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이것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정말 중요한 이벤트입니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자녀의 미래를 정하는 정말 중요한 갈림길이며, 학생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피말리는, 자신의 10대의 삶을 바친 결과의 집대성이죠. 지금은 입시하면 대입이라는 한 가지만 생각을 합니다만(영어유치원 입시라는 정말 괴상한 그들만의 리그는 제외합니다. 이건 두들겨 잡아야 하는 문제입니다.), 1960년대에는 중학교 입시도 있었습니다. 초등학생, 아니 당시는 국민학생들도 고학년부터 입시의 피말리는 지옥에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명문고가 아닌 명문중학교가 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중학교 입시는 없어졌는데, 의무교육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중학교 의무교육 확대는 2004년 이야기고 중학교 입시가 사라진건 1968년입니다. 한 세대 이상을 중학교는 의무교육과 무관하게 무시험 전형으로 진학하게 한 것입니다. 사실 여기에는 노기(怒氣), 아니 살기(殺氣) 서린 학부모들이 있었고, 이 사건의 핵심 키워드가 바로 '무즙'과 '창칼'입니다. 도대체 무즙과 창칼이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중학교 입시를 없앨 수 있었을까요? 그 사건을 되짚어 봅니다.
이 대한뉴스는 1968년 이야기이며, 중학교 입시를 폐지한다는 것입니다. 이 때의 발표로 1969학년도에 중학생이 되는 사람은 무시험 전형으로 중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러면 그 전에는 어떻게 했냐구요? 중학교도 각 학교별로 시험쳐서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학교를 개별적으로 시험을 봐서 들어가는 경우 반드시 발생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 학교별 계급입니다. 일명 명문학교와 똥통학교가 서열로 나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각 학교별로 작은 차이에 불과했겠지만 우수한 학생을 받아들인 학교는 점점 더 높은 성과를 내며 더 우수한 학생을 받아들이게 되고, 반대로 떨어지는 능력의 학생만 받는 학교는 노력을 해도 성과가 미치지 못해 더 낮은 평가로 추락하게 됩니다. 각자 입시가 존재하는 이상 모든 조직은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개별적으로 전형하는 대학교는 말할 필요도 없고, 평준화를 했다고 하는 고등학교조차 각자 전형을 하는 특목고는 그 자체가 일반고보다 높은 서열을 갖습니다.
중학교 입시라는게 존재했던 1960년대 초중반에는 중학교도 명문 중학교라는게 있었습니다. 명문 중학교에 들어간 학생은 명문 고등학교에 들어갈 가능성이 더 높았고, 그 명문 고등학교 학생은 다시 명문 대학교 진학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일직선으로 계급이 정해지는데, 국민학교 시절부터 자녀에게 많은 공부를 시키고 편안한 공부 환경을 꾸며줄 수 있었던 부유층들이 명문 중학교부터 시작하는 '인생의 승리자' 레일에 올라탈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심지어 집안 사정이 좋지 않더라도 '개천에서 용 나는' 기적을 연출하고자 했던 서민들은 어떻게든 자녀의 교육에 모든 것을 올인하여 명문 중학교에 들어갈 가능성을 찾았습니다. 이렇게 레일에 올라타면 완벽한 인맥도 갖춰지게 되죠.

자, 이렇게 중학교부터 한 사람의 인생이 결정되는 상황이라면 그 입시에 얼마나 불이 붙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1단계에서 무언가 사고가 발생하여 자녀의 인생이 바뀌게 되면 학부모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 앞에서는 철권 군사정권이고 나발이고 없습니다. 그렇게 학부모들의 눈을 뒤집게 만드는 첫 번째 사건이 1964년에 터집니다. 이 때 등장하는 키워드가 바로 '무즙'입니다. 예. '무즙파동'의 시작입니다.
1964년 말, 즉 1965학년도 서울시 중학교 입시 자연 과목에서 이런 문제가 나왔습니다.
| ※ 다음은 엿을 만드는 순서를 차례로 적어 놓은 것이다. 1. 찹쌀 1kg 가량을 물에 담갔다가 2. 이것을 쪄서 밥을 만든다. 3. 이 밥을 물 3ℓ와 엿기름 160g을 넣고 잘 섞은 다음에 60도의 온도로 5~6시간 둔다. 4. 이것을 엉성한 삼베 주머니로 짠다. 5. 짜 낸 국물을 조린다. 18. 위 3과 같은 일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무엇인가? ① 디아스타제 ② 꿀 ③ 녹말 ④ 무즙 |

일단 이 문제의 출제 의도는 한 눈에 나옵니다. 바로 '효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최소한 제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까지는 정말 저 내용을 배웠습니다. 뭐 지금도 중학생 이상이면 답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일단 '의도한' 정답은 1번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의도가 저렇다는 것이지 정답이 저거 하나만이 아니었다는게 불행의 시작입니다.
일단 문제 출제 의도는 녹말을 당분으로 바꾸는 효소를 물은 것이지만, 여기에 보기로 넣은 것 가운데 무즙에도 이 디아스타제가 들어 있었던 것을 출제자들이 까먹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데, 당시 국민학교 교과서에도 무즙에 디아스타제가 들어 있다는 것은 적혀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출제자들이 이 사실을 그냥 잊고 그냥 보기를 잘못 넣은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정답은 1번이라는, 즉 문제 출제 의도 그대로만 답을 인정하겠다고 하자 4번을 골랐던 학부모들이 그야말로 들고 일어났습니다. 위에 적었듯이 무즙에도 디아스타제가 들어 있는 것이 사실이고 교과서에도 적혀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무즙이 들어간 시점에서 오히려 답은 4번에 가까워지는데, 디아스타제 자체가 녹말을 당분으로 바꾸는 핵심이기는 하지만 '넣어도 되는 것'이라는 말에는 이게 정답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디아스타제 효소 자체만 공업용으로 나오기는 하는데 이걸 1960년대의 일반인들이 어찌 알겠는지요? 그러니 디아스타제 성분이 들어 있고 얼마든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무즙이 답이라는 논리가 힘이 실리는 것입니다.
뭐 공무원들이 늘 그렇듯이 처음에는 '1번 아니면 다 오답'을 고집했지만 4번을 고른 학부모들은 그야말로 1점에 학교가 갈리는 이런 상황을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명문 중학교에 가지 못한다는 것은 명문 고등학교에 갈 가능성이 희박해짐을 의미하고 명문대의 길은 그야말로 까마득해지는 상황인데 누가 순순히 납득할까요. 이런 항의에 4번도 정답으로 인정을 했는데, 이번에는 1번을 썼던 학부모들이 '4번 쓴 사람을 떨어트려라'며 항의를 하며 재차 1번만 정답이라고 뒤집었고 이걸로 확정이 되고 맙니다.

이렇게 되자 4번을 썼던 학생의 학부모들은 소송을 걸었고 희대의 '무즙 재판'이 열립니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 교육감은 '정말 무즙으로 엿을 만들 수 있으면 그 학생들의 구제를 검토하겠다'는 발언을 했고, 이에 학부모들은 정말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법원과 교육청 문에 붙이는 방법으로 항의를 했습니다. '엿 먹어라'라는 욕설이 이 때 나왔다는 민간 어원설이 있지만 사실 이건 그 전부터 욕으로 쓰였다는 문헌이 있어 그냥 이설에 불과하긴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희대의 소송은 4번을 쓴 학생 및 학부모들의 승소로 끝났습니다.
사실 이러한 문제 출제 오류는 지금도 심심하면 발생하는 것이긴 하니 여기에서 끝났다면 그냥 해프닝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처리 과정에서 정말 더러운 일이 벌어지며 중학교 입시 자체에 치명타를 입힙니다. 이 소송은 1965학년도가 시작된 이후까지 이어졌기에 승소한 학생들은 일종의 편법으로 이러한 명문 중학교(경기중학교 등)에 편입하는 형식으로 입학합니다. 사실 당시는 이건 불가능한, 그야말로 편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편입 과정에서 아예 합격조차 못한 높으신 분들의 자녀 21명이 몰래 부정입학한 것이 드러납니다. 그야말로 학부모들은 분노 폭발. 무즙 파동에도 요지부동이던 교육계의 높으신 분들도 이 부정입학 앞에서는 무사하지 못했는데, 당시 서울시 교육감과 문교부 차관이 옷을 벗어야 했습니다.

일단 이렇게 무즙 파동은 마무리가 이뤄졌으나 이미 중학교 입시에 대한 신뢰성은 치명타를 입은 상황 그대로였습니다. 더군다나 국민학생조차 입시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에 질린 것은 학생들과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에 그야말로 시체에 불을 붙인 것과 마찬가지인 사건이 1967년 말에 터집니다. 이번에 등장하는 키워드는 바로 '창칼'입니다. 사실 이 사건 전에도 문제 출제 오류 논란은 더 있었지만 이 '창칼파동'만큼은 아니었습니다.
1968학년도 중학교 입시 미술 13번 문제가 불씨를 당겼는데, 목판화용 조각칼 가운데 창칼을 다루는 문제였습니다. 이 역시 출제 의도는 창칼은 오른손잡이 기준으로 당겨 쓰는게 원칙이라 이렇게 표기한 당시 2번이 정답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보기 예제 그림이 좀 이상했던 것이 문제의 시작인데, 하필 이 문제의 3번은 왼손잡이용 창칼로 볼 수 있다보니 3번으로 답한 사람도 꽤 있었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시 서울 최대의 명문 중학교인 경기중학교에서는 정부 지침과 달리 2번과 3번을 모두 복수 정답으로 인정하기로 했는데, 이렇게 되자 2번을 쓴 사람들은 '3번 쓴 사람 떨어트려라~'하며 경기중학교에 난입해 교장과 교감, 그리고 시찰을 나온 서울시 교육위원회 직원을 감금하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출제 오류에 대해 공화당 실세의 압력설 등 별의 별 높으신 분들의 이름이 다 돌아 다녔습니다.
이 창칼파동 역시 소송전으로 이어졌는데 무즙파동만큼 카오스의 연속이었습니다. 서울고법은 2번만 정답이라고 인정하였으나 대법원에서는 다시 뒤집혀 2, 3번을 모두 정답으로 인정하고 경기중학교의 합격 발표가 정당했다고 판결합니다. 1점에 죽고 사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결과가 어떻게 되었건 모두 마음에 피멍이 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중학교 입시가 과열된 것이 원인이었는데, 여기에 공화당 실세 개입설 등이 나돌며 정권 차원에서도 위기가 감자 썬글라스 박 정권은 정말 단순하게 이 문제를 정리해 버립니다. 예. 그냥 중학교 입시를 없애고 '명문 중학교' 자체를 날렸습니다.
1968학년도 이후 모든 중학교는 그냥 평준화되었고, 일명 명문 중학교들은 '평범한 중학교가 되느니 폐교를 선택하겠다'는 학교와 '현실에 순응하겠다'라고 한 학교로 나뉘었습니다. 위에 적은 최고의 중학교였던 경기중학교는 전자의 폐교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한 뿌리였던 경기고등학교는 경기중학교가 사라진 이후에도 한참 명문 고등학교로 이름을 날렸고, 국제고와 특목고가 명문고의 명성을 흡수한 이후에서야 평범한(?) 8학군의 인문계 고등학교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 11조2항에는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사회에 높은 계층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무도 뭐라 하지 않지만 현실은 부모의 위치와 재력이 자녀의 시작 지점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면서 사회적 계급을 고착화시키려 하는 흐름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의 여러 문제인 무의미한 입시 경쟁과 이공계 무시와 법학/의학 등 높은 계급으로 가기 쉬운 분야만 숭상하는 것도 이러한 계급 고착화 시도의 영향이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계급화에 미련이 많고 오히려 심해지고 있습니다. 중학교 입시가 있던 시절의 12세 고시도 아닌 4세 고시(영어유치원)가 나오는 시점에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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