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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 보는 대한뉴스(48) - 극일(?)의 상징, 전기밥솥

dolf 2025. 6. 9. 13:05

지금의 대한민국은 전 세계 기준으로 누가 봐도 선진국이며, 우리 안에서만 일부의 사람들이 선진국이 아니라 외쳐댈 뿐입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나라가 생긴 이래 계속 선진국이었던 나라가 어디 있는지요? 나라는 흥망성쇠를 하며 대한민국도 정말 세계에서 '이 나라는 어떻게 해도 안 됩니다'라고 고개를 젓던 상황에서 출발해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수준에 오르기까지 그 당시 선진국과 비교하면 문화, 기술 모두 큰 격차가 났습니다. 그러다보니 '외국물'에 대한 선호는 당연히 전 국민에 걸쳐 있을 수 밖에 없었는데, 정부에서는 국산을 쓰라고 소리를 버럭 질러댔지만 오히려 부유층들이 그걸 더 안 따랐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보다 기술 발전을 훨씬 빠르게 이룬 옆나라, 일본 물건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는데, 그 시절의 단편 하나를 적어볼까 합니다.

 

 

사실 위의 대한뉴스는 '국산품 애용'이며 여러 제품의 품질이 수입품 대비 가성비를 능가했다거나 품질을 뛰어 넘었다는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한뉴스에서 나오는 것 치고 완벽한 진실를 담는게 별로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실상은 상당한 오버가 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만, 일단 저 시절, 즉 1986년만 되어도 가전제품 품질이 과거보다는 나아진건 사실입니다만 어디까지나 '참고 쓸만하다' 정도가 정확한 것이라 해야겠죠.

 

다만 이 뉴스에서 나온 모든 물건을 다루기는 좀 힘든 만큼 여기에서 '파동'까지 일으켰다고 하는 전기밥솥을 좀 콕 집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이 뉴스에서는 소형가전을 비롯한 주방 관련 용품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TV나 냉장고가 아닌 이런 소형가전을 굳이 대한뉴스에서 다룬 것은 정말 '파동'까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국산 전기밥솥이 폭발하거나 불이 나서 파동이 발생한건 아닙니다만, 이건 뒤에서 자세히 보기로 하고...

 

 

사실 '수입품'에 대한 선호는 지금도 있지만 과거에는 그야말로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국산품의 품질이 월등히 떨어진 것이 많았고 아예 국산품이 없던 것도 있으니까요. 당연히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수입품을 더 선호했는데, 위의 대한뉴스(2공화국 시절 이야기입니다.)처럼 수입품을 쓰는 사람들을 무슨 매국노나 반동쯤으로 성토하고 있는데, 이것도 어디까지나 실제 수입품 선호를 숨기기 위한 여론 공작에 불과한 것이지 돈만 있으면 다들 암시장에서 이런 수입품을 구하려 애썼습니다. 저 대한뉴스가 나오던 시기에는 아예 특정외래품판매금지법이라는 법까지 만들어 수입을 막으려 했습니다만, 그냥 시장이 더 어둠 속으로 들어갔지 사람들의 수입품 선호가 줄어든 것은 전무했습니다.

 

일제 전기밥솥 하악하악... 이게 당시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전기밥솥만 '파동'을 일으켰을까요. 전기밥솥은 당시 가정의 인기 가전제품이었습니다. 냉장고나 세탁기는 가격이 비싸서 보급이 더뎠지만 전기밥솥은 그 정도는 아니었고, 밥은 매일 해먹어야 했으니 가장 주부들이 많이 접하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만큼 품질을 따질 수 밖에 없었는데, 1950년대 초반에 일본에서 전기밥솥을 처음 개발하고 1965년에 최초로 금성사에서 전기밥솥을 국산화해 출시했으나 1980년대까지도 일제와 국산 전기밥솥의 품질 차이가 확연히 컸습니다. 속된 말로 국산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면 '맛이 없다'는 소리를 대놓고 들었고, 국산 전기밥솥을 사도 이걸로 밥을 하는 사람보다는 그냥 보온용으로 쓴 사람이 더 많았고, 그 보온 능력조차 일제와 품질 차이가 컸습니다.

 

그 일제 전기밥솥을 대변하는 것이 일명 '코끼리표', 즉 조지루시였습니다. 지금도 일본 제일의 전기밥솥 제조사이며 국내에도 엉뚱하게 젊은 주부들이 환장(?)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 21세기 기준 조지루시는 국내에서는 주로 보온병 회사로 유명하죠. 하여간 1970~80년대에 '코리리표 밥솥'은 그야말로 전설이 아닌 레전드 그 자체였습니다. 실물을 못 본 사람들도 '코끼리표 전기밥솥이 끝내준다 하더라'는 이야기는 다들 들었을 정도로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해외여행도, 수입도 자유화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이 모두 1980년대 후반에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80년대 초반까지 코끼리표 밥솥을 비롯한 일제 밥솥은 해외여행을 나가는 데 지장이 없는 부유층, 그게 아니면 보따리상을 통한 일종의 밀수 비슷하게 공급되었습니다. 이렇게 알음알음 돈 좀 있는 분들이 코끼리표 밥솥을 사들고 와서 썼는데, 이게 대놓고 공론화된 일이 벌어지고 이걸 '밥솥 파동'이라 부릅니다.

 

1983년에 부산의 주부들이 일본으로 관광을 갔는데, 일본을 갔으니 구경도 잘 했으면 이제 코끼리표 밥솥도 사야죠. 그래서 단체로 조지루시 밥통을 사들고 왔는데 이게 일본 언론을 통해 '한국인 덕분에 밥통 장사 잘 되네~'라고 공론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당연히 국내 언론에서는 '여행 나갈 수 있으면 사회지도층이자 부유층인데 이것들이 국산을 더 피하네~'라고 두들겨 팼습니다. 국민의 심기를 거스른 이 재수없는(?) 사건으로 관광을 주최한 여행사 대표는 감방을 가고 주부들이 사들고 온 여러 일제 물건들도 절반 가까이는 통관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게 나라 입장에서 보면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개나 주라고 한 셈이라 실제 부유층의 속마음은 어쨌거나 공식적으로는 두들겨 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사회지도층이 포함된 부유층이 국산을 피하는 현상에 대한 국민 여론을 자극한 것이지만, 실상은 그만큼 전기밥솥의 품질 차이가 명확했다는 의미도 됩니다. 그러니 당장은 단속으로 여론을 잠재워도 국산품의 품질을 높이지 않는 이상에는 답이 없던 문제였습니다. 이 밥솥 파동을 보고받은 살인자 전대머리조차 전기밥솥의 품질의 차이만큼은 알고 있었기에 외부적으로 국민에게 발표할 때는 '마감같은 자잘한 부분 빼면 국산도 수입산과 별 차이 없어요'라고 말은 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국산과 일제의 품질 차이가 명확한데 밥솥 사들고 온 아줌마들을 무슨 낯으로 욕하냐'라고 관련 부처를 깠습니다. 이 때부터 정부 차원에서 국산이 나오지만 수입품과 품질 차이가 있고 이미지 역시 그러한 주요 생필품을 정해서 집중적으로 품질 관리를 하기 시작했고, 전기밥솥도 그런 품목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다고 품질 개선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라서 위의 대한뉴스를 방영하던 1980년대 중반까지도 전기밥솥의 품질 차이는 여전히 컸는데, 그 간격이 줄어든 것은 1990년대 초중반 이후가 됩니다. 이것은 국산 전기밥솥의 품질 향상이 실제로 꾸준히 이뤄진 것도 있지만, 대한민국의 220V 승압 사업이 이 시기가 되면 대부분 완료되어 110V짜리 일제 전기밥솥을 쓰기 꽤 불편해졌던 것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전기밥솥은 자포니카 쌀에 맞춰 나오다보니(인디카와 자포니카는 밥 짓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쓰는 나라가 전 세계에 많지 않아서 굳이 각국의 사정에 맞춰 개량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되고 전압이라는 장벽이 생기니 자연스레 일제 전기밥솥 선호도 줄어든 것입니다.

 

지금은 아시다시피 여전히 조지루시를 사랑하는 일부 젊은 주부들, 아니면 노년층 일부를 제외하면 쿠쿠 아니면 쿠첸으로 도배가 되어 있습니다. 쿠쿠는 1970년대부터 금성사(LG전자)에 밥솥을 OEM으로 공급하던 동네고, 쿠첸은 그 역사를 따져보면 대한민국 밥솥의 초기 최강자인 마마 전기밥솥부터 시작하니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전기밥솥이 조지루시를 비롯한 일제 전기밥솥을 최소한 국내에서는 이긴 셈이 됩니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같은 자포니카 품종 쌀을 먹어도 취향이 좀 차이가 있는데다 수요가 있으니 국내 기업들도 기술 개발을 국내 눈높이에 맞춰 할만한 이유가 생긴 결과인데, 결국 국산 사랑도 품질이 뒷받침이 되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이유 없이 국산을 써주라 하는 것은 지금도 안 통하지만 그 아름다운(?) 과거에도 씨알도 안 먹혔던 이야기랍니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아는 전대머리조차 밥통 싸들고 온 아줌마들 욕을 못 했을 정도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