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한글날 연휴를 보낼 때 저기 머나먼 이스라엘에서는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선빵(?)을 날리는, 사실상 제 5차 중동전쟁이나 다름이 없는 전면전이 벌어졌습니다. 사실 하마스 입장에서는 이스라엘 극우 정권이 팔레스타인을 탄압하는 것이 도를 넘어도 보통 넘은게 아니라서 복수심이 불탈 수 밖에 없고 그 점은 이해를 합니다. 다만 지금 하는 짓은 제대로 된 군사 조직이 할 짓이 아닌 테러리스트가 할 짓이라서 스스로 국제 여론을 등지고 있는게 문제일 뿐입니다. 솔직히 러시아가 하마스 손을 들어 주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지원을 하는 미국을 엿먹이기 위한 전략일 뿐 진짜 현재 하마스가 하는 전쟁 방식이 옳아서는 아니죠.
하여간... 이 이야기는 다른 블로그나 언론에서 지겹게도 말할테니 대한뉴스를 통해 현재를 보는 이 포스트에서는 그 이전의 4차례의 중동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사알짝~ 해봅니다. 일단 대한뉴스는 3차 중동전쟁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즉 유대인의 나라라는 것은 예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 말씀하시는 그 당시에도 없었습니다. 참고로 이 때의 '가이사'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아니라 2대 로마 황제인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를 말합니다. 이 당시 카이사르라는 말이 황제를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기 때문인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 전에 부르투스 이름을 부르며 저 세상을 간 인물이라 예수께서 이 카이사르를 찾을 이유가 없죠.
좀 이야기가 샜는데... 유대인은 나라 없는 민족 생활을 저~~~~~~엉말 길게 했고, 19세기 말에 민족주의에서 발전(?)한 시오니즘이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유대인의 나라 좀 만들자'는 계획이 나옵니다. 그렇지 않아도 동유럽쪽에서 살던 유대인들은 그 지역에서 탄압 가능성이 나오자 중동으로 많이들 이민을 옵니다. 하지만 이렇게 시오니즘에 찌들어(?) 이민온 유대인들은 이미 이천년 가까이 그 동네에서 잘 살던 아랍인들을 무슨 개돼지처럼 대하면서 스스로 싸우자고 덤벼 들었습니다. 아랍인들 입장에서도 엉뚱한 넘들이 왕창 이민와서 땅 내놓으라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자신들이 무슨 하늘에서 내려온 인종인양 거들먹 거리는걸 좋게 볼 수 없었구요.
그러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알려지면서 세계 여론이 유대인들에게 동정적으로 돌아갑니다. 이건 미국이나 영국같은 서유럽계 연합국만이 아닌 소련도 비슷했는데, 소련의 경우에는 영국 등 기존 선진국들의 영향력이 강한 중동에 공산주의 마인드 영향력이 강한 동유럽계 유대인이 다수 섞인 나라가 세워지면 나름 중동에서 소련이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는 이유로 유대인 국가를 지지했습니다. 키부츠가 이러한 공산주의적인 요소가 나름 이스라엘적으로 내려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던 영국이 이 지역에서 손을 떼면서 이 지역이 무주공산이 되고 맙니다. 그렇지 않아도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던 유대인들과 기존 아랍인들의 관계는 더욱 악화됩니다. UN이 이 지역을 쪼개자 했지만 양측 모두 반대해 실패. 이렇게 양측이 서로 죽이네 사네 그러면서 양측은 민병대를 꾸렸는데(사실 이 역사는 더 깁니다.), 유대인측 조직을 이끌던 다비드 벤구리온이 이스라엘 건국 선언을 하면서 두 조직은 1948년에 전면 전쟁을 벌입니다. 아랍인들은 유대인만큼 군사 조직화가 되지 않아서 주변국들이 나름 의용병을 보내줬는데, 지휘 체계가 통일되지 않은 어중이 떠중이들에 비해 수는 적어도 나름 체계화된 + 무기 공급도 잘 받은 이스라엘측이 이겨 이스라엘을 건국합니다. 이게 1차 중동전쟁입니다.
그렇게 몇 년을 조용하게(?) 보내는 듯 하던 때 왼쪽의 이집트에서 가말 압델 나세르라는 인물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 해버립니다. 이러면서 영국과 프랑스같은 서유럽 국가의 선박 통행을 제한하는데, 이에 빡이 있는대로 친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을 꼬드겨(?) 이집트에 침략 전쟁을 일으킵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나세르라는 인물이 언제 전쟁을 일으킬지 모르는데다, 이집트가 팔레스타인 게릴라에 지원을 하고 있다는 의혹도 있어 이 음모(?)에 참여합니다. 나름 열심히 훈련한 이스라엘군에 비해 오합지졸 이집트군은 그냥 파죽지세로 밀려 수에즈 운하까지 잃습니다. 이게 2차 중동전쟁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잘 싸웠고 승자 타이틀은 얻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졌습니다. 미국이 개입했기 때문인데, 당시 미국은 이스라엘을 '중동을 흔드는 개객기' 정도로 취급하여 지금처럼 혈맹 대접을 안 했습니다. 더군다나 영국과 프랑스가 미국의 동의를 받지 않고 작전을 한 것이 문제였는데, 미국 입장에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제국주의적인 마인드를 벗지 못하고 독립한 국가의 주권을 침해한다고 봤고, 오히려 이 때문에 소련이 중동에 간섭할 여지를 더 줄 수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두 나라에 'NATO에서 호적 파버린다'고 위헙하여 철군하게 만들었고, 나세르는 패전했지만 수에즈 운하를 날로 먹는 데 성공하고 아랍주의의 아이돌이 되며 정치적으로 승리했습니다.
이렇게 다시 10년쯤 지났는데... 이스라엘은 져놓고도 정치적인 단물은 다 먹은 나세르를 고깝게 여겼고, 나세르 치하 이집트가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을 위협으로 여겼습니다.(실제로는 다음 단락에 적듯이 어느 정도는 뻥카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이스라엘 영토는 워낙 작아서 조금만 밀려도 수도(텔아비브. 당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장악하지 않았습니다.)가 불바다가 되는 처지라 땅을 더 얻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래서 계속 주변국에 도발을 걸면서 실제 장악 지역을 조금씩 넓히고 있었는데, 1967년에 갈고 닦은 군사력을 모아서 본격적으로 이집트를 쳤습니다. 이게 3차 중동전쟁입니다.
사실 당시 이집트는 전쟁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중동에서의 영향력 유지를 위해 강성 뻥카(?)를 치고 다닌 덕분에 전쟁 준비를 잘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고, 실제로는 전쟁 개시 후 3시간만에 제공권을 털리는 등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도 이집트 하나만을 바라보고 벌인 전쟁이었지만, 이 때 요르단과 시리아가 이집트가 전쟁을 벌이니 함께 이스라엘을 갈아 엎자고 뒤통수를 쳤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를 가만히 보지 않고 이집트를 치던 전력을 돌려 두 나라를 갈아버렸습니다. 웃기게도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모두 그 넘의 자존심 때문에 자기들이 이기고 있다는 거짓을 말하는 바람에 발리는 상황에서도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쫀심(?)은 강하면서 전쟁 준비가 안 된 세 나라는 이스라엘에 완전히 발렸고, 대충 지금의 이스라엘의 지도가 완성됩니다. 즉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 골란고원을 이 때 먹습니다. 예루살렘도 대다수(도심지)를 가져왔구요. 시나이반도도 먹지만 이건 뒤에 설명할 4차 중동전쟁 이후 이집트에 돌려 줍니다. 시나이반도를 제외한 나머지 세 지역은 지금도 젖과 꿀이 아닌 피와 눈물이 흐르는 땅으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큰 전쟁은 끝났냐구요? 아닙니다. 4차 중동 전쟁이 남았습니다. 이렇게 전쟁에서 쪽박을 찬 이집트의 나세르는 빼앗긴 시나이반도, 그리고 폐쇄된 수에즈 운하의 운영권을 찾으려 나름 노력을 하고 이스라엘과 국지전도 벌였지만 큰 소득을 얻지 못하고 1970년에 죽고 맙니다. 이 뒤를 이은 사람이 안와르 사다트라는 사람입니다. 사다트도 이스라엘에 감정이 결코 좋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전쟁을 벌이면 질 것이 뻔했기에 국내 개혁과 함께 서방과의 관계 개선 노력을 하게 됩니다. 군 체질 개선에 특히 노력을 기울였는데, 가방줄이 긴 병사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군 내부 규율과 경직된 전략 전술을 갈아 엎고 소련의 군사 기술을 받아들이고 무기 역시 꾸역꾸역 사들였습니다.
반대로 이 때 이스라엘은 바보 짓을 했습니다. 세 번 전쟁에 이기고 소규모 분쟁에서도 이기고 있다보니 '우리는 뭘 해도 이겨'라는 자신감이 넘쳤고, 이집트가 전쟁을 벌이기 전에 전쟁을 벌인다는 협박만 하고 실제로 공격하지 않는 것을 반복하는 기만 전술을 반복하면서 '또 쫀심 때문에 센 척 한다'고 오판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집트의 전임자인 나세르는 싸울 생각은 없는데 겉으로만 센 척을 하다 두들겨 맞은 반면 사다트는 진짜 한 방을 먹이기 위해 구라쟁이 겁쟁이 연극을 제대로 벌였습니다.
진짜 발톱을 숨긴 사다트의 전면 공격은 거셌는데, 이스라일에 시나이반도에 구축한 모래 방어선을 소방차를 동원해 단숨에 돌파하고(가방끈이 긴 병사들의 아이디어가 컸습니다.), 이스라엘이 믿던 공군력도 이집트의 대공미사일에 속속들이 추락하고 맙니다. 이스라엘 육군이 믿던 기갑부대도 소련에서 수입한 대전차미사일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소련도, 서방도 이스라엘이 정말 망하게 두지는 않을 것이기에 당장 이스라엘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3차 중동전쟁으로 빼앗은 영토는 다 내줄 판이었고, 2차 중동전쟁 이전 상황으로 돌아간 '종이 호랑이' 이스라엘의 장기적인 운명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골다 메이어 내각은 미국의 바짓 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집니다.
미국 입장에서도 내부 사정이 복잡한데다(워터게이트),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면 중동에서 영향력이 떨어질거라 생각하여 처음에는 무기 제공을 꺼렸지만, 정말로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발리고 있는 상황을 확인한데다, 소련이 이집트에 계속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정책을 완전히 바꿔 기갑장비를 비롯한 무기를 화끈하게 제공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무기 제공을 받고 정신을 차린 일부 이스라엘군이 반격을 성공하고, 반대로 이집트측에서는 소련이 이스라엘 깊숙히 들어가는 것을 막는데다 시리아가 바보짓을 하는 바람에 패배도 당하여 결과적으로는 원하는 바는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 4차 중동전쟁은 앞의 세 전쟁과는 전혀 결과가 달랐습니다.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세 번 이긴 것은 어디까지나 '단합도 안 되고 오합지졸인 군대'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했고, '제대로 훈련하고 무기를 갖춘 아랍권 군대'와 대결 시 혼자서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미국에 빌붙어 사는 역사가 이 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크게 잃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이집트 입장에서도 이스라엘이 강적이라는 점은 재확인을 하였고 이후 이스라엘과 적대하는 것 대신 나름 공존하는 것으로 정책을 바꿉니다. 시나이반도도 이후에 돌려 받습니다. 그 덕분에 사다트는 아랍의 배신자 소리를 듣고 암살까지 당합니다만, 이스라엘-이집트의 관계는 이후 나름 개선이 이뤄져 지금까지 내려왔습니다. 이스라엘 역시 군사력이 있을법한 아랍 대국들과는 척을 지지 말자는 방침으로 바꿔 이집트 이외에도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국가들과 나름 척을 지지 않는 수준의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만 때려 잡고 시리아만 갈구는게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만만하니까요.
사실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내부 이야기까지 파고 들면 좀 복잡하지만(저 시기까지는 진보진영인 노동당이 정권을 쥐고 있었으나 1980년대 이후부터 보수~극우 사이를 오가는 리쿠드당이 정권을 쥐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외국인의 시각에서는 무리한 정책이 늘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10년 이상 리쿠드당 장기 집권 상태라 더욱 막장으로 가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도 세속적이며 타협적인 파타와 극우 근본주의인 하마스는 물과 기름 관계이며 서로 세력권도 다릅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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