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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R은 갔다... 하지만 정말 고소하구나

dolf 2025. 9. 4. 13:11

사실 일본에서는 며칠 전 이야기이기는 합니다만, 이니셜D를 정말로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땅을 치고 통곡할 뉴스가 있었습니다. 바로 닛산 GT-R의 단종. 17년을 신모델 하나 안 내놓고 페이스리프트만 하며 울궈먹다 결국 단종을 하고 말았습니다. 올해 초에는 EV로 후속 모델이 나온다, 하이브리드로 후속을 내놓는다같은 썰이 나왔지만 지금 닛산의 경영 상황이 그야말로 나락으로 추락중이라 과연 이 말이 10년 안에 지켜질 수 있을지는 참으로 회의적이긴 합니다.

 

GT-R은 갔습니다

 

정말 땅을 치고 아쉬워하는 분들은 이 지구상에 적지 않겠지만 저는 반대로 '추하게 끝까지 버텼다'라고 단종을 어느 정도 고소하게 여깁니다. 닛산을 수렁에서 건져낸 카를로스 곤을 일본 정부와 손을 잡고 내부 쿠데타를 일으켜 몰아내고 그 직후부터 폭망하기 시작한, 자본주의 국가답지 않은 일본다운 짓을 벌인 닛산이라는 점도 고소함의 이유이며 지나치게 뻥튀기된 GT-R(스카이라인 GT-R 시절 포함)의 브랜드 가치에 대한 고소함도 있으나 사실 GT-R이 망한건 GT-R 자체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GT-R이라는 차의 역사를 좀 적어봅니다. GT-R의 시작은 닛산 스카이라인부터 시작하는데, 스카이라인은 지금도 닛산의 주력 중형차 브랜드입니다. 초기에는 소형차였지만 소비자들의 지갑이 넉넉해지면서 차급도 그에 맞춰 올라간 것입니다. 이 스카이라인의 고성능/스포츠 트림이 바로 스카이라인 GT-R인데, 일반 스카이라인보다 더 고성능/고배기량 엔진을 넣고 4륜구동까지 적용하는 등 나름 신경을 썼고, 아무리 고성능 트림이라도 기본적으로 중형 세단 기반이라 일본 내 레이싱용 베이스 카로 인기가 많았고, 속도를 즐기는 마니아들도 시선도 확 잡았습니다. 비슷한 컨셉으로 스바루 임프레자 WRX나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도 있지만 이들은 아무래도 준중형차 기반이라서 스카이라인 GT-R보다는 좀 급이 낮긴 합니다.

 

스카이라인 GT-R... 분명히 잘 만든 차이긴 하나 그 거품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스카이라인 GT-R 시절의 이 차는 지금의 토요타 86 비슷하게 아마추어부터 프로까지 다양한 레이싱에서 사랑받은 차량임에는 분명합니다. 다만 이 차는 '가성비 스포츠 차량' 이상의 거품이 이미 초기부터 끼어 있었는데, 바로 '포르쉐를 잡은 최초의 일본차'라는 타이틀입니다. 1964년에 닛산 이전의 스카이라인 개발사였던 프린스의 스카이라인 GT-B가 포르쉐 604를 한 바퀴동안 앞선 일이 있었는데 이 사건은 '일본이 독일을 이겼다'는 일종의 국뽕을 일본 국민들에게 안겨줍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냥 두 차 드라이버가 친구라서 한 바퀴만 그냥 앞서 달리게 해준 것 뿐이었고, 스카이라인 GT-B와 포르쉐 604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차입니다. 

 

스카이라인 GT-R의 또 다른 거품은 미국 등 외국에서 낍니다. 스카이라인 GT-R은 오랫동안 일본 내부 레이싱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이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차는 해외 수출 실적이 정말 부실한데, 영국 등 일부 우핸들 국가를 제외하면 거의 수출되지 않았습니다. 이 차를 가장 많이 살법한 미국에서는 법적 규제를 충족하지 못해 아예 공식 수출 기록이 없습니다. 즉 '일본을 싹 쓸었다는 스카이라인 GT-R이라는 차가 있는데 정작 타본 서양인은 거의 없다'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마오이즘이 중국의 철저한 정보 통제로 그 실상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 마오이즘에 환상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는 점은 유명한데, 이렇게 정보가 극히 통제된 상황에서는 환상이 끼기 딱 좋습니다. 여기에 이니셜D나 완간 미드나이트 등 일본의 여러 매체를 통해 이 차가 더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중형 세단이 된 현재의 스카이라인(일명 인피니티 Q50)

 

당시에는 토요타 수프라같은 정통 스포츠카도 일본에 있었지만 스카이라인 GT-R은 실사용부터 레이싱까지 다양한 범위에서 사용이 가능한데다 그 성능과 튜닝 가능성도 검증이 충분히 되어 있는, 일본을 대표할만한 스포츠 차량이었다는 점은 지금도 부인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시장 상황이 변하면서 스카이라인도 변화가 불가피했는데, 한 번 망해버린 닛산을 카를로스 곤이 겨우 되살리기 시작한 시점이라 일본에서만 킹왕짱을 먹는 중형차에 더 이상 주력하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카이라인 GT-R을 포기하고 자연흡기 중심의 수출 시장을 노린 일반 중형 세단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 코드명 V35로 불리는 새로운 스카이라인이었습니다. 이건 지금 V37까지 나와 있고 곧 V38이 등장합니다.

 

카를로스 곤의 구조조정이 먹히면서 닛산은 서서히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되니 없어진 스카이라인 GT-R이 아쉽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닛산은 전통있고 스카이라인과 같은 플랫폼을 쓰는 중형 스포츠 쿠페인 페어레이디 Z(그 완간 미드나이트에 나오는 Z입니다.)가 있기는 했지만 스카이라인 GT-R보다는 브랜드 파워가 좀 밀리기는 합니다. 그래서 GT-R 브랜드의 부활을 목표로 신차 개발에 나섰는데... 그 컨셉이 기존 스카이라인 GT-R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포르쉐 911?! 까짓거 덤벼보라구~ (하지만 실상은...T_T)

 

스카이라인 GT-R이 중형 세단을 기반으로 범용성과 고성능, 가성비를 추구한 차량이라면 새로운 GT-R은 회사 상황이 확실히 나아졌기에 아예 목표를 '수퍼카'로 잡았습니다. 사실 수퍼카라는 단어는 정해진 개념이 없어서 때로는 논란을 키웁니다만, 기존 스카이라인 GT-R보다 훨씬 강력한 출력과 스포츠카다운 쿠페형 디자인으로 2007년에 선보였습니다. 당시 닛산은 수퍼카로서 넘어야 하는 기준점이라 할 수 있는 포르쉐 911과 경쟁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습니다. 뒤에 적습니다만 결국 이것이 GT-R이 망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만.

 

자, GT-R이 망해서 없어졌어야 하는 이유를 적기 전에 이 차가 가진 장점을 적어 봅니다. 닛산은 다른 부분은 스카이라인 GT-R과 성격이 완전히 다름에도 두 가지만큼은 스카이라인 GT-R의 유산을 그대로 지켰는데, 하나는 그 특유의 테일램프이며 다른 하나는 '가성비'입니다. 물론 깡통만 해도 당시 가격으로도 1억원이 우습게 넘었기에 가성비라는 말이 조금 어폐이기는 하나 비슷한 성능을 지닌 다른 차량보다는 확실히 쌌습니다. 자칭 경쟁자인 포르쉐 911보다는 비교가 안 되게 저렴했고, 포르쉐 911의 깡통, 아니 다운그레이드 모델인 포르쉐 911 카레라와 가격 경쟁이 가능하면서 성능은 더 나았습니다. 

 

자... 이렇게 2007년 말, 실제로는 2009년식으로 불러야 하는 이 차가 데뷔하자마자 그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한 해에만 거의 1만대 가까이 팔렸습니다. 아직 유럽시장 판매도 안 했으니 북미 + 일본만 해도 이 정도인데, 일본은 GT-R 신자가 넘쳐나는데다, 미국에서도 '이 가격에 수퍼카를!'이라는 나름 성능 대비 적절한 가격 정책과 GT-R에 대한 환상이 겹쳐져 비싼 가격에도 잘 팔렸습니다. 다만 GT-R의 끗발은 여기에서 끝납니다.

 

수퍼카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스포츠 성향 차량은 꾸준히 판매되는 것이 아닌 신차 또는 페이스리프트가 이뤄질 때 반짝 판매되었다 그 다음부터 판매량이 고꾸라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즉 얼리어댑터나 마니아들이 사지 일반 소비자가 꾸준히 사는 차량은 아닌 셈입니다. 그 다음해에는 유럽 판매를 시작했음에도 판매량이 거의 반토막이 났고, 2017년 페이스리프트 전까지는 전 세계에서 연간 3,000여대 남짓하게 팔았습니다. 심할 때는 2,000대도 못 팔았습니다. 페이스리프트 직후 5,000대 선을 회복하지만 이후 다시 고꾸라져 그 이후에는 연간 1,000여대 정도를 파는 데 그쳤습니다. 훨씬 비싼 포르쉐 911이 카레라 시리즈를 합쳤다고는 해도 연간 50,000대 정도는 꾸준히 판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초라한 셈인데, 단종된 때 까지 생산한 GT-R 총 수량이 48,000여대. 닛산 GT-R 생애 전체 판매량이 포르쉐 911의 연간 판매량도 안 됩니다.

 

그나마 GT-R의 위안은 가격도 성능도 아니었던 혼다 NSX보다는 나았다는 것

 

위에서 닛산 GT-R의 장점이 '가성비'라고 적었는데 왜 이렇게 판매량이 초라할까요? 사실 그 이유는 좀 다양한데, 가장 근본적으로는 '수퍼카'라는 시장을 잘못 잡았다는 데 있습니다. 사실 저 당시는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이 다들 수퍼카 또는 비슷한걸 만들겠다고 나서던 때였는데, 토요타 렉서스 LFA나 혼다 NSX 2세대 모델이 그렇습니다. 물론 공통적으로 다 망했는데, 재밌는 점은 가장 많이 팔린게 저 GT-R이었다는 것입니다. LFA는 원래부터 2년간 500대 한정으로 판 것이라 그렇다 쳐도 NSX 2세대는 현대 수퍼카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임에도 처절하게 떨어지는 성능으로 욕을 먹으며 3,000대도 못 팔았습니다.

 

사람들은 '말표'라는 브랜드를 위해 페라리를 삽니다

 

분명히 GT-R은 가성비는 좋은 차인데, 문제는 이 가성비라는 단어는 '수퍼카'에는 맞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수퍼카라는 것은 '명품'이라는 개념과 사실상 일치하는데, 고품질과 함께 고가격, 희소성, 브랜드 밸류라는 명품의 특성은 수퍼카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즉 이미 갖춰진 명품 수퍼카 브랜드라는 타이틀이 없는 이상에는 아무리 적절한 가격에 고품질(고성능)으로 만든다 한들 수퍼카로 인정을 안 해줍니다. 포르쉐 911이 수퍼카의 딱 마지노선으로 불리며, 이후에 나온 아우디 R8이 수퍼카냐 아니냐라는 병림픽이 벌어진 것도 명품인 수퍼카로서 갖춰야 할 요소가 성능이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닛산과 비교가 안 되는 브랜드 파워를 지닌 아우디조차 수퍼카 시장에서는 이런 대접을 받습니다.

 

딱지만 바꾼다고 혼다 레전드가 엄청난 고급차인 아큐라 레전드가 되는게 아닙니다

 

사실 이 문제는 수퍼카만의 것은 아닌 일본 자동차 제조사 전체의 한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은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 시도는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토요타는 전 세계 1위 자동차 제조사이며, 렉서스를 통해 가장 먼저 프리미엄 브랜드화를 시도하여 안착은 성공했습니다. 그렇지만 렉서스의 전 세계적인 포지션은 현대 제네시스와 크게 다르지도 않습니다. 즉 독일 3대장에는 발끝조차 못 미칩니다. 닛산 인피니티, 혼다 아큐라까지 가면 아예 이걸 고급 브랜드라고 인식해주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가성비 스포츠카도 아닌 가성비 수퍼카라는 목표를 세웠으니 GT-R은 처음부터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GT-R용 3.8L V6 터보엔진(VR38DETT)

 

그러면 그냥 마케팅 전략의 문제일까요? 차 자체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위에서 계속 GT-R은 가성비가 장점이라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가성비일 뿐 그게 '고성능'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기본 모델로는 500ps 출력도 내지 못했고 나중에 터보 성능을 높여 출력을 높인 NISMO 에디션 등이 나왔지만 혼자만 경쟁 상대라고 생각한 포르쉐 911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사실 V6 터보차저 엔진은 수퍼카로서는 그야말로 저가형에나 들어가는 수준인데, 이는 대부분의 모델에서 V8 노래를 부르는 페라리나 람보르기니의 중저가형 수퍼카(?)와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입니다. 이게 수퍼카가 아닌 그냥 스포츠카였다면 정말 가성비 고성능이 먹혔겠지만 수퍼카에서 이 정도 성능은 '풋사과'에 불과했습니다.

 

심지어 그 풋사과급의 가성비조차 시간이 갈수록 빛이 바랬는데, 17년동안 단 한 번도 메이저 체인지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경쟁사들은 최소 한 번, 많으면 두 번 이상 경쟁자가 바뀌었습니다. 한 번 메이저 체인지를 할 때마다 출력이 수십ps씩 오르는데 그 가성비조차 과거의 일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외에도 수퍼카답지 않은 싸구려 내장재 등도 욕을 먹었는데, 그나마 이건 페이스리프트 등을 통해 조금은 나아졌지만 어디까지나 조금 나아졌을 뿐입니다. 오히려 일본의 장인정신을 발휘한답시고 엔진과 변속기는 수제작을 하고 차체 조립은 로봇으로 자동화를 하는 다른 수퍼카와 정 반대되는 생산 방식을 고집하며 수퍼카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 내렸습니다. 그 변속기도 출시 당시부터도 딱히 이점이 아니라 한 6단 DCT를 단종될 때 까지 고집하며 효율을 깎아 먹었습니다.

 

회사 사옥도 팔고 다 팔아도 답이 없는 현재의 닛산

 

그렇게 신차도 없이 버티던 GT-R은 결국 닛산의 경영이 막장으로 치닫자 결국 포기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사실 닛산만 이런 것은 아닌데, 경기가 어려우면 가장 먼저 잘라내는 것이 이런 수퍼카나 스포츠카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정체성인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는 이미 절대적인 명품 반열인데다 다른 대안도 없으니 그렇다 쳐도 나머지 기업들은 이미 2010년대 후반부터 수퍼카 시장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포드는 포드 GT를 포기하고 그냥 머스탱만 끌고가기로 했고, 아우디도 수퍼카 논란을 먼저 일으켰던 R8을 디젤게이트의 후폭풍을 감당하지 못하고 접었습니다. 닛산이 그 넘의 GT-R의 이름 때문에 질질 차를 끌고 버틴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잠시 잘 나간다고 힘들 때 도와준 은혜를 배반하고 등 뒤를 찔러대더니 그 직후 막장으로 떨어진 닛산. 하이브리드도 전동화도 모두 기술면에서 뒤쳐진 상황이라 잘해야 일본 안에서나 먹고 사는 기업으로 축소되는 상황은 현재로서는 거의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각국에서 철수를 열심히 진행중입니다. 스카이라인 GT-R의 환상은 그냥 환상이자 과거의 유산일 뿐입니다. GT-R의 처절한 성과는 현재의 닛산의 주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