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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 보는 대한뉴스(10) - 협궤 열차의 추억

dolf 2023. 10. 4. 13:35

세상은 대체로(전부는 아니지만) 진보를 향해 나아가지만, 가끔은 과거의 불편하고 나쁜 것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추악한 악행을 추억으로 포장하면서 긍정하려는 더러운 행위도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세상이 발전하면서 삶이 윤택해지니 과거의 좀 불편했던 부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도 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그것도 미화지만 뭐 이런 최소한의 미화 없이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은 참으로 드물죠. 이 정도는 빡빡한 삶에 기름칠이라 생각하는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하여간... 대한민국의 웬만한 철도(경전철 빼고)는 하나의 규격, '표준궤'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이 땅에도 다른 규격의 열차가 다니고 있었습니다. 당시로서는 느리고 흔들린다고 없애야 한다고 난리를 쳤던 협궤 열차의 추억을 한 번 되돌아 보고자 합니다. 사실 이게 지금 남아 있었다면 나름 관광 상품은 되었겠지만 말입니다.


1986년자 수인선 협궤 철도를 다루는 대한뉴스입니다. 영상으로 봐도 정말 낡은 열차가 몇 량 달지도 않고, 있는대로 흔들리면서 천천히 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부는 있는대로 좁죠. 사람이 서서 가는 것도 한 명이 서면 서로 다리가 닿을까 걱정해야 할 정도가 됩니다. 이미 이 시기부터 수인선은 빠르고 편리한 교통수단이라는 인식보다는 관광용, 그리고 그냥 그 근처에 사는 지갑 얇은 사람들이나 불편해도 타고 다니는 이미지가 박혀 있었습니다.

 

영상만 봐도 이 열차는 다른 열차와는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예. 이 당시 수인선은 762mm 궤간 협궤였고 대한민국에서는 유일한 협궤 구간이었습니다.

 

뒤에 설명할 내용을 이해하려면 일단 '협궤란 무엇인가'에 대해 간단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철덕이 오실만한 곳도 아니니 간단히만 다루면... 기찻길의 선로 사이의 거리를 '궤간'이라고 하는데, 이게 전 세계 글로벌 단일 표준이 아닙니다. 철도의 긴 역사에 따라서 몇 가지 궤간이 나왔고 지금도 이런 여러 궤간이 각국에서 쓰입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는 일부 경전철을 제외하면 1,435mm 표준궤라는 것을 사용합니다. 표준궤라는 말 답게 웬만한 나라는 이 규격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각국의 경제사정이나 지리 환경 등이 다르다보니 표준궤 말고도 규격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러시아의 경우 1.520mm, 인도는 1,676mm 광궤를 쓰며, 일본은 1,067mm(신칸센은 표준궤) 협궤를 씁니다. 궤간이 다른 이유는 위에 적은 경제사정, 지리 환경 문제가 크지만 일부러 다른 나라와 철도를 잇지 않기 위해 특수한 궤간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옆나라와 적대적인 관계라면 이런 경우도 있었죠. 광궤는 건설 비용은 많이 들지만 땅이 무른 곳, 무거운 화물을 실어야 하는 구간에서 유리하며, 협궤는 건설 비용이 적게 들고 건설도 쉽지만 무거운 화물 운송이 어렵고 고속 열차 운영이 쉽지 않은 약점을 지닙니다. 일본이 신칸센을 만든 것도 저 속도가 답이 안 나오는 협궤의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표준궤는 딱 중간입니다.

 

대한민국의 철도 역사는 매우 슬프게도 일제와 함께 합니다. 일제가 대륙 침략을 위해 한반도를 침탈하면서 그 목적으로 철도를 부설한 것입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당시 일본은 협궤였으나 이 한반도의 주요 간선은 표준궤로 깔았습니다. 이는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철도 연결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기술로 일본과 한반도를 해저터널로 연결할 것도 아니었으니 굳이 일본 본토 규격에 한반도의 철도 규격을 맞출 이유도 없었구요. 물론 이것만 이유는 아니며, 일본이 대륙 침탈 목적으로 대한제국의 철도 부설권을 강탈하기 전 미국 자본으로 철도 건설을 시도했기에 미국 규격인 표준궤를 지정했던 것이 일단 표면적 이유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일제가 직접 운영한 철도가 이 규격이었다는 이야기며, 철도  운영을 하는 민간 기업(사철)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건설 난이도나 예산 등에 따라서 표준궤가 아닌 협궤를 부설한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 지금의 전라선이나 대구선도 처음 시작은 협궤였는데, 이것들은 조선총독부가 사철을 사들이면서 표준궤로 다시 갈아 엎은 것들입니다. 그나마 개마고원이라는 극한 건설 난이도가 있는 북한은 협궤가 좀 남았지만, 남쪽은 일제가 패망할 당시에 수인선과 수려선을 제외하면 싹 표준궤로 갈아 엎었습니다.

 

 

이렇게 남은 수인선과 수려선은 노선은 따로지만 사실상 한 몸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목적 자체가 여주, 이천 지역의 쌀, 그리고 지금의 안산 지역에서 나오는 소금인천항으로 실어 보내 일제로 내보내는 역할이었으니까요. 어차피 수원역을 찍는 것은 같았고 이 둘을 잇는 삼각선도 있었죠. 그렇지만 수원-여주를 가던 수려선은 1972년 3월 말로 폐선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수원-여주간 운행 시간이 6시간은 기본으로 찍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속도가 낮았던데다, 승객도 별로 없고 무엇보다 도로 교통이 발전하면서 이런 느린 열차를 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이걸 표준궤로 개궤하여 속도와 수송성을 높이고, 원주까지 연장한다는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이미 이 당시부터 교통의 중심은 도로로 바뀌었기에 그냥 무의미한 아이디어였을 뿐입니다.

 

 

같은 협궤인 수인선은 수려선보다는 훨씬 오래 갔습니다. 수려선은 폐쇄 전 해에 영동고속도로를 개통하여 의미를 잃었지만, 수인선이 다니는 구간은 도로 교통 상황이 영 좋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꾸준히 칼질을 당한 것은 같은데, 1973년에 이미 남인천역을 폐역하고 송도로 노선을 줄여 여객 운송 전용 노선으로 바꿨고 이후에도 인천의 개발에 따라서 1992년에는 소래로, 1994년에는 한대앞으로 노선을 줄였고 결국 1995년 말로 운행을 중단합니다.

 

그나마 수인선이 훨씬 오래 갔던 이유는 1970년대에는 이 지역의 교통 사정이 영 좋지 않았던 점도 있었고, 도로 교통이 나아진 1980년대에는 이들 지역과 수원을 이어 수도권 전철로 갈아타는 수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지금의 안산선이 개통되면서 이 수요도 사라졌는데, 안산선 개통이 1988년이니 어떻게든 버티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폐선한 것에 가깝습니다. 이 때가 되면 인천과 안산의 개발(매립)으로 포구들도 없어지면서 수요도 줄어 하루에 3번 운행할까 말까한 수준까지 줄어들긴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1995년에 법적으로 수인선이 폐선된 것은 아닙니다. 실제 서류상의 폐선은 2015년의 일인데, 그 이유는 일단 계획상으로는 수인선은 폐선이 아니라 표준궤 개궤였기 때문입니다. 점차 이용객이 줄어드는 노선이긴 했지만 인천-안산-수원을 잇는 이 노선 자체는 계속 개발이 이뤄지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어느 정도 수요가 예상되기는 했으며, 다만 협궤를 유지한 상태로는 경제성이 없기에 이를 표준궤로 갈아 엎는다는 생각 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만 이 개궤 과정이 17년(완전 개통은 25년)이 걸렸을 뿐인데, 이유는 IMF 및 이후 우선 순위에서 밀린 것 때문입니다. 지금 수인선은 과거의 협궤 시절과 좀 노선은 달라지긴 했지만 지하철(수인분당선)로 바뀌어 나름 잘 굴러가고 있습니다. 일부 구간이 개발 지연으로 영 수요가 안 나오는 걱정은 있지만 나머지 지역은 개발이 충분히 이뤄져 수요도 충분히는 나오는 편입니다.

 

천천히, 덜컹이며 가는 국내 마지막 협궤 열차였던 수인선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면 관광명소가 될 수는 있었을지 모릅니다. 762mm 협궤는 일본에서도 드문거라서 국내 관광객 수요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구요. 하지만 불편함과 느림을 여유로 승화시킬 수 있는 여유는 1980~90년대 이후에나 생겼고, 느린 교통 수단을 관광 수단으로 삼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즉 V-Train이 나온 이후라 할 수 있기에 그 때까지 버틸 힘이 없었던 협궤 수인선은 없어질 수 밖에 없던 것이 사실입니다.아쉬운 일이지만 당시 대한민국의 환경은 수인선을 지켜주기엔 여유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