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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 보는 대한뉴스(6) - 기차가 가지 않아 슬픈 기찻길, 교외선

dolf 2023. 9. 7. 21:00

195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즉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이 한참 이뤄지던 시절에는 대한민국 국토는 10년이 우습게 휙휙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그 10년이 우습게 휙휙 쇠퇴한 것도 있었죠. 지방의 지선 철도망들이 그랬습니다. 특히 석탄이나 시멘트 등의 자원을 캔다고 만든 철도 노선은 불과 건설 한 세대만에 적자만 안겨주는 천덕 꾸러기 대접을 받고 폐선당했습니다. 석탄 산업 붕괴와 함께 망해버린 문경선이나 가은선, 폐선은 면했지만 지금도 적자 노선의 대표 주자인 영동선, 태백선, 정선선 같은 노선이 그렇습니다.

 

사실 시골에 사람이 없고 더 이상 자원 채굴도 활발하지 않으면 지방 로컬 노선들은 이럴 수 있습니다. 철도의 왕국이라는 일본도 시골은 다 이 모양 이 꼴인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수도권, 아니 서울과 딱 붙어 있는 철도가 이 모양으로 사실상 봉인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지요? 예. 지금은 철도 마니아들만 알고 있는 서울교외선, 아니 지금은 교외선으로 불리는 철도 노선입니다.


1960년대는 철도 건설의 붐이 일었던 때입니다. 1950년대에는 6.25로 박살난 철도 인프라를 복구하는 데, 그리고 당장 먹고 때야 하는 자원 채굴을 위한 철도(영동선 등) 건설에 초점을 맞췄다면 196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자원을 캐고 시골 곳곳을 연결하는 철도망 건설에 나섰습니다. 위에 적은 문경선과 가은선, 태백선 등이 자원 채굴용 및 이송용 철도였고,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을 남긴 진삼선 등도 이 때 나왔죠. 이 때 서울 주변에도 새로 철도를 놓은 것이 바로 서울교외선, 지금의 교외선입니다.

 

사실 경의선과 경원선을 연결하는 이 철도 노선은 당시로서는 만들만한 명분이 꽤 있었습니다. 일단 북한산 북쪽의 저 지역 주변에는 미군 기지, 특히 기갑 관련 부대들이 많았습니다. 나중에 미군은 점차 규모를 줄였지만 이들이 빠진 자리에는 우리나라 군부대가 채웠구요. 즉 건설물자(군수품) 수송용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괜히 대한뉴스에서 국방상 중요 어쩌구...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주변에는 나름 서울 주변에서 찾을 만한 관광지인 장흥이나 송추 유원지가 있었죠. 역시 대한뉴스에서 관광 어쩌구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철도를 만들면 주변 개발이 이뤄진다는 과거 경험을 토대로 남쪽으로만 쏠려 있는 수도권 개발을 북쪽에서도 해보자 하는 의도 역시 없지 않았습니다.

 

대한뉴스에는 없지만 또 다른 중요한 사항은 서울을 거치지 않고 경원선과 경의선을 이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당시보다는 미래에 더 중요한, 중요할 수 있는 사항입니다. 통일이 이뤄질 경우 이 사이의 물동량은 폭증할 것이며 지금도 여유가 전무한 청량리-용산 및 용산-수색 구간으로는 이를 버틸 수 없죠. 그래서 이를 대비한 바이패스로서 교외선은 중요합니다. 다만 이 당시에는 이 부분은 생각치 않아서 북쪽 방향으로 가는 삼각선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의정부측에는 삼각선이 있었지만 철거해버렸죠.

 

처음 교외선에서 철도를 굴릴 때는 지하철 2호선처럼 순환선으로 운영했습니다. 즉 대한뉴스에 나온 것 처럼 서울역 - 능곡역 - 의정부역 - 청량리역 - 용산역을 거치는 형태였습니다. 이 당시에는 용산이나 왕십리역에 전철이 가지도 않았고 전철을 놓은게 1978년 이야기니 아직 먼 이야기었죠.

 

내레 교외선 망치러 왔수다~ (출처: 시사저널)

 

그런데... 생각보다 장사가 안 되었고 운도 안 따랐습니다. 먼저 철로를 놓으면서 생각했던 주변 연선 개발이 망했습니다. 벽제-의정부쪽은 지도를 봐도 일 수 있지만 산 때문에 뭔가 크게 시가지를 개발할만한 땅이 안 나오는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진짜 문제는 완전 개통 후 5년 뒤에 터집니다.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 즉, 1.21 사태가 교외선에 얼음물을 갖다 부었습니다. 김신조 일당이 교외선에 직접 뭔가 한 것은 아니지만, 북한산 루트를 따라서 침입하면서 북한산 등산로 일부 폐쇄를 비롯한 악재가 닥쳤고, 이러한 안보 요인도 어느 정도 작용하여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교외선 연선 개발 역시 흐지부지되고 맙니다.

 

여기에 1980년대가 되면서 다들 한 집에 한 대 정도씩 차를 갖게 되면서 더 멀리 놀러 가는 것이 유행이 되었고, 질릴 대로 질린 송추나 장흥으로 더 이상 사람들이 놀러 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관광 목적으로도 망해버린 것입니다. 지금도 여기는 유원지는 있는데 인기 있는 곳들이라 하기는 어렵죠. 교외선 개통 시 그렇게 강조했던 관광 철도로서의 가치도 폭락합니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교외선 자체의 가치가 떨어지는 와중에 노선까지 짧아졌습니다. 정확히는 교외선 자체는 변함이 없지만 영업 노선이 짧아진 것입니다. 1978년에 성북까지 경원선 전철(당시 이름은 국철)이 놓이고, 이후에도 북쪽으로 쭉쭉 뻗어서 의정부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면서 결국 노선은 순환선이 아닌 서울역-의정부역으로 줄어듭니다.

 

사실 인입선 정도의 짧은 철도라면 몰라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철도 노선은 관광객과 군사적인 이유만으로는 경제성이 나오지 않아서 일반 이용자가 어느 정도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연선 개발도 대실패, 더군다나 교외선이 있는 고양-양주-의정부 사이는 그리 사람의 교류도 없습니다. 굳이 말하면 고양이나 양주 사람들이 의정부에 있는 경기도 북부 청사나 병무청을 갈 때나 쓸모가 있지 그 이외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되고, 의정부 사람들은 더욱 서쪽으로 갈 일이 없습니다. 이러니 나중에는 니가타 동차 및 그 뒤를 이은 CDC 3량으로, 그것도 하루 딱 세 번 굴러가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대폐선 시대를 연 1980년대 후반부터 이미 '명분만 있으면 폐선해야지!'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이 상태로 1990년대를 버티고, 여기에 관광 부흥을 이유로 증기기관차도 사서 넣어보고 했지만 큰 효과는 보지 못했고, 결국 2004년에 여객 운송은 전부 포기합니다. 이후 어쩌다 임시 관광열차가 들어왔지만 그 역시 오래 못 가고 결국 교외선은 '폐선은 아닌 동결'이 되었습니다.

 

나무위키에서 하나...

 

이후에는 정말 1년에 몇 번 안 되는 건설화물(즉 군용) 열차만 운행하고 말았는데, 이것 말고는 용도가 없어서 도로를 넓힌다고 철교를 2년 가까이 끊어 놓아도 아무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2010년에 중반에 일시적으로 중앙선 화물 열차 일부가 이쪽으로 들어 왔지만 두 달간의 이야기였을 뿐이며 이후에는 정말 1년에 몇 대 안 지나가는, 지나가는걸 보면 로또를 사야 하는 철길이 되었습니다. 역들은 대부분 폐쇄하고 방치하여 저 모양 저 꼴이죠.

 

이렇게 십수년을 방치한 교외선을 어떻게든 써먹어야 하겠다는 논의는 그 사이에도 여러 번 있었지만 사실 '누가 돈을 대냐'는 문제로 그냥 말만 나오고 말았습니다. 사실 고양시와 양주시 사람들이 의정부에 있는 관청을 갈 때나 쓸모가 있지 의정부 사람들은 없어도 그만인 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고 그나마 가장 혜택을 볼 양주시는 돈이 없습니다. 다들 철길을 살리자 말만 하지 돈은 안 내겠다 하니 논의가 될 리 있는지요? 그러다 2021년에 정부가 선로는 고쳐줄테니 설비 수리비는 정부와 지자체들이 나눠 내고 어떻게든 기차를 굴려보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열심히 보수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잘 되면 내년(2024년)에는 교외선이 부활하는데, 수도권에 있음에도 전철화는 전혀 안 된 그냥 깡 디젤열차를 굴릴 예정입니다. 돈 드는 전철화를 하자면 아무도 돈을 안 낼테고 수요도 그리 없을 듯 하니 일단 돈을 최대한 안 들이고 부활을 시켜보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