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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 보는 대한뉴스(11) - 부실에 부실을 더해 만든 남산터널

dolf 2023. 10. 10. 13:57

썬글라스 박 각하가 통치하던 대한민국은 뭐든 '빨리빨리''하면된다'가 지배하던 나라입니다. 정부에서는 실적만을 내세워 건설사들을 압박하고, 건설사들은 그렇지 않아도 적게 편성된 예산을 하청에 재하청을 반복하면서 실제 건설 비용이 줄어 자재를 빼먹는 부실공사가 판을 치던 시절입니다. 이 때 벌어진 문제는 한두개가 아니라서 지금 굳이 나열할 필요도 없을 정도입니다. 썬글라스 박 각하의 정말 손꼽히는 치적이라 불리는 경부고속도로조차 부실시공으로 보수공사를 얼마나 해야 했는지는 적을 필요도 없죠.

 

이 문제는 수도 서울이라고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특히 외형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던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에는 이런 부실 공사가 더 심했는데, 위의 경부고속도로 부실 문제도 그렇고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는 그 다음해에 벌어진 광주대단지사건과 묶여서 서민/빈민에 대한 주거 정책의 날림을 제대로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강남에서 도심으로 진입할 때의 주요 경로인 남산터널은 안 그랬을까요? 당연히 부실공사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 이용하고 있는 남산터널, 정확히는 3호터널을 제외한 1/2호터널은 최초에 만든 것이 아닙니다. 다시 재시공하여 만든 것입니다. 1/2호터널 모두 1969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70년에 개통했는데, 1호터널이 69년 3월 13일에 착공하여 70년 8월 15일에 개통했습니다. 2호터널은 거기에서 몇 달 더 걸렸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달랑 1년 6개월만에 터널 공사를 끝내고 개통까지 시켰다는 것입니다. 토목 기술, 특히 굴착 관련 기술이 크게 발전한 지금도 터널 하나를 뚫는 데 3년은 기본으로 잡고 들어간다는 점을 생각하면 번갯불같은 속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여간... 남산은 교통면에서는 매우 불편을 주는 요소인 것은 분명했는데, 용산이나 영등포쪽에서 동대문 방면으로 이동하고자 할 때 남산을 돌아 사대문안을 통과해야 했기에 지정체 문제가 심했고, 계획하던 강남 개발 및 경부고속도로와 도심을 연결할 때도 남산은 방해물이 되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만든 것이 남산 1호 및 2호 터널이었는데, 1호터널은 경부고속도로 및 강남권을 한남대교(당시 명칭은 제3한강교. 제1한강교는 한강대교, 제2한강교는 양화대교입니다.)를 통해 이어 도심 진입을 편리하게 할 목적이었습니다. 2호터널은 영등포나 용산에서 동대문으로 가는 길을 편리하게 할 용도입니다.

 

대한뉴스를 보면 이 두 터널을 중간에 만나게 하고 그 지점에 광장 형식의 교차로를 만든다고 되어 있는데, 사실 이는 당시의 북한의 공격에 대한 대비 때문입니다. 이 터널을 착공하기 전 해인 1968년에 '박정희 모가지를 따러 온' 1.21 사태가 터지면서 안보 불안이 윗분들에게 더욱 크게 느껴지기도 했구요. 그래서 터널 안을 방공호호 만든다는 계획으로 이런 지하 광장을 만든 것입니다. 지금도 터널은 공습에 대한 긴급 대피소 역할을 하기에 이 자체는 딱히 문제가 되는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저대로 만들었다면 지금은 '교차로에서의 지정체는 어쩔껴?'라고 했겠지만 말입니다. 실제로 이 광장은 안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남산 1/2호터널은 현재의 부도심간의 연결, 그리고 앞으로 개발하는 지역 및 지방과 도심의 연결 차원에서 필요한 도로인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제대로 만들었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빨리빨리를 외쳐서 번개처럼 뚫은 터널이 과연 제대로 되었을까요? 전혀 아니었다는 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개통한지 1년 남짓한 터널이 금이가고 지하수가 새는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고, 열심히 보수를 하려 해봤지만 문제가 커지면 커졌지 잡힐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설계부터 문제가 있었는데, 도로 터널부터 지하철까지 거의 대부분의 터널은 반원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중 분산 때문인데 이 터널은 쉽게 만들고 싸게 만든다고 그냥 네모지게 만들었습니다. 이러니 천장 전체가 하중을 바로 받게 되고 이걸 땅으로 분산 전달하기도 어려우니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5년만에 터널 전체를 폐쇄하고 전면 보수공사에 들어갔으나 이 과정에서 붕괴사고까지 벌어져 1호터널은 왕복 4차로를 2차로로 줄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2호터널도 상황은 비슷했는데, 이 터널은 처음부터 왕복 2차로로 만들었지만 역시 부실시공으로 비슷한 문제가 벌어져 1976년에 아예 전면 폐쇄를 하여 6개월간 전면 보수를 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2호터널은 접속되는 구간 문제로 이용 차량이 적은데, 당시는 더 적었으니 이런 결정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남산 1호터널 이미지(위키백과 출처)

 

이걸로 끝났냐구요? 아닙니다. 터널을 반으로 줄인 1호터널은 극심한 지정체에다 너무 이용 차량이 많아서 이후 제대로 된 보수도 하기 어려워 부실공사 + 짧은 보수 시간으로 안전 문제가 계속 지적되었습니다. 2호터널도 이용 차량이 적기는 하지만 역시 1990년대가 되면 그냥 보수 정도로는 답이 안 나올 정도로 위험도가 커집니다. 결국 두 터널 모두 사실상 재시공을 결정합니다.

 

1호터널은 옆에 2차로 터널을 당시 최신 기술로 새로 뚫은 뒤 기존 터널을 재시공 수준으로 개수하였습니다. 새 터널의 개통은 착공으로부터 4년 이상이 걸렸는데, 최초 건설이 얼마나 날림으로 벌어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새 터널 개통 이후 기존 터널을 1년 6개월 정도를 들여 리모델링(?)하였으며 그렇게 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1호터널이 되었습니다. 2홓터널은 돈이 없어서(?) 1999년에야 재시공 공사에 들어가 2년 3개월여를 공사해 지금의 터널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강남권이나 여의도가 사대문안보다 파워(?)가 세진 만큼 과거만큼 사대문안 도심에 대한 비중이 높지는 않지만 여전히 1호터널은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경기도 남부지역 광역버스 대다수가 통과하는 주요 도로입니다.

 

듣보잡(?) 2호터널은 그렇다 쳐도 지금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1호터널의 재시공으로 서울시만들은 오랜 기간을 불편을 겪어야 했습니다. 기술력이 있어도 그렇지만 기술력이 없다면 더욱 충분한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는 것이 이런 대형 토목 공사지만 군사정권 특유의 강압적인 실적 자랑은 결국 더욱 많은 돈과 시민들의 시간, 사회적인 비용을 들여 터널을 다시 만들게 만들었습니다. 천리마 속도 운운하면서 부실 건축물을 만드는 북한의 현재는 대한민국의 과거이기도 했습니다.

 

추신: 남산 3호터널은 어땠냐구요? 부실공사 판이 벌어진 1970년 전후가 아닌 1976년에 기공하여 1978년에 개통했는데, 이건 설계도 제대로 했고 지금 기준에서는 후딱 만들긴 했는데 1호터널 수준 날림은 아니라서 그나마 지금까지 통상적인 보수만으로도 잘 버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