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멘을 포함한 라면의 역사를 아주 잠깐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시작해 봅니다. 중국 남부식 탕면이 20세기 전후로 일본으로 넘어와 라멘(중화소바)이 되고, 인스턴트 라멘의 등장으로 '라멘'이라는 이름이 중화소바라는 이름을 밀어내고 정착한 것이라는 점은 유명한 이야기죠. 짜장면이 '한국식 중화요리'와 '한식'의 경계에 놓여 있듯이 라멘도 이제서야 '일본식 중화요리'에서 '일식'으로 넘어오는 그런 인식 변화의 단계에 있습니다.
이 인스턴트 라멘이 우리나라로 넘어와 라면이 되었는데, 일본에서는 인스턴트 라멘이 우리나라만큼 애용되는건 아니라서 우리나라도 선진국에 들어선 시점에서 라멘으로 대체가 어느 정도 되어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라멘이 일식이라는 인식이 너무 강한 것도 있지만 '라멘의 다운그레이드 대체품'에 불과한 인스턴트 라멘과 달리 라면은 그 인스턴트 상태가 기본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무엇보다 그 인스턴트에서 라멘 못지 않게 '마개조'가 이뤄져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식문화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쇠고기 국물맛 라면에 넣을 수 있는 것을 따져보면 정말 셀 수도 없고, 심지어 짬뽕/매운우동의 열화판(?)인 너구리와 짜장면과 닮은 무언가(?)인 짜파게티를 섞은 짜파구리같은 것도 만들어 냈습니다. 라면은 라멘에서 왔되 라멘과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된 것입니다.
라면은 라멘에서 왔으되 그 자체로 무한 진화를 한 결과 인스턴트 라멘과 라면은 상당히 다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냥 간단히 계란만 풀어 싸게 먹는 라면부터 별의 별 것을 다 넣어 원본을 알 수 없게 된 라면까지 다양하게 발전했는데, 오늘은 저 후자에 해당하는 라면집 하나를 소개합니다. 과거에 살았던 Cu, 즉 구리의 라면집입니다.
라면세상을 가기 위해서는 일단 '구리전통시장'을 찍고 가야 합니다. 사실상 구리시의 유일한 전통시장인 구리시장 골목에 이 라면집이 있습니다. 구리/남양주 분들은 다들 아실 이야기지만, 이 구리시장 주변, 즉 돌다리는 구리와 남양주 전체의 최대 번화가(?)입니다. 왜 남양주의 번화가냐 하면... 남양주 자체가 상당히 파편화된 동네이기 때문입니다. 도농(다산), 덕소, 별내, 금곡, 퇴계원/진건, 진접, 평내/호평이 따로, 그것도 베드타운 위주로 발전하다보니 이걸 하나로 묶는 곳이 없고, 이 모두를 묶는 곳이 여기로 교통이 통하는 구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여간 그 결과... 20만도 안 되는 이 동네는 주차난이 좀 심각합니다. 공영주차장이 두 곳 있는데, 그냥 주말이나 저녁에는 꽉 들어찹니다. 그나마 몇 년 전에 하나를 더 지어서 조금 다행인 것이지 과거에는 정말 타워 하나로 버텨야 했습니다. 여기에 일방통행까지 겹쳐서 도로는 그냥 난리입니다. 차로 오실 경우에는 좀 각오(?)가 필요합니다. 지하철을 타면 구리역에서 10분 정도 걸어야 합니다.

시장 입구에서 50m 정도 교문사거리 방향으로 걸으면 라면세상 간판이 보입니다. 여기는 분식집 치고는 상당히 늦게 열고 일찍 닫는 편에 속하는데, 오전 11시 오픈에 오후 7시에 문을 닫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점심밥 또는 이른 저녁밥 개념으로 오셔야 헛되게 발을 돌리지는 않습니다. 화요일 휴무라 주말에도 문을 여니 이 점은 나름 좋죠.

외형에서도 알 수 있듯이 큰 곳은 아닙니다. 테이블 6개 정도로 작은 곳이라 정말 피크 시간에는 좀 기다려야 하는 일도 벌어지니 미리 참고를 당부드리며... 그냥 작은 분식집이지만, 의자에 앉아 메뉴판을 보면 벌써부터 범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라면 이름이 일반적인 그런 이름이 아닙니다. 물론 중2병같은 이름은 아니고, 라면의 특징을 최대한 줄여서 표현한 것들입니다.

사실 이 집의 라면에는 엄청나게 특이한 재료가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무슨 랍스터나 전복이 들어간 것도, 한우 등심이 토핑으로 올라가지도 않습니다. 허브로 국물을 내는 등 특이한 모험(?)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범주 이내에서는 상당한 마개조가 이뤄집니다. 먼저 라볶이같은 부분을 제외하면 들어가는 토핑은 계란, 김치, 치즈, 햄, 오뎅, 콩나물, 떡, 만두, 수제비 등 일반적인 분식집에서 쓰이는 검증된 것입니다. 특이한 것이라고 해봐야 된장라면에 들어가는 시래기 정도에 불과하죠.
이러한 토핑에 국물(스프)는 된장라면을 제외하면 크게 일반적인 라면 스프 기반, 그리고 육개장 국물 기반의 두 가지로 나뉘게 됩니다. 일반적인 라면은 육개장과 다르냐구요? 당연히 다르죠. 쇠고기 국물이라고 하여 그게 육개장 국물이라는 의미는 아니니까요. 일반적인 라면 스프 기반인 것에 비해 육개장 국물 기반은 훨씬 국물이 걸쭉해집니다. 맵기도 조금 더 매워집니다. 물론 요즘 라면의 흐름처럼 사람 괴롭히는 매운맛은 아니라서 웬만큼 맵찔이가 아닌 이상에 못 드시는 일은 없습니다.
라면 가격은 기본 5,500원부터 시작하기에 가격의 저점은 조금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마개조를 해도 6,500원선이라 가격의 고점은 또 낮습니다. 그래서 최소한 뭔가를 넣어 먹는 메뉴를 시키는 것이 남는 장사인데, 이 집의 베스트셀러가 위 사진에 있는 세상짬뽕입니다. 이름은 짬뽕라면 기반같으나 육개장 국물 기반이고, 여기에 떡과 만두, 오뎅이 들어가는 푸짐하게 배를 채우는 컨셉의 라면입니다. 밥 말아먹기, 아니 비벼먹기도 나름 좋죠.
라면 이외에는 공기밥과 김밥 주문이 가능합니다. 김밥은 손말이 스타일의 미니김밥이며, 이걸 젓가락으로 집어 먹을 수 있게 세토막을 내서 나옵니다. 개당 1,000원이라서 그냥 배 사정에 맞춰 적절히 주문하면 되니 이것도 나름 가성비가 괜찮습니다. 스팸과 참치김밥의 두 가지 가운데 선택이 가능합니다. 공기밥은 물동밥이라고 이름이 붙는데, 그 이유는 항아리 모양의 물컵에 밥을 담아주기 때문입니다. 일반 공기밥 양의 2/3 정도가 되는데, 가격이 눈물나게 착한 500원입니다.T_T
그래서 이 라면세상은 그냥 계란라면을 대충 먹으러 가면 조금 아쉽게 느껴지지만, 정말 튜닝을 제대로 하는 메뉴를 시키면 가격이 오히려 착해지고, 김밥과 공기밥까지 시켜버리면 더 가성비가 올라가는 조금 신기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 구리시장 주변에는 구리의 존슨 패자라 부를만한 미성식당도 있고 그 이외에도 먹을만한 집들이 좀 있지만, 라면 하나만 생각하면 여기보다 나은 곳은 주변, 아니 그냥 구리를 다 털어도 안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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