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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 현기차를 무작정 까면 기분이 좋아지던가요?(2013/12/30)

dolf 2023. 5. 26. 12:23

오늘도 제가 소속된 모 커뮤니티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자칭 강좌라고 쓰고 현대차를 두들겨패기 위한, 아무도 알려달라고 한 적이 없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원문을 전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니 간단히 원문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현대차의 많은 차량(특히 대형차급)은 전범기업 미쓰비시 자동차의 뱃지 엔지니어링 모델이다.
2. 현대차는 대형차를 생산해 일본으로 수출했고 그것이 미쓰비시 브랜드로 팔렸다. 그 댓가로 현대차는 여러 기술을 얻었다.
3. 현대차 배기구가 우측, 주유구가 좌측인 것은 이러한 일본차의 영향 때문이다.
4. 미국이나 유럽같은 우측통행 차량은 정 반대인데 이상하고 보행자에게도 좋지 않다.
5. 반일감정이 커지고 있는 때 이런 일본차는 뱃지만 국산으로 바꾸면 욕을 안먹을거다.
6. 일본차 불매운동을 하면 일본 기술을 기반으로 한 현대차도 부역자니까 불매운동 대상이 되어야 한다.

요약을 하면서도 저조차 황당한 부분이 많습니다. 현대차를 까고 싶어서 안달이 난건 이해를 하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까 난감할 정도로 논리가 하늘을 날기 때문입니다. 현대차의 역사를 정리한 대학교 리포트 하나만 봐도 이런 주장이 나올 턱이 없는데 말입니다.

일단 저 주장들에 대해 반론을 제 나름대로 적어보면 이렇습니다.

1. 그랜저급 이상 차량의 경우 미쓰비시에서 플랫폼과 엔진 등 주요 기술을 제공하고, 현대차에서 인테리어를 담당한 일종의 공동 개발품입니다. 하지만 미쓰비시의 기술이 없다면 나올 수 없던 차는 맞습니다. 1세대 그랜저가 미쓰비시 데보네어로 팔린것도 맞구요. 하지만 미쓰비시의 고급차들은 일본에서도 미쓰비시그룹 중역 전용 차량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확실히 망해버렸고, 국내에서는 경쟁 차량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큰 히트를 칩니다. 그 시기 미쓰비시 자동차가 망조가 들은 짓만 골라서 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만. 이것에 대해 부인할 필요는 없겠죠. 다만 어디까지나 대형차들의 이야기입니다. 소형차나 중형차급은 플랫폼이나 엔진은 처음에는 미쓰비시것을 갖다 썼지만 적어도 차체 디자인은 현대 고유(외부 디자이너에게 맡기더라도)의 것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기회가 되면 매우 빠르게 자기의 것으로 대체하고자 했습니다.

2. 소형차나 중형차에 대해서 미쓰비시는 초기에는 플랫폼과 엔진을 모두 제공했지만 그것은 점차 현대 자체의 플랫폼으로 대체가 됩니다. 대형차에서도 그랜저 XG부터는 3.0L 엔진만 미쓰비시의 것이지 플랫폼은 현대 자체 플랫폼이 됩니다. 에쿠스의 경우 가장 마지막까지 미쓰비시의 플랫폼(공동 개발)이 남아 있는 것이지만, 뒤집어 말하면 현대차가 가장 마지막으로 자체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을 써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중요도가 낮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당장 돈이 되는건 B~D 세그먼트니까요.

미쓰비시의 대형차를 생산해주는 조건으로 기술을 얻은게 아니라 현대차는 그 이전부터 미쓰비시의 기술제휴 관계였습니다. 포니의 엔진이 미쓰비시 새턴 엔진이며 플랫폼도 랜서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것은 널리 알려진 것입니다. 다만 현대차는 늘 미쓰비시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고, 미쓰비시는 그것에 딴지를 걸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한 애증의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무슨 현대차가 미쓰비시의 꼬붕(?) 노릇을 즐겨하며 사서 한건 아닙니다. 기술 없고 인지도 없는 회사가 나중에 글로벌 기업으로 커나가는 스토리에 늘 붙는 뻔하다면 뻔한 패턴일 뿐입니다. 기술을 사서 을의 입장에서 살다 조금씩 그 기술을 베끼고 발전시켜 자기걸 만들고 원래의 관계를 뒤집는다는 패턴 말입니다.

3. 당연히 일본차의 영향이죠. 우리나라에서 대우차~한국GM을 비롯한 GM계열을 빼면 초기 기술 합작선은 다 일본 자동차 제조사였으니까요. 기아차는 마쓰다, 르삼은 당연히 닛산이죠. 굳이 신차를 설계할 때 이 부분을 바꾸자면 못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체 설계 능력을 가진 현기차 입장에서는 지금까지의 차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반발을 사면서까지 굳이 연료통의 위치와 배기구의 위치를 바꿀만한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고, 르삼은 자체 플랫폼이 없이 모회사의 플랫폼을 가져오는 것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을 뿐입니다.

4. 그런데 북미에서 파는 일본차도 다 좌측 연료주입구에 우측 배기구입니다. 이런 차를 사주는 미국 국민들은 환경이나 자신들의 건강은 생각을 안해서 일본차를 덥석 사고 일본차가 이렇게 나오는 것에 대해 뒤집기를 하지 않을까요? 배기구가 가급적 사람보다 멀리 있으면 좋기는 하고 화기(주유기)보다 멀수록 좋기야 하겠지만 실제로 이것이 안전이나 건강에 별 영향이 없기에 이렇게 한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5. 어차피 국내에서 미쓰비시 자동차는 돈 값을 못해서 시장 철수를 계속 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이니셜D에서 란에보가 끝내주게 나온다고 해도 누가 그 돈 주고 국내에서 란에보를 삽니까? 소비자는 바보가 아닙니다. 미쓰비시 자동차 브랜드 가치가 초 개판이 된건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조금만 주판을 때려보면 수입된 차량이 경쟁차보다 못하다는건 바로 나옵니다. 속된말로 국내에서 미쓰비시 자동차의 상황은 반일이네 극일이네를 떠나 'Out of 眼中'입니다.

그리고 데보네어나 프라우디아는 일본 오리저널 모델이 국내에 돌아다는게 거의 없는데 현대차로 뱃지를 바꿀것도 없고, 국내에서의 인지도나 브랜드 가치 역시 '현대 그랜져'나 '현대 에쿠스'가 '미쓰비시 데보네어'나 '미쓰비시 프라우디아'보다 훨씬 높습니다. 뱃지를 바꿔 튜닝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바꾸는 브랜드의 가치가 훨씬 높을 때나 가능한 것입니다. 누가 국내에서 현대차에 베이징현대차의 뱃지를 달던가요? 성격이 특이하면 가능하기야 하겠습니다만.

6. 이거야말로 해외에서 기술제휴를 한 사람 전체를 매국노로 몰 기세입니다. 현대차가 미쓰비시 자동차와 기술제휴 계약을 할 때 전후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나오는 반응입니다. 현대차는 설립 초기에는 미국 포드와 기술제휴를 하여 코티나를 찍어냈다는건 많이들 아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포드가 현대차를 바라보는 것은 포드의 차량을 국내에서 찍어내는 회사였지 자체 브랜드로 차를 파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기술이전에 매우 소극적이었고 자체 모델 개발을 막으려 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미국 회사들의 비슷한 반응이었기에 대안으로 고른 것이 당시 국내에 협력선이 없던 미쓰비시 자동차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미국 이상의 자동차 제조국이 아니었으니 상대적으로 기술제휴나 기술이전에 대해 조건이 좋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미쓰비시조차 현대의 기술 자체 개발을 방해한것도 유명합니다. 당시 현대차는 로열티의 많은 부분을 주식으로 미쓰비시 자동차에 넘겼는데, 그것이 경영간섭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현대차의 첫 가솔린 엔진인 알파엔진 개발 비화는 널리 알려진대로 미쓰비시측의 방해와 회유가 심했습니다. 지금 현대차는 조립 품질이나 디자인 호불호, 가격 정책은 그렇다 쳐도 남의 기술은 최대한 빨아 그 기술을 자기것으로 소화해 그것으로 남의 뒤를 치는 하극상을 제대로, 멋지게 벌였습니다. 미쓰비시와 일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부역자 노릇에 만족했다면 이전받은 기술을 우려먹고 시대가 뒤떨어지면 다시 새 기술을 이전받았다면 그만일 것입니다. 그걸 하지 않고 욕을 먹어가며 자기 기술에 집착한 것을 부역자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성장 시대에 기술적으로 큰 곳들은 다 미국이나 일본의 부역자겠죠. 우리 역사는 일본군에서 전략전술을 배워 탈영한 뒤 독립군에서 활동한 사람을 '일본군 부역자'라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독립군'이라고 기록합니다.


사실 저 글의 요점은 굳이 길게 적을 것 없이 '나는 현대차가 싫어'입니다. 그런 의견은 누구나 밝힐 수는 있죠. 저도 현대차보다는 GM의 차를 더 좋아합니다. GM본사와 오펠은 개객기입니다만. 하지만 싫어하더라도 납득할만한 이유는 대야 하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이유 없이 싫다면 '그냥 싫어'라고 하면 이해할 사람은 다 이해합니다. 근거를 들어 까고자 한다면 품질 문제, A/S 결함 등 찾으면 넘치고 넘칩니다. 하지만 기술력이 하나 없던 시절에 그나마 기술을 이전해준다는 곳과 계약했다는 이유만으로 부역자 소리를 들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미국사람들도 아무 소리 않는 배기구 위치로 시비를 거는건 더 주장을 코미디로 만들 뿐입니다. 배기구가 오른쪽에 있는 차를 다 욕하고 싶다면 르삼은 왜 아무 소리를 않으며 닛산이나 토요타에게 시비는 왜 걸지 않을까요? 영국차인 애쉬턴 마틴은요? 그냥 싫으면 긴 말 없이 싫다고 하면 됩니다. 그것이 납득도 못할 공격거리를 한가득 늘어놓는 것 보다 훨씬 다른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