50만보다 위험한 문화의 적!'이라는 선을 넘는 반박을 하고 다시 '깡패 이상으로 무식한 인간 하고는...'하는 역반박이 날아 들며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가 됩니다. 어쨌거나 이 소설은 '사교댄스 = 사회지도층 여성들의 불륜 방식'이라는 이미지를 사회에 뿌리박았습니다.

이게 문화적으로만 논쟁이 뜨거웠으면 다행인데, 정말 윗분들은 이 소설을 생각보다 더 위험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걸 '내 이야기인가?' 하며 다른 방향으로 불쾌히 여겼는데, 심지어 런승만은 '김일성의 지시로 대한민국을 문란하게 만들려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정비석을 잡아들여 고문하고 이 책의 판매를 금지시켰습니다. 정비석이 친일행각 + 반공사상 때문에 월남한 인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생트집이 따로 없는 일이었는데, 이 책의 판매 금지는 런승만이 쫒겨난 4.19 혁명 이후에 풀립니다.
여기에 사교댄스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맨틀 밑으로 박은 사건이 비슷한 시기에 하나 더 벌어지는데, 대한민국판 카사노바 사건으로 불리는 '박인수 사건'입니다. 박인수라는 사람이 해군 장교를 사칭해 70여명(비공식적으로는 100명 이상)의 여성과 '검열삭제'를 벌인 사건인데, 지금이야 무슨 연예인이 아니면 이슈가 될 일도 아닙니다만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일 그 자체였습니다. 혼인빙자간음죄로 기소한 검찰에 대해 박인수는 '여성들이 먼저 접근했고 혼인 약속도 안 했으며 70명 가운데 성경험이 없던 여성은 한 명 뿐이더라'는 일명 1/70 이론을 펴며 반박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이 사건은 1심에서는 군인 사칭에 대해서만 벌금형을 받았고, 2심에서 혼인빙자간음을 유죄로 판결했으나 겨우 징역 1년형으로 끝났습니다. 정말 솜방망이 처벌이나 다름 없었는데, 이 당시 사회 분위기는 박인수를 '뭐 그럴 수 있지' 정도로 감싸고 반대로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여성들을 역시 창녀로 몰아 세웠습니다. 저 70명 가운데 박인수를 고소한 사람이 달랑 두 명이었던 것도 사회적으로 그만큼 피해자에 대한 압박이 컸기 때문입니다. 박인수가 여성들과 만난 주된 자리가 사교댄스장, 즉 캬바레였기에 다시 한 번 사교댄스는 사회 문화적인 대표 악으로 이미지가 고착화되고 맙니다.
그렇게 사교댄스가 사회악, 특히 여성들이 벌이는 사회악으로 낙인찍힌 상태로 시간은 흘러 썬글라스 박이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실제로는 권력욕에 벌인 일이지만 퇴폐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혁명을 일으켰다는 명분을 쌓기 위해 썬글라스 박은 만만한 사회악(?)을 때려잡기 시작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이 사교댄스였습니다. 저 대한뉴스 내용처럼 '미쳤다'는 부카니스탄에서나 쓸법한 막말까지 공적인 매체를 통해 쓰면서까지 고작(?) 춤바람을 때려잡은 것입니다.
썬글라스 박이 사교댄스를 때려 잡는 데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습니다. 저 위의 대한뉴스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한 주 뒤에 나온 것인 만큼 사실상 쿠데타 세력의 최초의 공식 활동을 보도한 것입니다. 이는 대한뉴스를 통해 발표한 쿠데타 세력의 혁명공약 발표보다 더 먼저 나온 것입니다. 그만큼 당시 사회, 정확히는 서민들이 실상과는 무관하게 사교댄스를 죄악으로 취급했고, 이것을 때려 잡는 것은 정말 썬글라스 박 입장에서는 1레벨 슬라임 잡는 것 보다 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에서 사교댄스는 양지에서는 사실상 완전히 맥이 끊겼고, 음지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썬글라스 박과 전대머리는 집권 기간 내내 심심하면 이 음지에서 다 죽어가는 사교댄스를 꺼내 두들겨 팼습니다. 이러한 샌드백 사교댄스는 서울올림픽 이후 그 탄압이 풀리지만 수십년을 악으로 몰아 넣은 사교댄스는 쉽게 대중화되지 못했습니다. 여성 인권이 선진국답게 신장된 이후에도 사교댄스는 건전한 취미 활동이 아닌 남녀를 불문하고 왠지 불륜의 냄새가 나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여전히 사회에 남아 있으며, 이는 사교댄스 기반의 스포츠 경기인 댄스스포츠에도 악영향을 끼쳐 21세기인 지금도 댄스스포츠는 F1 이상으로 대한민국에서 듣보잡인 경기가 되었습니다. 나름 올림픽 시범종목도 해본 종목이 이렇습니다.T_T
이렇게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찬탈한 사람들은 만만한 사교댄스를 콘크리트 관에 집어 넣고 묻었습니다만, 그렇다고 사람들의 춤에 대한 욕구를 틀어 막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교댄스는 나름 변질되어 사회 전체로 퍼졌다 할 수 있습니다. 사교댄스의 한 분야인 폭스트롯 음악은 일본 엔카를 거쳐 대한민국의 트로트가 되었고, 이 트로트에 맞춰 사람들은 캬바레가 아닌 버스 안에서, 그리고 관광지에서 음악에 맞춰 미칠듯한 그 춤을 추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평론가들의 시선으로 봉준호 감독 최고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영화 '마더'. 그 엔딩의 광란의 춤 장면을 보면 1960년의 사교댄스를 바라보던 사회의 시각과 나름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자로서 사교댄스를 췄다는 이유만으로 지저분한 것을 본 듯한 시선을 받아야 했던 자유부인의 시대에서, 세상과의 투쟁에서 얻은 상처를 광란의 춤으로 풀고 이에 대해 그러려니 넘어가는 시선을 지니게 된 21세기의 마더의 시대의 갭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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