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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 KBS 시청료 문제, 정체성 문제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2014/5/9)

dolf 2023. 5. 25. 12:50

바로 KBS를 공영방송이 아닌 것으로 만들면 됩니다. 더 쉽게 적으면 '국영방송'으로 바꾸면 됩니다. KBS를 국영방송으로 전환하면 시청료에 대한 논란, 그리고 KBS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 자체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물론 좋은 쪽은 아닌 나쁜 쪽의 해결에 가깝습니다만.

일단 일반 국민(시청료를 내는 사람) 입장에서는 전기요금에 합산 청구가 이뤄지는 시청료를 KBS에 낼 필요가 없어집니다. 물론 방송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돈은 필요한 만큼 그것을 국민의 푼돈(?)이 아닌 세금을 운영하는 국가의 돈으로 내는 것으로 바뀌는 것에 불과하기에 결국 세금으로 KBS를 먹여 살리게 되는 만큼 당장 낼 돈이 크게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KBS 지원을 위해 세금을 늘리겠다고 하면 그에 대해 저항할 명분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세금을 늘리지 않고 KBS에 지원을 하는 것은 정부가 열심히 자기 살림을 쥐어짜 할 일이 되며, 여기에 낭비되는 돈을 줄여 쓰는 것이라면 딱히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복지를 줄여 KBS를 지원한다면 당연히 이 역시 저항의 명분이 되겠죠. 시청료는 가난한 사람이나 쁘띠거니님이나, 동네 구멍가게나 63빌딩이나 TV 숫자대로(또는 전기요금 부과 기준대로) 뜯어가는 것이기에 간접세의 약점인 가난한 사람이 세금을 더 내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반대로 세금은 그러한 현상이 덜한 만큼 '가난한 서민을 뜯어 KBS를 먹여 살린다'는 문제는 똑같은 돈을 KBS에 주게 되더라도 조금은 줄게 될 것입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공영'이라는 명분을 벗게 되면서 얻는 이득이 많습니다. 가장 큰 장점은 국민의 눈치를 볼 필요가 거의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공영방송이라는 것은 야당이나 시민사회를 일단 끼워 넣지 않으면 형식적으로 문제가 되기 쉽지만, 국영방송은 이런 내부 운영의 견제 장치는 넣어도 그만, 넣지 않아도 그만입니다. 또한 전 세계 어디서나 '국영방송은 정권의 나팔수'라는 것은 알려진 사항인 만큼 KBS가 지금처럼 또는 지금 이상으로 정권을 보위하는 방송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그러려니하고 넘어가게 됩니다.

물론 국영방송을 안보는 사람도 늘어나기에 지금보다 KBS의 위상은 낮아질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방송이 땡전뉴스가 되건 땡박뉴스가 되건 지금보다 비난은 줄게 됩니다. 욕은 할지언정 그것은 '정권의 나팔수'같은 화풀이성 비난일 뿐 '공정하지 않은 방송'이라는 논리는 펴기 어렵게 됩니다. 국영방송 자체가 정권/국가/정부의 홍보 목적을 띠는 만큼 공영방송과 같은 공정성을 요구하기는 어렵습니다. 방송의 '공정성'은 민영 방송에서도 어느 정도 강조하는 것이기에 그 정도의 최소선은 지켜주지 않으면 욕은 먹겠지만, 정권(정부)가 운영하는 방송이 정권의 편을 든다고 욕을 하기는 어려워지기에 KBS의 윗선은 지금보다 더욱 분명하게 자신의 색을 낼 수 있고, 정부도 자신이 방송에 하고자 하는 말을 더욱 제대로 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이렇게 적으면 모두 Win-Win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KBS를 국영방송화할 경우 문제가 전무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나쁜 쪽의 해결책이라는 것입니다.

국민 입장에서는 대놓고 정권 홍보를 하고 사안에 따라서 국민을 무시할 '수도' 있는 방송을 지겹게도 봐야 합니다. 국영방송화한 KBS는 굳이 정권에 대한 홍보와 두둔을 자제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KBS의 현재 방송시장 점유율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가정한다면 그게 전부 정권과 정부의 나팔수로 작용하게 될 때 국민이 느끼는 피로감은 더 커지게 됩니다. 계속 정부의 앞잡이 역할을 하게 된다면 장기적인 시장 점유율은 줄어들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공중파 방송의 선택의 폭이 좁은 이상 시장 점유율 감소는 매우 크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이 방송이 싫다고 해도 공영방송 시절처럼 공정성을 요구하기도 어려워집니다. 욕은 할 수 있고 국민의 세금으로 국영방송도 먹고 사는 만큼 납세자로서의 요구는 할 수 있겠지만, 직접 KBS에 돈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공영방송과 달리 여러모로 희석이 되는 만큼 공정성 요구 명분 동력이 약해집니다. 야당에서도 국가조직의 일부가 된 KBS를 국회라는 차원에서 예산면에서는 지금보다 더 쥐어 짤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수단으로 공정성을 요구하기는 어려워집니다.

여기에 더해 KBS가 국영화가 된다고 하여 시청료가 사라지는건 아닙니다. 바로 EBS라는 또 하나의 공영방송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EBS를 위해 시청료를 어느 정도 낼 수 있다는 국가 전체의 공감대가 서지 않는다면 EBS는 돈이 없어 망하거나 국영화를 해야 하는 기로에 섭니다. EBS의 국영화는 나름대로 고품질의 컨텐츠를 만들던 EBS를 공부하는 기계를 위한 방송으로 만들 위험도 크기에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닙니다.

국가 입장에서는 눈치를 볼 필요가 훨씬 적은 홍보처를 하게 얻게 되는 대신 그것을 직접 운영해야만 하는 여러 부담이 따릅니다. 방송국 운영에 푼돈이 드는 것이 아닌 이상 그 돈을 예비비에서 빼서 가볍게 쓰기는 어렵고, 어떻게든 다른 부분의 예산을 줄여야 국영 KBS를 운영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 KBS를 위해 세금을 늘리거나 복지 등 국민의 저항이 큰 부분을 건드리게 되면 직접적인 정부지지율의 타격을 입게 됩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간접적인 지배이기에 가끔 말을 잘 안듣기는 해도 돈 걱정 없이 운영하던 홍보 수단을 돈 걱정을 해가며 운영해야 합니다.

운영에는 돈도 들지만 국영방송의 행동 = 정부/정권의 행동이 되는 만큼 만약 KBS에서 사고를 치게 될 경우 그것은 정권/정부 관련자가 사고를 치는 것이 되어 직접적인 타격을 줍니다. 예를 들어 지금 말이 많은 보도국장의 세월호 사망자와 교통사고 사망자를 단순 비교한 망언은 지금이야 방송 하나의 헛소리에 불과하지만, 국영방송이었다면 그 소리는 정권이 참사 사망자를 모욕한 것이 되고 맙니다. 언론은 말을 계속 만들고 해야 하는 것이기에 제대로 통제를 하지 못하면 정권의 위신을 심각하게 깎아먹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어 그만큼 신경을 더 써야 합니다. 정권 입장에서는 완벽한 나팔수를 손에 넣는 대신 그 운영과 관리에 돈도 들고 훨씬 신경도 많이 써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공영방송(MBC 제외. 여기는 공사 체계의 방송이 아닌 주식회사 체계일 뿐더러 시청료의 직접적인 혜택을 받는 곳도 아닙니다.)이 하나만 더 있었어도 KBS를 국영화하고 시청료를 여기에 한 푼도 주지 말자는 말을 꺼내볼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공중파는 정권 보위를 하고 있는 공영방송 하나, 말은 공영방송이라고 하는데 실제 지배 구조는 그렇다고 보기도 어려운 방송 하나, 교육 전용 공영방송 하나, 민영방송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KBS를 국민이 포기하고 국가에게 떠넘기기도 어렵습니다. 나름대로 슬프다면 슬픈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