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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 보는 대한뉴스(47) - 병주고 약준 대마불사, 8.3 사채동결

dolf 2025. 4. 30. 19:35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실질적인 국가수반이자 행정부 수장에게 막강한 권력이 주어집니다. 내각책임제하의 대통령처럼 별 실권도 없는 국가수반도 있어 우리나라라면 2공화국 시절 윤보선같은 사람도 있으니 국가수반이라고 꼭 권력이 강한건 아닙니다만, 일단 대한민국은 저 때만 제외하면 국가수반 겸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의 권력은 그야말로 막강 그 자체였습니다. 국회와 상호 견제하는 관계라 하지만 대통령에게는 국가긴급권이라는 것이 주어져 정말 마음만 먹으면 국회를 무시하고 법률 비슷한 것을 만들어 국민의 삶을 제약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런 힘을 잘못 쓸 때의 대가는 커서 우리는 그 국가긴급권의 일부인 계엄을 제멋대로 실행해 자기 명줄을 앞당긴 윤가놈이라는 사례를 리얼타임으로 지켜봤죠.

 

이러한 막강한 대통령의 국가긴급권은 정말 나라가 위기인 상황에서만, 정말 뒷처리를 철저히 생각하여 써야만 하는 위험한 칼이기에 대통령에 취임하여 퇴임할 때 까지 한 번도 안 쓰는 것이 최선인 권한입니다. 이걸 특정한 사람이나 조직의 이익만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 썼다면 아무리 그게 당시 필요했다고 강변해도 후대에 욕을 먹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즘 극우들은 썬글라스 박 대신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윤가놈을 더 빨아주는 모양입니다만, 과거(?)의 극우의 영웅인 썬글라스 박의 삽질(?) 하나를 퍼옵니다. 아, 사실 필요성은 있었지만 그 원인 제공자가 썬글라스 박이었고, 결과가 많이 더러웠을 뿐입니다. 바로 대통령긴급명령 제 15호, 8.3 사채동결입니다.

 

 

 

■ 긴급명령이란 무엇인가?

 

8.3 사채동결을 설명하기 전에 알아두어야 하는 배경 지식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긴급명령이란 무엇인가?'와 '왜 썬글라스 박은 이걸 했는가?'입니다. 후자의 내용은 이 조치의 원인이자 문제점이기도 하기에 이건 나중에 설명하고 일단 긴급명령에 대해서 살펴 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 중학교때쯤 사회 공부를 얼마나 잘 했는가 확인을 해봅니다. 대한민국의 법령 체계는 보통 헌법, 법률, 명령, 조례, 규칙으로 배웠을 것입니다. 사실 이것도 파고 들면 대통령령과 부령은 레벨이 다르고, 규칙도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것이 서로 다른 등 훨씬 복잡하지만, 하여간 다들 대충 이렇게 배우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왼쪽으로 갈수록 상위라는 것도 말입니다.

 

대한민국의 최상위 법, 즉 헌법에는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저 위에 있는 내용 가운데 헌법 제75조가 '대통령령'이라는 것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기재하고 있고, 사실 원칙적으로 대통령이 자기 힘으로 만들 수 있는 법령 한계는 이 명령(대통령령)이 한계입니다. 상위인 법률은 국회만 만들 수 있는 것이며, 헌법은 국회를 거쳐 국민투표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즉 대통령은 원칙적으로 국회의 권한인 법률과 동격인 것을 만들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아래의 헌법 제76조에 특수한 경우에 한해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제77조는 그 말 많은 계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합쳐서 국가긴급권이라 부릅니다. 반드시 국회에 통보를 해야 하고 국회의 동의를 받지 못하거나 국회가 태클을 걸면 무효화가 된다는 전제 조건이 붙지만 대통령이 국회의 권한과 맞짱을 뜰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76조도 1항의 내용은 '긴급재정경제명령'이라 하고 2항의 내용이 '긴급명령'입니다만 이건 현행 헌법에서의 분류고 과거에는 이런 구분을 안 하고 그냥 다 긴급명령이라 했습니다.

 

긴급명령은 국회의 법률 제정을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긴박한 상황일 때 일단 법 비슷한 것을 만들고 국회에 사후동의를 받은 다음 다시 국회에서 제대로 된 후속 법률을 만들면 폐기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긴급명령은 나중에 다른 법률로 대체되어 폐지되거나 목적을 다해 폐지되지만, 그야말로 대통령이 국회 일까지 해먹겠다는 것이라 반발이 보통이 아닌 막강한 권한이라 정말 한 정권에서 한 번 쓰면 많이 씁니다. 아니, 이걸 쓴 대통령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지금까지 긴급명령은 단 16번 나왔는데 그 가운데 14번이 런승만 이름으로 나왔고, 썬글라스 박 한 번, 그리고 안동국수라 읽고 칼국수라 쓰는걸 좋아하는 032가 한 번 쓴게 전부입니다. 킬러 전대머리도, 물도, 선생님도, 노통장도, 가카도, 심지어 503도 한 번도 꺼내들지 않았던 수단입니다. 윤가놈은 정말 5년동안 정권 유지를 했다면 한 번은 써먹고도 남았을거라 생각하지만 일단 3년 가까이 하면서 한 번도 손을 안 댄건 사실입니다. 런승만 시절의 14번은 대부분 6.25 상황에서 썼으니 나름 당위성이 있었고, 마지막인 032가 한 것이 그 유명한 금융실명제입니다. 금융실명제는 정보가 새면 바로 경제에 영향을 주는 일이라 국회와 상의가 어려운 일이었고 결과적으로도 경제에 도움이 된 일이었습니다.

 

아, 참고로 '긴급명령'은 유신 시절 썬글라스 박의 가불기, '긴급조치'와는 다릅니다. 긴급명령은 법률에 준하는 것이지만 긴급조치는 헌법에 준하는 것이라 헌법에 있는 내용까지도 무시하고 왜곡해버릴 수 있는 그야말로 독재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수단은 썬글라스 박이 시바스 리갈을 앞에 두고 저 세상을 간 이후에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아... 너무 공부가 길었습니다만, 핵심은 '긴급명령이라는 것은 대통령이 위급 시에 한정해 법률에 준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이라는 것이며 이것만 제대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 8.3 사채동결이란?

 

 

경제의안정과성장에관한긴급명령 | 국가법령정보센터 | 법령 > 본문

 

www.law.go.kr

 

1972년 8월 3일에 발표한 이 조치의 풀네임은 '경제의안정과성장에관한긴급명령'이며 위의 법령 내용을 보셔도 사채 관련 내용이 전부가 아니라 이런저런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8.3 사채동결이라 불릴 정도로 이 긴급명령은 사채에 대한 동결이 핵심입니다.

 

일단 이 조치의 배경은 뒤에서 설명하고, 긴급명령의 핵심인 사채동결 부분에 대해서만 그 내용을 정리합니다. 조항은 정말 이런저런 것이지만 핵심 내용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긴급명령 발표 이후 사채를 돌려받는 것을 금지한다. 심지어 갚는 것도 금지한다.

- 어음 지급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

- 사채를 빌린 사람, 빌려준 사람 모두 1주일(8월 9일)까지 그 사실을 국세청에 신고해야 한다.

- 이 기간까지 신고하지 않은 사채는 갚지 않아도 된다.

- 신고한 사채는 3년 거치, 5년 상환으로 갚고 이자는 최대 연 16.2%로 제한한다. 먼저 갚는것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

- 회사의 대주주가 꿔준 사채는 강제로 출자전환한다.

- 신고한 사채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를 하지 않는다. 단, 예외는 있다.

- 이후에 빌린 돈을 안 갚으면 그 때는 알아서들 해라.

- 이걸 무시하고 먼저 돈을 갚으라고 재촉하면 감방행이다.

 

그야말로 사채 시장에 대해 정부에서 올스톱을 걸어버린 것인데, 이 조치는 크게 '사채 전체에 대한 신고', '사채에 대한 상환 기간 연장 및 이자율 제한'이 목적이라 할 수 있는데, 신고를 하지 않은 사채는 무효화를 해버리면서 사채꾼들이 어쩔 수 없이 사채를 신고하게 만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이렇게 신고된 사채는 최장 8년간 돈이 묶여버리게 됩니다. 반대로 기업 입장에서는 3년간 빌린 돈을 갚지 않아도 되고, 나머지 5년동안 1년에 두 번씩 분할 상환을 하면 되기에 훨씬 숨통이 틔였습니다. 이자도 기존 사채 이자보다 훨씬 저리라 부담도 가벼워졌습니다.

 

일단 크게 내용은 이러하고, 1970년대 초반은 지금의 재벌 기업들도 부실기업으로 오늘내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부실기업만 해도 금성사(지금의 LG전자), 제일제당(지금의 CJ제일제당), 한국비료(현재의 롯데정밀화학), 현대건설 등 지금도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기업들입니다. 이들은 자금 동원에 있어 사채 시장에 대한 비중이 높았고, 그 이자 부담이 너무 큰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이에 1971년에 이들 대기업 오너들이 썬글라스 박과 면담을 하여 사채를 비롯한 금융 비용 부담에 대해 해결을 해달라 졸랐고, 1년 정도 뒤에 내놓은 대책이 바로 이 8.3 사채동결인 것입니다.

 

이 조치가 발표되자 민간 경제를 망친다고 야당 등에서 반발도 거셌지만 일단 경제 상황이 영 좋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기에 어떻게든 국회의 동의는 받을 수 있었고, 서슬 시퍼런 정권 앞에서 눈치를 보건 사채업자들은 신고를 안 하면 자기 돈을 완전히 다 털릴 지경에 몰린데다, 신고 기간 중 신고를 하면 이에 대한 자금 출처 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에 눈물을 머금고 신고를 하지 않을 수 없어 신고가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접수된 총 사채 금액은 정부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수준이었습니다.

 

이 조치로 사채에 대한 상환 부담이 가벼워진 기업, 특히 사채 의존도가 높았던 재벌들은 그야말로 한시름 놓을 수 있었고, 이후 일시적으로는 경제 상황이 좋아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다음해인 1973년에는 경제성장률이 3배 가까이 뛰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부의 사채 자금 출처 조사 면제는 어디까지나 기존 사채에 대한 이야기지 앞으로의 이야기는 아닌 만큼 사실상 사채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려는 목적이 있었고, 실제로 사채 가운데 일부는 2금융권인 상호신용금고(현재의 상호저축은행) 형태로 일부 양성화가 이뤄졌습니다.

 

■ 병 주고 약 주는 썬글라스 박, 이게 치적이라 할 수 있는가?

 

이렇게만 보면 정부의 조치는 자본주의적인 부분에서는 상당한 폭거지만, 당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할 수는 있고, 이 조치로 살아난 기업들이 지금의 주요 재벌 기업이 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사채의 양성화라는 점에 대해서도 효과를 봤는데, 이 조치 시점의 저축률은 15% 내외에 불과했는데, 썬글라스 박이 쿠데타를 일으킬 당시의 1% 수준보다는 많이 올라왔다고는 해도 여전히 국내 자금으로 기업에 대출해주기엔 너무 부족한건 사실이었고, 이후 사채가 일부 양성화되며 저축률이 올라갔습니다. 대한민국의 저축률은 1970년대 중반에 20%를 돌파하고, 1970년대 후반에는 30% 전후까지 증가하고 현재까지도 저축률은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범인은 바로 너!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8.3 사채동결의 직전 상황, 그리고 그 결과만 나열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배경과 이후 몇 년 뒤의 상황을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결과는 좋았다고만 할 수도 없습니다. 일단 기업들이 사채에 의존하게 된 배경에는 썬글라스 박의 실책, 아니 고의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썬글라스 박이 쿠데타를 일으킬 당시 대한민국의 저축률이 1%대에 불과하다고 적은 바 있습니다. 그만큼 국민들은 돈이 없었습니다. 1970년대 초반까지 10%대 초반에 그친 것도 경제가 발전은 하는데 그만큼 물가도 올라서 여유가 크게 늘지 않은 것이 원인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돈은 있는 곳에는 있는 법인데, 그 돈이 있는 곳들에서 기업에 사채로만 돈을 빌려준게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이율이 높은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다른 원인도 있습니다. 이 원인을 바로 썬글라스 박이 제공했는데, 바로 증권파동과 1962년의 화폐개혁(디노미네이션입니다.) 증권파동은 썬글라스 박이 비자금을 만들기 위해 중앙정보부를 동원해 고의로 일으킨 중대 경제범죄이며, 화폐개혁은 이 증권파동을 비롯한 실정을 만회하겠다고 무리한 행동을 벌였다 은행에 대한 국민의 신뢰까지 잃게 만들었습니다.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주식 발행을 통해 자본금을 확충하고, 중단기적인 자금은 은행을 통해 상대적인 저리로 확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주식 시장은 썬글라스 박이 고의로 망쳐 놓았고, 화폐개혁의 실패는 돈을 가진 사람들이 은행을 피하게 만들었습니다. 돈 있는 사람들이 돈을 굴릴 수 있는 방법을 사채 말고는 딱히 없게 만들어 놓고는 사채가 문제라고 뒤통수를 친게 썬글라스 박이니 사채업자들과 기업 입장에서도 병주고 약주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사건은 이미 이전에 다룬 적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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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 동결은 거대한 사채업자들만 손해를 보게 만든 것은 아닙니다. 위에 적은 것 처럼 주식 시장과 은행 모두 불신이 가득했기에 서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알부자도 아닌, 지금의 중산층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들도 사채에 투자를 많이 했는데, 이들 역시 돈이 수 년간 묶이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소액의 사채는 동결 기간을 최장 8년에서 최장 4년으로 줄여준다고 했지만 그래도 돈이 묶인 것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8.3 사채동결은 사채에 대한 비중이 너무 높았던 대기업들만 좋았으며 돈이 많았던 큰손들, 그리고 중산층까지 모두 손해를 안겼습니다. 저축할 돈도, 사채시장에 꿔줄 돈도 없던 서민들은 아무것도 나아진 것이 없었구요. 이 조치는 기업들에게 '정권에게 잘 아부하면 죽을 것도 살려준다'는 '대마불사'의 경험을 주었고 이는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악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사채 이외에도 금융권의 영역인 어음까지 동결을 시키면서 은행에 대한 정부의 지배력도 강해지며 관치금융 성격이 더욱 짙어지는 악영향도 주게 됩니다.

 

또한 슬프게도 이 조치로 대한민국 경제가 크게 살아났는가 하면 꼭 그렇지도 못했습니다. 이건 썬글라스 박 자체의 잘못보다는 환경이 나쁜 것도 있는데, 바로 오일쇼크가 터졌기 때문입니다. 경제 상황은 그냥 1973년에 잠깐 반짝하더니 바로 오일쇼크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그나마 1970년대 후반에는 좀 회복되나 했는데 1980년에 다시 2차 오일쇼크가 터집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썬글라스 박은 2차 오일쇼크로 경제가 박살나는 꼴은 보지 않고 야수(?)의 손에서 날아간 총알에 심장(?)을 맞고 저 세상을 갔습니다.

 

추신: 아, 그리고 쓸데없는 잡지식 하나...

 

지금까지 긴급명령은 총 16번 나왔고, 가장 마지막에 나온 긴급명령도 한 세대 전이라서 모든 긴급명령이 지금은 의미를 잃었다 생각할 수 있지만... 아직 한 건의 긴급명령은 유효합니다. 즉 다른 법으로 대체되지도, 그 역할을 다해 폐지되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게 대통령긴급명령 제12호, 포획심판령입니다.

 

 

포획심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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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냐면 런승만이 이승만 라인 또는 평화선으로 불리는 해상 경계선 안에 들어온 타국의 배를 나포하여 처벌하겠다는 것인데, 정확히는 일본을 노린 것입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독도 주변 바다는 우리나라와 일본 어부들이 다 자기 영역이라고 하며 다툼이 잦았는데, 그나마 1952년까지는 일본 정부라는게 있기는 해도 자체적인 능력이 없는, 'GHQ 쇼군'의 통치하에 있는 나라라 미국이 중간에 컨트롤이 가능했으나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일본이 국권을 되찾자 문제가 생깁니다. 국권을 되찾자 일본 정부가 독도에 상륙해 자기네 땅이라고 팻말을 박자 뼛속까지 반일주의자인 런승만이 무리수를 둬가며 선언한게 이 평화선이며 후속 규정으로 발표한게 이 포획심판령입니다. 아, 런승만 정권에서 친일파를 중용한 것이 런승만이 친일파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런승만 본인은 죽는 그 날까지 반일주의자였습니다.

 

요약하면 일본을 비롯해 타국 배가 평화선에 들어오면 다 나포하겠다는 것이 포획심판령인데, 평화선 자체가 꽤나 무모하고 국제법에 안 맞는 이야기이기는 했습니다. 당시에는 영해에 대한 인정 범위가 매우 좁았는데, 그 시절에 지금의 배타적경제수역 이상의 영역을 잡고 사실상 영해로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상황은 일본에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당시 일본은 국권을 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영향력이 강했는데, 대한민국이 전쟁중이라 정신이 없을거라 생각하여 이렇게 일은 벌였는데 대한민국에서 예상 밖으로 강경하게 나왔고 이렇게 일이 터졌을 때 중재를 해줄 미국은 일본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중립을 가장하여 실제로는 대한민국의 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에서 정말 대놓고 일본 선박을 나포하고 사람은 송환하되 배는 먹어버리는 일을 벌이자 이후에는 저 평화선을 어느 정도 지키며 한 발 물러서게 됩니다.

 

이 평화선은 일본에 유화적인 썬글라스 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라지는데, 한일어업협정을 맺으며 이 평화선은 사실상 소멸하고 포획심판령도 의미를 잃게 됩니다. 문제는 이 평화선에 들어온 배를 나포한다는 포획심판령이 평화선이 폐지되어도 폐지되지 않은 것인데, 법 자체는 이미 사문화된 상태라서 아무도 신경을 안 씁니다만 그래도 폐지된 것은 아닙니다. 아마 시간이 훨씬 더 흘러 무언가 이벤트를 벌이며 폐지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