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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 보는 대한뉴스(56) - GPS의 마중물, 대한항공 007편 격추사건

dolf 2026. 5. 12. 07:05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말은 참으로 널리 쓰입니다. 사실 이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보통 사람들은 무언가 문제가 터진 다음에야 그 문제를 고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소 잃고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면 다행인 것이고 소 잃고 외양간을 안 고쳐 또 소를 잃는 것도 흔하죠. 어쨌거나... 소를 잃은 것에 대한 충격은 외양간을 고치게 만드는 분명한 이유가 됩니다만, 때로는 그 외양간이 그냥 고쳐지는 것이 아닌 무슨 벙커처럼 업그레이드가 되기도 합니다. 외양간을 고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기술이 개발되고, 다른 분야에서 쓰이던 기술도 가져다 붙이게 되는 것입니다.

 

1960~80년대에 대한민국은 여러모로 항공 재앙(?)을 겪었습니다. 물론 사고는 제외하고 말입니다. 부카니스탄 공작원에 하이재킹당하고, 부카니스탄을 그냥 흠모한 사람에게 하이재킹당해 추락하고, 중공 비행기가 갑자기 불시착하고, 역시 부카니스탄 공작원 손에 공중폭파당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또 적을일이 있을 듯 하고... 1978년에는 소련 영공을 침범한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 전투기가 쏜 미사일에 맞고 얼어버린 호수에 불시착한 일도 있었죠. 그렇지만 이 사건은 현재까지 대한민국 국적기 최대의 사망 사건에 대한 오프닝에 불과했습니다. 바로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입니다.

 

전 세계 항공 사고 사망자 12위, 대한민국 국적기 사망자 1위를 기록한 이 사건, 참으로 불행한 사건이었습니다만 이 사건은 '나름' 한 세대 뒤에는 전 세계가 애용할 한 가지 기술에 대한 보급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GPS' 되겠습니다. 우리 손에 들린 휴대전화에, 우리가 타는 차의 내비게이션에 들어가는 기반 기술인 GPS, 그것과 이 대한항공 007편 격추사건은 나름 관계가 있습니다. 아, 다만 일각에 알려져 있는 것과 좀 다르게 '이 사건이 GPS 시대를 열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의 이야기는 뒤에서 자세히 적어 봅니다.

 


 

대한항공 902편 격추사건 승객 귀환 대한뉴스 되겠습니다

 

위에서 이 사건에 대한 오프닝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게 1978년에 일어난 대한항공 902편 격추사건입니다. 사실 007편 격추사건과 기본적인 원인이나 중간 과정은 비슷해 정말 오프닝이라는 말이 농담이 아닙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지금은 러시아 방면 항로가 막혀 있습니다만, 소련이 멀쩡히 존재할 때는 아예 그쪽은 들어 갈 생각도 못 했습니다. 더군다나 항공기의 비행 거리도 짧다보니 직항 노선도 별로 없어서 미주나 유럽 노선은 알래스카에 있는 앵커리지 공항을 거쳐 가는게 보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저 당시는 GPS도 없던 시절. 비행기는 나침반과 관성항법장치(INS), 좀 나은 경우 장거리 내비게이션, 즉 LORAN같은 좀 전근대적인 수단을 통해 자신의 위치와 가야 할 방향을 확인하며 가야 했습니다. 문제는 이것들이 오차도 큰데다 잘못 읽기도 쉽다는 것이죠. 

 

1978년 4월 20일, 파리를 출발해 앵커리지를 거쳐 김포공항으로 오는 대한항공 902편은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북극 상공에서 앵커리지가 아닌 정 반대의 소련 무르만스크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 사건은 대한항공 주장과 소련 주장이 좀 다른 부분이 있기는 하나 일단 섞어 적으면... 기내에서는 조종사끼리 '이 산이 아닌게벼'하며 서로 비행 경로에 대해 다투고 있었고, 자기 영공으로 들어오는 소련의 방공 기지에서는 '이거 민항기같은데 격추해야 해 말아야 해' 하면서 또 싸우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 때 '갈겨~'하면서 지대공 미사일을 쐈다면... 그냥 산산조각이 났겠죠. 

 

이게 Su-15 요격기

 

어쨌거나 소련에서는 지대공 미사일이 아닌 요격기를 올려보내 상황을 확인하고 격추하는 것으로 정해서 Su-15 전투기가 올라갔습니다. 이 전투기는 영공을 침범한 902편에 항로 변경과 착륙을 지시하였으나 따르지 않고 오히려 항로를 마음대로 바꿔서 도주하려는 것으로 판단해 지상의 지시를 요청했고, 지상 기지에서는 격추 지시를 내렸으나 전투기 조종사는 아무리 봐도 그냥 민항기라 격추 지시를 거부하다 어쩔 수 없이 그나마 피해가 덜 가는 날개 끝에다 공대공 미사일을 쐈습니다.(이건 소련측 주장)

 

다만 이것도 불운이었는데, 당시 902편 조종사들은 전투기의 접근을 보고 통신을 시도했으나 민항기의 통신 주파수와 Su-15의 통신 주파수가 달라서 통신이 이뤄지지 않았고, 어차피 저 소련 전투기 조종사는 영어를 못 했습니다. 어쨌거나 전투기를 확인하여 항공기 외부 조명을 전부 켜 자신의 위치를 알렸고, 이 때까지만 해도 902편 승객들은 별 일이 아니라 생각해서 전투기 사진을 찍으며 여흥 비슷한 기분으로 있었습니다. 그 전투기가 갑자기 사라진 다음에 미사일을 쏠 줄은 몰랐습니다만.(이건 우리측 주장)

 

Su-15가 날개 끝을 조준해 쏜 미사일은 날개 끝을 파괴하고 그 파편이 기체를 덮쳐 두 명의 승객(한 명은 즉사, 한 명은 불시착 후 사망)이 목숨을 잃었고, 비행기는 급격히 하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사람들은 다 죽나 했으나 다행이 최소한의 비행은 가능했고, 이후 도착한 소련의 교대 전투기의 지시를 따라서 꽁꽁 언 호수에 불시착을 했습니다. 우리측 주장은 원래는 도로에 불시착 예정이었는데 그게 불가능해 어쩔 수 없이 호수 불시착을 선택했다 합니다만, 이것도 위험이 컸는데 당시 해당 항공기 기장이 대한항공에서도 손꼽히는 베테랑인 덕분에 불시착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902편 승무원과 승객들은 소련 당국에 억류되었는데, 소련에서도 '위장한 정찰기인줄 알았는데 정말 민항기'여서 해당 억류를 맡은 군인들이 당황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억류라고 하지만 나름 정중한 대접을 받고 조사 후 별다른 사항이 없자 미국의 중재 끝에 유럽을 거쳐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소련은 '스파이질 하려다 걸리니 민항기라고 발 빼는 거임'이라고 내부적으로는 주장했지만 실상은 잘못 들어온 민항기에 미사일 쏜 꼴이라 더 이상 사건을 키우지는 않았습니다. 나중에 조사 및 증언등을 통해 위치 확인 수단인 LORAN과 관성항법장치 모두 고장인 상태에서 북극에서는 오류가 심한 나침반에 의존하여 비행하다 사단이 난 것이었고, 항공기 정비와 승무원 피로를 고려치 않은 대한항공 문화의 문제도 지적되었습니다. 아, 902편 기체는... 소련이 날로 먹었습니다.T_T

 

이 사건에서 중요한 사실이 두 가지가 있는데, 먼저 당시 항로 및 유도 장치의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자신의 비행 방향과 현재 위치를 잘못 읽고 소련 방향으로 갈 가능성은 충분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소련은 나름 영공 침범에 민감했다는 점도 적어야 하는데, 실제로 미국이 민항기로 위장한 정찰기나 전자전기를 투입해 소련 영공을 침범하거나 그 주변을 날아다니는 일이 꽤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자전기가 중요한데, 소련 항공기들이 사용하는 통신 주파수와 레이더 전파 정보를 수집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소련이 얼마든지 영공을 침범한 여객기를 공격할 가능성은 상존했고, 이게 나중에 더 큰 사단을 일으킵니다. 

 

 

1983년 9월 1일. 뉴욕을 출발해 앵커리지를 거쳐 김포로 가던 대한항공 007편이 사할인 근처에서 Su-15에 격추당했습니다. 그나마 날개 끝에 미사일을 맞고 불시착해 사망자가 둘 뿐이었던 902편과 달리 공중분해당한 007편은 승무원과 승객 포함 269명이 한 번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위에서도 적었지만 이 사고 기록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사건 경위는 902편과 같습니다. 원래 007편은 앵커리지를 출발해 쿠릴열도와 캄차카반도 남쪽을 지나서 일본 동북지방을 뚫고 김포로 가는 경로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훨씬 북쪽으로 항로를 잡아 소련땅인 캄차카반도를 뚫고 사할린까지 뚫고 비행을 하고 맙니다. 사실 이 항로 이탈은 앵커리지 공항측에서 이미 파악했으나 이미 앵커리지의 관제 범위를 넘어버려 항로 이탈 경고는 전해지지 못했습니다.

 

다시 등장하는 Su-15

 

어쨌거나 007편은 캄차카반도에 진입하는데, 당연히 이 지역 소련군은 그야말로 난리가 벌어집니다. 속으로는 '미국 또는 미국의 앞잡이들이 또 민항기로 위장한 전자전기 보내는구나'하면서 스크램블을 걸었지만, 캄차카반도가 작아서 그냥 쓱~ 통과하는 바람에 요격기가 올라가기 전에 기지 관할 지역을 벗어납니다. 그렇지만 소련은 이 시점부터 007편을 계속 감시하고 있었고, 이게 다시 사할린에 나타나자 '미국의 위장 전자전기가 맞음'이라고 판단하여 요격기가 올라갑니다. 이전 902편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우리(미국)측과 소련의 주장이 좀 갈립니다. 

 

사할린에서 발진한 소련 전투기 조종사는 처음에는 '이거 민항기인지 몰랐다'고 했으나 실상은 달도 밝아 대한항공 로고도 잘 보이고 내부 조명도 환해 기체 내부를 볼 수 있어서 민항기인 것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격추 전 경고 목적으로 기관포를 발사했는데, 문제는 예광탄도 없는 기관포를 한밤중에 무슨 수로 파악하냐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007편은 그대로 갈 길을 갔습니다. 이 때 마침 007편이 고도를 높이면서 소련 전투기를 지나쳤는데, 소련은 이 행동을 '전투기가 있는걸 알면서도 도주를 시도했다'고 판단했고 이 조종사 역시 다시 007편의 꼬리를 잡고 미사일 두 방을 날렸습니다. 이 미사일 가운데 하나가 기체 뒷면에 구멍을 뚫었고, 급격한 기체 감압과 함께 007편은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902편같은 기적은 없었습니다.

 

007편의 추락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사건이 되었는데, 이미 도쿄 관제소에서 관제를 하던 중에 추락한 것이기에 도쿄에서는 바로 사고를 파악했고, 이 내용은 당연히 미국과 우리나라에도 전해집니다. 소련도 이 상황에서는 발을 뺄 수 없기에 격추 사실은 시인합니다. 물론 '미국(미국의 앞잡이)들의 민항기로 위장한 군용기였다'는 그 주장을 반복했습니다만, 나중에 007편이 추락한 바다 주변을 수색했더니 민항기 승객들의 유류품만 나오자 그제서야 '정말 민항기를 격추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블랙박스까지 찾으면서 정말 민항기에 미사일을 날린 것이 확정되고 맙니다. 

 

이렇게 구석에 몰린 소련은 늘 그렇듯이 '다 미제의 음모고 민항기로 위장한 군용기 맞다니까'라고 우겨댔지만 미국이 관련 증거 자료를 내밀면서 소련이 고의적으로 민항기에 미사일을 날린게 맞다는 사실이 전 세계에 알려집니다. 미국 입장에서도 자기네 하원의원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격추당했으니 이건 미국과 소련의 정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소련은 안 그래도 3세계에 입장이 난처한 상황에서 더욱 외교적으로 수세에 몰리게 되고 이는 소련 붕괴시까지 타격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왜 이 사단이 났는가... 그게 밝혀진 것은 소련이 무너진 다음의 이야기였습니다. 88 서울올림픽에 소련이 참가하면서 당시 대통령이던 물통은 007편 격추사건을 더 이상 추궁하지 않기로 했고, 이후 소련과 수교한 이후에는 소련이 나름 유감을 발표하며 일부 유류품을 우리나라에 전달했습니다. 블랙박스는 소련이 무너진 1992년에 우리측으로 반환되었는데(그 전까지는 블랙박스의 존재 자체를 숨겼습니다.), 이 블랙박스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전달되고, 나중에 말이 나오지 않도록 미국과 러시아,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가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적으면 이 사단의 원인은 902편과 같았습니다. 조종사들이 위치를 잘못 잡았기 때문인데, 그나마 902편은 정말 나침반 하나만 믿을 수 밖에 없었지만 007편은 LORAN, INS 모두 정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냥 나침반 하나 믿고 비행한 것인데 왜 이랬는지는 현재까지 미궁입니다. 조종석의 대화에서도 관련 내용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출발 전 미리 설정해야 하는 INS 항로 설정에 실수가 있었고, 이걸 정정하면 스케줄 지연 등 회사에 징계 사유가 발생하기에 이 실수를 숨기기 위해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만 있을 뿐입니다. 

 

 

하원의원이 죽었으니 미국도 난리가 났습니다

 

어쨌거나 소련이 무고한(실수는 했지만) 민항기를 격추한 사실은 변함이 없는 만큼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습니다. 정말 '빨갱이 개객기' 모드가 서울에서 광주까지 다 들끓었습니다. 그나마 물밑에서 이뤄지던 소련과의 외교 접촉도 1년 가까이 완전히 멈췄는데, 그나마 1984년부터 재개가 이뤄져 1985년이 되면 나름 관계 개선이 이뤄지기는 했습니다만 이건 소련이 스스로 판 무덤이었죠.

 

이 사건에서 피해는 우리나라가 보고, 소련은 그 응분의 대가(?)를 치렀으며, 미국은 꽤나 이득을 보았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우리나라야 당연히 역대 최대의 항공 사고 사망자를 기록했으니 당연히 피해자고, 소련은 '민간인 학살자'로 전 세계에 이미지를 완전히 망쳐버려서 당시 복잡했던 소련 내 상황에 더해 제3국과 위성국에 대한 외교에 애를 먹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왜 미국이 이득이었냐 하면...

 

나름 미노년(?)인 유리 안드로포프. 오래 살았다면 이 사람 손에 소련의 개혁이 이뤄졌겠죠.

 

일단 소련은 이 사건이 벌어졌을 때 제대로 상황 판단을 못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소련의 최고 지도자는 유리 안드로포프로 막 바뀐 상태였습니다. 10년만 더 살았어도 소련이 30년은 더 갔을거라는 이 사람, 이미 정권을 잡을 때 부터 오늘 내일 하는 건강 상태긴 했으나 첫 보고부터 '미국의 첩보기가 침입해서 격추했다'는 잘못된 내용을 받는 바람에 늘 그렇듯이 '입 다물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위에서도 적었지만 미국이 전자전기를 소련 영공에 침투시켜 전자 정보를 수집하는게 하루이틀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소련 언론도 적기의 영공 침범만 보도했지 격추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나중에서야 '남한 민항기 격추였음'이라고 보고를 받지만 몸 상태가 너무 엉망이어서 쉬고 싶었던 안드로포프는 '욕하다 제풀에 지치겠지'하며 사건을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소련이 민항기임을 알고 격추했다는 사실을 미국과 일본이 폭로합니다. 미국과 일본은 소련의 무선 통신을 감청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얻은 내용을 국제사회에 터트린 것입니다. 물론 감청 내용을 터트리는 것은 향후 당분간 정보를 얻기 어려워짐을 의미하기에 나름 결단이 필요합니다만, 레이건 정부는 계산 끝에 이를 터트립니다. 그 결과 미국은 나름 잿팟을 터트리는데, '민간기도 마구 잡는 사악한 소련에게서 세계를 지키는 미국'이라는 정당성을 확보하며 전 세계의 외교에서 훨씬 유리한 위치에 섰고, 당시 레이건 정부가 추진하던 여러 국방 투자(핵미사일 유럽 배치, 화학무기 개발 등)에 대한 의회와 국민들의 부정적인 여론을 한 방에 뒤엎었습니다. 정말 미국 입장에서는 '독수리가 날아왔다' 그 자체였던 셈입니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인 경우가 국가 단위에서는 꽤 있는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 때가 있었죠.

 

 

되짚어 보는 대한뉴스(45) - 봉황이 날아왔다?! 중국민항 납치 사건

요즘 길을 가면 되도 않는 부정선거 이야기를 꺼내면서 아무나 중국인이라 갖다 붙이는 멍멍 사운드가 많이 보이는데, 정말 윤가놈 공무원증을 파쇄한 다음 내란죄로 집어 넣어야 하는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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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청 자료를 통해 소련은 이게 그냥 민항기인지 얼마든지 알 수 있었고, 그걸 알고 있음에도 미사일을 날렸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실제 007편을 격추한 소련 요격기 조종사는 당시에는 당연히 '민항기인지 몰랐다'고 잡아 뗐고, 소련 붕괴 이후에는 민항기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당시 소련 상부에서 미국의 민항기로 위장한 전자전기에 대한 노이로제로 인해 '그냥 보이는대로 격추하라'를 지시가 있어서 민항기인줄은 알았지만 '민항기로 철저히 위장한 정찰기겠지'하며 공격했음을 밝힌 바 있습니다. 어쨌거나 그제서야 소련 안드로포프 정권은 문제의 심각성을 알았지만 이미 어쩌겠습니까? 동유럽에서도 소련 규탄 시위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뒤늦게 사과해봐야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결국 이들은 정권 유지를 위해 그냥 밀고 나가던 것을 그대로 밀고 나가는 선택 말고는 고를 수 없었고, 동유럽이나 중남미 등 소련의 우방국들에게 뜨거운 눈치를 사야 했습니다. 

 

추가적으로 미국 정치권은 이 사건으로 내부적인 부담 하나를 치웠는데, 바로 이 사고로 사망한 래리 맥도널드 하원의원을 처리(?)했다는 것입니다. 맥도널드 의원은 한국전쟁 휴전 30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007편을 탔는데, 다른 의원들은 그 다음에 출발하는 다른 항공기를 타서 참사를 피했습니다. 문제는 이 맥도널드 의원이 민주당원이기는 하지만 흔히 말하는 '꼴통 민주당원'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은 믿기지 않지만 원래 미국 민주당은 미국 남부를 기반으로 하는 보수 정당이었고, 공화당이 북부 중심의 중도 정당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프랭클린 루스벨트~JFK 시절을 거치며 민주당이 리버럴 정당으로 바뀌고 공화당이 보수~극우화되어 반대가 된 것입니다. 저 맥도널드 의원이 저 전통의 민주당원이자 반공을 넘어 극우를 추종하여 공화당에서조차 학을 떼는 강경파였는데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골머리를 앓는 정치인이 사라지면서 미국 정치권에서 한결 부담이 줄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007편 참사는 실상과 무관하게 '미국이 꼴통 정치인 한 명의 생명을 미끼로 일으킨 조작'이라는 음모론이 좀 있었습니다.

 

아, 이 불행한 사건이 GPS와 무슨 관계가 있냐구요? 보통 이 대한항공 007편 격추사건은 미국이 군사용으로 개발중이던 GPS를 민간에 개방한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이 GPS를 개방하여 민항기에서 쓸 수 있었다면 이 사건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이죠. 다만 이는 정확한 내용은 아닙니다. 이 사건이 미국이 GPS를 민간에 개방하는 시점을 조금 더 앞당기고, 개방하는 폭(정밀도)을 늘리는 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사건때문에 미국이 GPS를 민간 개방한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 당시 GPS는 쓸만한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이 사건 당시에 GPS는 제 역할을 할 수 없었습니다. GPS의 개념 자체는 LORAN과 비슷한데, LORAN이 지상 기지국을 이용하는 것과 달리 GPS는 위성을 이용한다는 점만 다릅니다. 이 역사는 스푸트니크 위성이 올라간 당시까지 가는데, 이 위성은 '삐삐삐~' 소리를 송출했는데 이를 들은 존스홉킨스대 연구진들이 '이 신호를 지상 여러 곳에서 잡아서 역산하면 위성 위치가 나온다'라는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당시로서는 그냥 쓰레기통에 들어갔으나, SLBM같은 이동하는 전략 무기에서 ICBM을 쏠 필요가 생기자 이 잠수함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목적으로 해군을 중심으로 저 보고서의 기술을 반대로 하여 '여러 위성에서 쏘는 전파를 잡아 역산하여 내 위치를 잡는다'는 개념을 잡은게 GPS입니다. 물론 해군이 중심에 섰을 뿐 실제로는 이 것 말고도 각군에서 다른 이유로 연구에 참여했습니다만.

 

문제는 저 사건 당시 GPS는 제대로 가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전 세계에 GPS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4대의 위성이 필요하고, 실제로는 백업 등의 이유로 그 이상의 위성이 운영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007편 격추 당시 저 위성은 고작 7개가 올라갔을 뿐입니다. 이게 민간에 개방되어 있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욕만 한가득 먹을 것이 뻔했으니 GPS를 공개하지 않아서 007편이 추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최소한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1990년대는 되어야 할 것으로 봤고 어느 정도 군용으로 뽕을 뽑은 뒤 민간에 개방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007편 추락사건을 겪으면서 미국 정계에서 'GPS라는 이런 불행을 막을 수 있는 기술이 개발중임'을 전 세계에 퍼트렸고 GPS에 대한 전 세계의 기대감이 GPS의 민간 개방, 그리고 그 이후의 군용 기술과의 성능 차이를 줄이고 폐지시키는 것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GPS는 1980년대 말부터 민간에 부분적으로 개방되었고, 2000년에는 군과 민간의 성능 차이가 사라졌습니다.

 

대한항공 007편 격추사건은 냉전 말기의 상당히 불행한 사건이었으며, 대한민국에는 역대 최대의 항공사고라는 멍에를 여전히 남겼으며, 정치적인 이유로 이 사건은 소련 및 그를 계승한 러시아의 분명한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하고 묻혔습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사건이 GPS라는 현재의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을 크게 바꾼 기술을 민간에 풀게 해준 계기 역시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GPS의 민간 개방 및 그 폭을 키운 마중물로서는 분명한 가치가 있습니다. 269명의 목숨이라는 '소 잃는' 일이 GPS의 보급을 앞당기는 '외양간 업그레이드'를 앞당긴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추신: 007편 희생자의 위령비는 충남 천안에 있는 망향의동산에 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망향휴게소의 그 '망향'이 여기서 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