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무언가 쓸 것이 없으면 나타난다고 블로그 주인장이 스스로 실토하는 대한뉴스 시리즈, 오늘 주제는 그나마 좀 얌전한 주제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우리나라 기준으로 얌전한 주제고 호주같은 나라는 역사적으로 이를 박박 가는 주제죠. 이 호주 이야기는 끝에 살짝 써보기로 하고... 오늘의 주제는 바로 '토끼' 되겠습니다.

일단 겉보기엔 귀여워서 어린이들은 다들 좋아하고 어른들도 그런대로 좋아하는 이 동물, 때로는 조루의 상징이자 성욕의 상징으로도 통하는 이 동물, 뭐든 다 갉고 파먹어 밭의 천적이라 불리는 이 동물. 그런데 이 동물을 '가축'이라고 생각해본 분은 얼마나 되실지요? '일단 가축 맞는 것 같은데...' 하실 분이 대부분일 것입니다만, '애완동물'이나 '야생동물'의 이미지가 가축의 이미지보다는 더 강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토끼는 가축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축과 관련된 정의를 내리는 법률이 '축산법'인데 이 법 및 시행령, 시행규칙에서 명시하는 네 발 달린 동물은 이렇습니다. 나머지는 대한민국 법률상 가축이 아닌 것입니다.
| 소 | 말 | 양 | 염소 | 돼지 |
| 사슴 | 노새 | 당나귀 | 개 | 토끼 |
| 오소리 |
굵은 글자에 밑줄쳐진 것이 축산법 본법에 기재된 '메이저리그' 가축, 그냥 밑줄만 친 것이 축산법시행령에 기재된 '마이너리그' 가축, 이것도 없는 것이 축산법시행규칙(정확히는 고시)로 지정된 '독립리그' 가축 되겠습니다. 예. 고양이는 가축이 아닌 그냥 동물일 뿐입니다. 반대로 토끼는 마이너리그급이지만 일단 나라에서 지정한 분명한 가축 되겠습니다.
토끼의 가축화 역사는 로마시대까지 올라간다고 합니다만, 그 전 고대시대로 가는 다른 메이저 동물보다는 가축화가 좀 늦었습니다. 사실 토끼는 가축으로서는 꽤 장점은 있습니다. 일단 번식이 엄청나게 빨라서 관리만 잘 해주면 회전 속도가 빠르며, 먹이도 그냥 풀 가운데 토끼가 먹을 수 있는 것만 골라서 주면 되니 돼지처럼 사람의 밥을 빼앗지도 않죠. 물론 잡식성이라 풀 이외의 곡식같은 것을 줘도 되구요. 그럼에도 전 세계적으로 메이저 가축이 되지 못한 이유가 있는데, 가축화를 성공했다 하지만 야생성이 여전히 강하고 공격성도 강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주면 그야말로 학살극이 벌어지고, 그렇지 않아도 활발하게 움직이는 동물이라 살이 잘 안 찝니다. 즉 가죽을 얻는 용도로는 쓸만한데 고기용으로는 가성비가 안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토끼 사육의 역사는 더 짧습니다. 사실 토끼도 분류가 좀 다양한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토끼(Rabbit)는 집토끼라 하며, 우리나라에 자생하던 야생 토끼는 한국멧토끼라는 이름의 산토끼(Hare)였습니다. 토끼처럼 안 생긴 우는토끼(Pika)도 있지만 이건 드무니 보통 토끼하면 집토끼와 산토끼로 나뉜다 보시면 됩니다.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집토끼가 없었기에 토끼 = 산토끼였지만 유럽에는 집토끼와 산토끼가 모두 있다보니 저렇게 나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화이트 래빗'과 '마치 헤어'가 따로 나오는게 이 때문이죠. 하여간...
집토끼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일제시대 전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전에도 산토끼를 사냥해서 가죽이나 고기를 얻는 경우는 있었지만 산토끼를 가축으로 기른다는 생각은 안 했죠. 집토끼가 아무래도 산토끼보다는 가죽과 고기를 더 얻을 수 있다보니 가축으로 들여온 것인데, 이 때에도 메이저 가축은 되지 못했습니다. 일제가 패망한 뒤에도 이렇게 토끼 사육은 정체 상태였는데, 그걸 다시 불을 붙여보려 노력한 것이 썬글라스 박 되겠습니다. 위의 저 대한뉴스가 1962년 것입니다.

여기서 '앙고라 토끼'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토끼도 품종이 좀 많죠. 사실 우리가 흔히 집토끼 이미지로 갖는 흰색 토끼는 '일본백색종'이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가축으로 사육하긴 하는데 위에 말한 앙고라 품종이나 자이언트라는 품종이 고기와 가죽용으로 많이 사육됩니다. 앙고라는 이름 그대로 털도 풍성해서 당시는 털을 목적으로 기르라고 장려했죠. 앙고라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좋아하시는 분들은 뭐 아실 품종일 것입니다.
썬글라스 박은 토끼를 대량사육 말고도 학교에서도 기르라 하고 집에서도 한두마리씩 기르라고 장려했습니다. 1990년대까지는 국민학교/초등학교에서도 정서 교육 차원에서 토끼 사육을 한 곳이 꽤 있었을 것입니다. 스트레스만 덜 주는(즉 밀도가 낮은) 환경이라면 속된 말로 배춧잎 조각만 줘도 잘 먹으니 나머지는 사육 환경만 깔끔하게 관리해주면 그만이라 그나마 집이나 학교에서도 기를만 합니다. 부카니스탄은 이런 이유 때문에 아직도 토끼를 기르는 경우가 꽤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토끼가 경제동물로는 그렇게 가치가 높지 않은 마이너 동물인건 다 이유가 있죠. 위에 적은 바와 같이 사육 환경이 스트레스가 많을 경우 동족상잔이 벌어지기에 대량 사육에 그렇게 적합하지도 않은데다, 운동량이 많아서 먹이는 사료에 비해 살도 잘 안 찝니다. 그렇다고 토끼 가죽이 무슨 프리미엄인 것도 아니구요. 정말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을 때는 정말 애들 용돈벌이용으로는 쏠쏠했을지 몰라도 나라가 그런대로 먹고 살만한 지경에 이르니 산업화를 할만한 메리트가 싹 사라진 것입니다. 대략 1990년대부터 대량 사육은 사라졌고, 지금은 극소량의 토끼 고기와 가죽 수요를 위해 사육하는 농가가 있는 정도고 그 이외에는 그냥 애완동물 아니면 실험용 동물로 기르른 것이죠. 애완용으로는 저 앙고라도 있지만 롭이어나 드워프, 호토같은 종이 인기죠.
저도 일단 도시민(?)이라 집에서 토끼를 길러본 추억은 없습니다만(대신 '얄리'를 길러본 경험은 있습니다.), 국민학교에서 토끼장이 있던 기억은 납니다. 이 정도로 토끼 사육은 정말 한 때의, 그것도 마이너한 산업이었습니다.

자, 우리나라 집토끼 이야기는 여기서 접고... 우리나라 산토끼 이야기와 호주의 '바이오하자드' 이야기를 해봅니다. 위에 우리나라의 고유 토끼는 한국멧토끼라고 적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산에서 토끼 보신 분 얼마 없을겁니다. 심지어 깊은 산 속 옹달샘에 가도 토끼 안 보입니다. 그렇다고 멸종위기동물은 아닌데, 정말 보기 힘듭니다. 반대로 넘치게 보이는 고라니도 멸종위기동물인데 말이죠.T_T 그렇다고 호주처럼 토끼하고 전쟁을 벌이는 것도 아니고, 토끼는 수렵 대상이기는 해도 덫으로 잡는건 금지되어 있어서 수렵으로 줄어든 것도 아닙니다.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캣맘께서 하악하악하는 길냥이, 아니 들냥이들이 그 원인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여우같은 토끼의 천적이 거의 없는 나름 토끼의 천국같은 환경인데, 이 때 등장한 천적이 저 들냥이라는 것입니다. 들냥이가 한두마리도 아니니 그냥 동네 야산의 토끼가 절멸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토끼에 치명적인 출혈열 바이러스가 1980년대부터 돌았던 것도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그 이외에는 산림 녹화를 원인으로 꼽기도 하는데, 과거 산림 녹화의 결과 숲이 너무 빽빽하게 우거진 나머지 햇볕을 받지 못한 지표면에서 풀이 잘 자라지 못하고 풀을 먹이로 삼는 토끼 개체도 줄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잦은 산불도 토끼 개체수를 줄이는 원인이 되긴 할 것입니다. 이렇게 웬만해서는 토끼 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군락지는 있어서 바로 멸종 위험은 아직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호주의 '토끼대전'입니다. 호주의 토끼와의 악연은 19세기 중반에 사냥용으로 유럽의 집토끼를 풀어 놓은 것을 그 시작으로 보는데, 이 토끼들이 야생 토끼와 섞이면서 튼튼하고 번식력이 좋은 품종이 되고 맙니다. 그렇지 않아도 호주에는 여우같은 전통적인 토끼의 천적이 없고, 악어나 도마뱀처럼 토끼를 잡아먹을만한한 다른 동물도 다들 잡아버려서 남은게 거의 없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이미 토끼는 국가적인 문제로 올라왔고, 20세기 초반이 되면 아예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지경으로 토끼가 퍼지게 됩니다.
경작지와 집 주변을 제주도처럼 돌로 벽을 쌓아서 막아 봤지만 중과부적. 아예 군대까지 동원하여 잡아 봤지만 정말 '새 발의 피' 수준도 안 되었습니다. 토끼들이 지나간 밭은 제대로 된 작물이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피해가 컸으니 호주에서는 이 토끼를 '재앙'(Rabbit Plagues)으로 불렀습니다. 호주 정착민이 이주하면서 사냥감으로 들여온 것이라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린' 것이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희망은 이미 날개를 접은' 상황이 되나 했는데...

진 맥나마라 여사(대영제국훈장 2등급인 DBE 수여자라 기사 작위 가진 분입니다.)가 등장하면서 조금 상황이 바뀝니다. 이 분은 원래 소아과 전문의로서 소아마비에 대한 당대 호주 최고의 권위자라 해도 좋은 분인데, 이 분이 미국 남부와 남미에서 토끼에 유행하는 점액종 바이러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바이러스는 집토끼에 대해 거의 100%에 가까운 폐사를 낳는 바이러스인데 이걸 인위적으로 퍼트려 토끼를 잡자는 발상을 냅니다. 1930년대에 최초 실험에서는 그리 큰 효과를 얻지 못했지만 1950년대에 습하고 더운 기온이 바이러스를 활성화시키고, 모기 등이 바이러스 전파에 유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아 다시 시험을 했고, 이번에는 토끼에 대한 바이오하자드 테러(?)가 성공해 호주의 전체 토끼 개체의 95%가 줄어드는 극적인 효과를 낳습니다. 현실의 엄브렐러사의 강림인데, 어찌 보면 생물학 테러에 가까운 일이지만 프랑스 등 서유럽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토끼 잡기를 나섰으니 호주만 욕하기도 어려운, 토끼로 고생한 나라들이 정말 코너에 몰려 선택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방식은 더러워도 인간 기준에서는 해피엔딩이 되어야 할텐데... 살아 남은 토끼들이 이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을 가지면서 다시 폭발적으로 토끼 개체가 증가했습니다. 그야말로 만렙토끼의 등장입니다. 이에 굴하지 않고 1980년대 한반도에서 멧토끼를 줄인 출혈열 바이러스를 1990년대에 다시 퍼트리는 2차 바이오하자드를 일으켰는데, 이 때에도 처음에는 효과가 좋았는데 다시 저항력을 지닌 개체가 늘어나면서 무용지물. 2010년도에 이 출혈열 바이러스의 변종이 잠시 맹위를 떨치나 했으나 역시 동일한 이유로 토끼 박멸에 실패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호주에서는 애완용 토끼를 기를 생각을 안 하는 것이 좋은데, 토끼를 애완용으로 기르는 그 자체는 불법은 아니지만 토끼와 관련된 모든 치료 약품의 생산과 수입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적지만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 탄식은 하늘을 가리운 사건 되겠습니다. 아무렇게나 외래종 생물을 들여와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리는 음악을 듣고 이번 이야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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