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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 보는 대한뉴스(5) - 짝퉁 연탄, 왕겨 연탄의 꿈(?)

dolf 2023. 9. 5. 07:30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필요한 것이 없으면 대충 비슷한 것으로 대체하거나 없는대로 대충 산다는 이야기인데, 책상 위에서의 계획 경제로 굴러가서 물품 부족이 일상다반사인 공산주의 국가만의 이야기만은 아니라 돈이 있어도 수요가 공급을 초월하는 자본주의 경제에서도 이런 일은 흔합니다. 물건 자체가 없고 비싼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는 공산주의 국가 못지 않게 이런 일이 흔한데, 원래 물건을 대충 대신하여 쓰는 물건을 '대체재'라 합니다. 1960~70년대 대한민국도 이렇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정신으로 뭔가를 대신할 싼 물건을 찾으려 노력하는게 일상이었는데, 연탄도 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 뉴스는 1976년 4월에 나온 대한뉴스입니다. 왕겨를 주 재료로 '짝퉁 연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인데, 나름 쓸만큼은 있다는 것이 대한민국 무연탄인데 왜 이런걸 만들어야 했는지 이유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출처: 한국경제신문

사실 석탄 그 자체는 나쁘게 말하면 광부들을 달달 볶으면 당시 수요는 어떻게든 채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탄광이 서울에서 가까이 있는지요? 아닙니다. 주로 저기 강원도 안쪽이나 경북쪽에 있었죠. 물론 지금은 머드축제로 유명한 보령에서도 탄광이 있고, 이제 폐광하는 전남 화순도 있지만 유명한 탄광은 대충 태백산맥 주변에들 있었죠. 여기에서 죽어라 캐낸 석탄을 무슨 수로 서울과 부산으로 보낼까요? 예. 당시로서는 화물 수송도, 사람의 이동도 철도가 아니면 답이 없었습니다. 이게 짝퉁 연탄이 나오게 된 나름 중요한 배경입니다.

 

사회과부도, 아니 요즘은 네이버맵이나 카카오맵, 구글맵이려나요... 이걸 좀 펴보십시오. 화순이나 보령은 빼고 주된 탄광들의 위치를 따져보면 강원도 정선, 태백, 삼척, 영월 이런데고 그 이외에 경북 문경 정도가 나옵니다. 예. 석탄을 캐서 서울로 보내려면 중앙선-태백선 또는 중앙선-영동선 라인을 거쳐야 하는 곳들입니다. 그런데 이 동네의 철도 사정이 지금도 어떠한지요? 도로도 엉망이지만(정선이나 태백쯤 되면 시외버스나 무궁화호나 시간이 그게 그거이거나 무궁화호가 오히려 이깁니다.) 철도도 엉망이죠. 이 상황에서 열심히 석탄을 캐도 실어 보낼 수 있는 능력이 한계가 있습니다. 이게 모든 문제의 시작입니다.

 

1960년대~1970년대 초반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장거리 이동을 한다면 당연히 '철도'였습니다. 도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니 장거리 시외버스도 제한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이 타고 다닐 기차도 부족한데 화물 운송이 제대로 되길 기대하는 것은 어려모로 어려웠죠. 무엇보다 이 때는 석탄의 주요 산지인 정선/태백/삼척쪽을 중앙선으로 바로 연결하는 태백선도 없었습니다. 태백(황지)과 정선을 잇는 구간이 개통되어 지금의 태백선이 된 것이 1973년 이야기입니다. 그 전 까지는 황지나 장성, 도계 등에서 캔 석탄은 전부 영주까지 뺑뺑 돌려서 보내야 했고, 도계의 경우 1963년까지는인클라인(강삭철도)로 굴렸고, 그 이후에도 스위치백(추진운전)으로 비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했던 구간이라 효율이 안 나왔죠.

 

복선화요? 전철화요? 영동선이나 태백선은 지금도 복선화는 꿈도 못 꾸고(이제는 수요도 없으니), 중앙선 복선화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나마 전철화는 빠르긴 했는데, 태백선 전철화가 1974년입니다. 하지만 영동선은 1975년에 겨우 철암-동해(당시는 북평입니다만)만 겨우 했고, 영주까지는 1997년에 겨우 끝났습니다. 강릉까지는... 2005년의 일이죠. 영동선이 남쪽으로 전철화를 할 때는 이미 석탄의 시대는 끝났습니다.T_T

 

 

하여간... 철도 상황이 그야말로 과부하 상태에서 겨울만 되면 다들 집에서 연탄을 때야 하니 연탄은 늘 모자랐고, 1966년 전후로는 '연탄파동'까지 겪었습니다. 나라에서는 '연탄 좀 때지 마라, 개돼지들아!'를 외쳐대며 상점에서는 연탄 대신 석유를 때라고 압박을 넣었지만 연탄보다 석유가 비싸니 이것도 한계는 있었죠. 무엇보다 1973년부터 1차 석유 파동이 벌어지면서 '석유 좀 때라 이것들아!'도 외치지 못하게 되었죠.이미 저 때가 되면 '기름 좀 아껴써라, 개되지들아!' 모드로 바뀌죠.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대체 연탄, 나쁘게 말하면 짝퉁 연탄들이며, 대한뉴스에 나오는 왕겨 연탄도 그런 결과물입니다. 주성분은 저기 나온 그대로 왕겨인데, 벼를 탈곡하면 나오는 왕겨는 지금도 꽤 골치거리인 폐기물입니다. 사실 사람이 먹을 것은 못 되고, 당시로서는 이걸 재활용할 수 있는 분야도 적었습니다. 당시는 축산업도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서 퇴비를 만들기도 좀 부족하고, 다른 용도는 그 때에도 딱히 없었구요. 그래서 어차피 버려야 하니 땔감으로나마 써보자고 한 것이 이런 프로젝트입니다.

 

왕겨 연탄은 왕겨에다 톱밥 등 다른 땔감 거리를 섞고, 조연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숯가루) 및 흙(사실 이건 연탄에도 주재료입니다.)을 섞어 성형한 것입니다. 즉 연탄에서 석탄을 빼고 왕겨와 톱밥을 넣고 이대로는 불이 잘 안 붙으니 숯가루 좀 섞은 것입니다. 사실 여기서 흙만 빼면 지금의 번개탄 성분과 비슷해집니다. 어차피 연탄 찍는 기계는 다 똑같으니 그냥 성분 혼합 비율만 바꾸면 연탄 공장에서도 찍을 수 있는 물건이죠. 석탄도 공급이 불안정하고 석유는 너무 비싸서 못 쓰니 버리는 것으로 어떻게든 써 보자는 것이 이 왕겨 연탄인 셈입니다.

 

하지만 성공했냐구요? 사실 이거 써보셨다는 기억 가진 분 별로 없을 것입니다. 예. 망했죠. 아무리 왕겨가 버리는 물건이라고 해도 그걸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돈이 듭니다. 더군다나 '규모의 경제'가 안 되면 주 재료가 공짜에 가까워도 원가가 확확 뜁니다. 왕겨 연탄은 이 규모의 경제를 만드는 데 제대로 실패했습니다.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싸지도 않은 데다 열량도 연탄보다 확실히 떨어지니 누가 사는지요? 아무리 높으신 분들이 개돼지들 취급하는 서민이지만 나라에서 하는 말을 앞뒤 안 따지고 무조건 따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죠. 명백히 가성비가 떨어지니 아무도 왕겨 연탄을 안 샀습니다.

 

이후에도, 심지어 21세기까지 왕겨를 연료로 쓰겠다는 시도는 잊을만 하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잠시 신문을 탈 뿐 바로 다시 잊혀졌습니다. 똑같은 이유, 즉 경제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친환경이네 뭐네 하며 붙일 것은 늘었지만, 그래도 열량 떨어지고 가격도 안 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원료비보다 인건비가 더 중요한 시대라서 더욱 경제성이 없죠. 사실 대한뉴스에서 최신 기술이라고 소개하는 것들 가운데 대다수는 이런 경제성 문제로 후대에 망한 기술이 된 사례가 꽤 많습니다.

 

■ 대한뉴스에서 보는 오늘의 교훈

 

- 정부에서 뭐라 홍보하건 경제성이 없으면 서민들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를 우습게 보면 안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