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이 동네는 1년에도 몇 번씩 가는 그런 동네입니다. 딱히 연고는 없음에도 캠핑한다고 1년에 두세번 가고 그냥 산 올라간다고 가고, 그냥 지나가는 길에 들리고 등등 이유도 다양합니다. 당연히 혼자 가는 것이 아닌 이상에는 점심이나 저녁 가운데 한 끼는 닭갈비, 아니 닭라면(?)을 먹고 갑니다. 가격도 그냥 무난한데다 양 많은 국물요리라는 장점이 있기 때문인데, 다만 이 동네가 겨울에는 정말 추운 만큼 캠핑으로 올 일이 사라지는 겨울 시즌에는 상대적으로 덜 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번은 겨울에 태백을 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 바로 저 닭갈비 때문입니다. 뭐 국물이니 겨울에 땡기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이 시즌에는 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아니, 무슨 닭갈비는 닭갈비지 무슨 겨울 버전이 있냐 하시는 분... 춘천 닭갈비는 몰라도 태백 닭갈비는 그런 게 있습니다. 예. 정말 이 시즌 아니면 못 먹는 리미티드 에디션 되겠습니다.

여기서는 당연히 태백식 닭갈비, 즉 물닭갈비 이야기는 합니다만, '닭갈비'라는 음식 자체가 100년도 되지 않는데다 그 변화 역시 최근까지 계속 이뤄진 나름 젊은 음식입니다. 1950년대쯤에 춘천에서 닭갈비가 처음 태어날 때만 해도 닭의 싼 부위의 양념 석쇠 구이에 가까웠으나 이것이 철판구이로 바뀌다 1980년대 전후로 기름기 잡기 + 양불리기 목적으로 야채가 들어가기 시작하다 1990년대 전후로 본격적으로 지금같은 양배추 + 떡 + 고구마 + 우동사리가 등장하더니 비슷한 시기에 순살화가 시작되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치즈닭갈비도 등장했죠.
그렇지만 태백식 닭갈비는 이 춘천식 닭갈비와는 상당히 뿌리가 다릅니다. 구이->볶음 트리를 탄 춘천식 닭갈비와 달리 태백식 닭갈비는 그냥 처음부터 국물요리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양을 불리기 위한 요리라는 점은 같았는데, 잘 나갈 때는 개도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고 하는 탄광 지역이라도 늘 돈이 넘쳐나는 것은 아니어서 쪼들릴 때도 있는 법인데, 그래도 육체 노동이기에 밥은 잘 먹어야 하기에 이렇게 지갑 사정이 안 좋을 때 고기 비슷한 것 + 밥을 배불리 먹기 위해 태어난게 물닭갈비입니다. 육수에 토막친 닭 몇 조각 + 배추 등 야채를 넣고 라면이나 떡 등의 사리로 양을 불려 끓여 먹은 뒤 마지막엔 춘천식 비슷하게 볶음밥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그래도 춘천식과 비교하면 시대에 따른 변화가 적은데, 아무래도 서울과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한 춘천식과 달리 태백/삼척 지역 탄광 주변에서만 먹으며 덜 알려진 태백식이 빠르게 변화하기 어려운건 사실입니다.
닭갈비에 대한 역사는 이쯤에서 적고... 오프닝에서 적었듯이 춘천식 닭갈비는 여름에도, 겨울에도 기본적으로 메뉴는 동일하지만 태백식 닭갈비는 동계와 나머지 3계절의 구성이 다릅니다. 바로 야채가 다른데, 겨울 한정으로 야채가 냉이로 바뀝니다. 나머지 계절에는 깻잎이 들어가는데, 냉이가 정말 겨울 한 철 야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캠핑을 안 가는 계절임에도 태백에 한 번 들려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태백산 등반을 하는 지인이 아침 일찍 먼저 출발을 했고, 저는 여유롭게(?) 청량리역에서 태백으로 가는 싸궁화에 오릅니다. 청량리부터 사람이 이미 가득차서 출발하고, 큰 역에 설 때마다 사람들이 왕창 내리고 왕창 타는 것을 반복합니다. 여기에 추위와 눈, 바람으로 속도까지도 들쭉날쭉인데, 첫 역부터 4분 지연을 먹더니 잠시 눈을 감고 제천쯤 오자 오히려 -2분을 찍는 기염을 토하고, 태백선 구간에서는 다시 지연을 먹어 수 분 지연끝에 태백역에 도착했습니다. 버스보다는 덜 편하지만 시간은 비슷하고, 버스의 절반 이하 가격으로 올 수 있으니 어찌 기차를 안 탈 수 있겠습니까?

서울에서도 칼바람이 불듯이 태백에서도 칼바람이 불고 역에서 슬슬 바람을 맞으며 걸어가 황지연못에서 물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산에서 내려온 일행을 만나 태백닭갈비로 갑니다. 아시다시피 태백닭갈비는 황지연못에서 가까워서 날씨가 좋으면 식사 후 이 연못에서 산책하며 배를 꺼트리는 것도 좋은 선택이긴 합니다.
태백닭갈비는 골목 안쪽에 있어 주차가 조금 복잡합니다., 골목 안쪽에 공터가 있어 여기에 주차는 가능하지만 주차 면수가 매우 많지는 않습니다. 점심이나 저녁시간대에는 주변 도로의 공영주차장에 적당히 잘(?) 대는 센스가 필요합니다. 불법주차 단속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심하지는 않으니 그냥 재주껏... 잘 주차하시면 되겠습니다.

태백닭갈비는 외형상으로는 변화가 없지만 내부적으로는 변화가 꽤 큽니다. 최근 1~2년 사이에 좌식 테이블을 식탁으로 바꾸고, 키오스크를 도입했습니다. 키오스크에 익숙하지 않은 분은 그냥 주문도 되지만 젊은 세대는 그냥 바로바로 주문이 되는 것이 나름 좋죠. 물가가 오른 덕분에 1인분이 11,000원까지 오른게 좀 흠이긴 하지만 그래도 서울 물가 생각하면 이 정도는 그냥 양반입니다. 하지만 여기는 사리류가 전부 평균보다 비싸다보니(기본 3,000원) 그건 이전부터 가진 불만이며 이 부분은 여전합니다.T_T
자, 어쨌거나 겨울 리미티드 에디션 닭갈비를 주문합니다. 옵션에서 냉이의 추가 주문도 가능한데, 150g에 3,000원 추가입니다. 위에서 사리 가격에 대해서는 불만을 말했지만 이 냉이 가격은 그나마 현실적인데, 시중에서 저 정도 무게의 냉이를 따로 사도 저 돈은 나오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냉이를 다듬으며 버리는 양을 생각하면 오히려 조금 싼 편에 가깝습니다. 냉이가 양이 좀 적다보니 야채 좋아하시는 분은 냉이 추가 옵션을 매우 권해드립니다. 저기 오프닝의 사진이 냉이를 1개 옵션으로 추가한 사진입니다.

수북하게 쌓인 냉이에 육수를 계속 끼얹어 숨을 죽이고 그 다음 라면사리를 투입합니다. 사실 이 라면사리가 오늘의 진정한 목적인데, '닭갈비'가 아니라 '닭라면'을 먹으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좀 불만인 라면사리 가격에도 두 개를 주문해 끓여줍니다. 많이 맵지 않은 닭육수, 그리고 약간의 냉이 향을 빨아들인 라면은 나름 특이한 맛을 보여주며 후루룩 들이킵니다. 조금은 질긴듯하면서 향이 좋은 냉이도 우적우적 씹습니다. 오히려 핵심이 되어야 할 닭이 손이 안 가는 지경입니다. 마지막으로 볶음밥으로 마무리를 지으니 배가 그런대로 들어찼습니다.
이렇게 닭라면을 먹으러 3시간을 달려온 목적을 달성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옵니다. 그렇지만 태백에 올 때와는 좀 다른 상황(?)을 겼었는데, 기차를 탔을 때는 너무 따뜻한 난방 + 햇볕 직사 덕분에 오히려 더울 정도였으나 차를 얻어 타고 올 때는 오히려 좀 추웠습니다. 차량이 하이브리드라서 고지대에서 내려오는 과정에서 대부분 EV 전용 모드로 바퀴가 굴러가니 엔진이 돌지 않아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좌석 열선으로 등만은 따뜻했으나 공기가 따뜻하지 않으니 쌀쌀함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추신: 참고로 키오스크의 문제 때문에 포장 시에는 냉이 추가 옵션이 없습니다. 그래서 포장에 냉이 추가를 하고자 한다면 따로 요청을 하셔야 합니다. 냉이 대신 나머지 3계절에 들어가는 깻잎을 따로 준비하여 넣어 드셔도 나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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