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낡은 유교 경전(효경)의 이야기, 이게 조선시대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실 원래 의미는 '몸 함부로 굴려서 다치거나 죽어 부모 속 썩이지 말라'는 것이지만 뭐 늘 이런 이념이 정치 물을 먹으면 변질되듯이 사회 통제의 이념으로 왜곡되어 현대까지도 이어졌습니다. 그것도 6.25로 계급이고 뭐고 다 박살난 대한민국에서 말이죠.
사실 사람의 꾸밈에 대해서는 늘 구세대와 신세대간의 갈등이 있어 왔고 그렇게 서서히 발전하는 것이기에 지금의 기준이 과거에도 통용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지금 보면 참 웃긴 일입니다. 여기에 정치적인 이유까지 끼면 더욱 웃겨지죠. 오늘 살펴보는 장발단속, 그리고 미니스커트 단속 역시 이러한 보수적인 시절, 그리고 정치적인 이유가 결합되어 생긴 웃긴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대한뉴스에는 장발단속에 대한 기록은 있으나 미니스커트 단속에 대한 기록 영상이 없다보니 일단 영상은 장발단속에 대한 것만 올리고 설명만 같이 합니다. 어차피 같은 시기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반도 역사 전체를 보면 남성은 장발의 역사가 단발의 역사보다 깁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풀었을 때 머리 길이가 그렇다는 것이기 실제로는 상투를 틀고 했기에 보이기는 깔끔했습니다만. 이게 단발의 역사로 바뀐건 구한말 이후가 됩니다만 최소한 일제시대에도 남자 머리 길이를 갖고 정부 차원에서 마음대로 잣대를 정해서 난리를 치지는 않았습니다. 그걸 갑자기 왜 1970년대에 나라에서 태클을 걸었냐구요? 이게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68혁명 때문입니다.
68혁명이 뭔지 모르시는 분께 간단히 말씀드리면... 1968년에 프랑스와 미국에서 벌어진 반정부 운동입니다. 반정부 시위가 왜 혁명까지 붙냐 하면... 이 영향력이 속된 말로 1970년대 이후의 1세계(즉 서구)를 완전히 바꿔 놓았기 때문입니다. 2차세계대전 이후 베이비붐 세대가 느낀 사회 부조리가 그야말로 이 한 방에 폭발했는데, 정작 미국과 프랑스에서는 이 시위를 주동한 진보세력이 정권을 차지하지 못하고 보수의 역풍이 분 배드엔딩으로 끝났고, 일본은 그야말로 여기에 영향을 받은 진보세력이 미쳐 돌아가면서 자멸(전공투)하는 바람에 시민사회 세력이 뿌리째 뽑혀 사회 전체에 극우가 판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만 이 때의 사회/문화적인 양식은 이후 1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히피같은 문화가 그랬고 여기에서 파생된 장발도 그렇죠.
썬글라스 박 각하는 68 혁명을 그야말로 깎아 내리기 바빴지만 내부적으로는 이 영향이 대한민국 국민들에 어떻게 미칠지 면밀히 검토했습니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국민들이 군사정권의 부조리에 폭발하여 정권 퇴진 운동이라도 벌이면 자기 권력이 위험해지니까요. 그래서 이 영향을 최대한 차단하려고 별의 별 노력을 다 했는데, 그 노력 가운데 하나가 이 장발단속입니다. 히피 문화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장발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경범죄처벌법에 장발단속에 대한 내용을 넣고 머리가 조금만 길어 보여도 유치장에 쳐넣고 과태료를 물리고 강제로 머리를 깎아버렸습니다.
물론 '사회가 진보하는 꼴을 못 보겠다'를 대외적인 명분으로 걸 수는 없었으니 '위생'을 그 이유로 내걸었습니다. 사실 이건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이 아무리 DDT를 마구잡이로 뿌려댔다 해도 이를 완전 박멸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상하수도 보급이 그리 잘 된 것도 아니어서 지금처럼 머리를 매일 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그래서 이가 머리에 서식하기 딱 좋았습니다. 머리가 길면 더욱 이의 서식 환경이 좋아지기에 머리를 짧게 하는 것이 당시 위생 환경을 고려하면 나름 유리한 것은 맞았습니다. 그 때는 여학생들의 머리도 바가지 머리였죠.
그러면 미니스커트 단속은요? 역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이유로 이뤄졌습니다. 사실 여성의 스커트 길이의 변화 역시 서서히 이뤄졌습니다. 서구를 기준으로 하면 18~19세기 정도까지만 해도 나름 중산층 이상 여성이면 다리가 아예 안 보여야 하며, 서민 여성이나 어린이라고 해도 종아리 길이가 한계였고 그 보다 짧아지면 속된 말로 '물장사'와 관련된 여성이 아니면 감히 입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조금씩 짧아져 20세대 초가 되면 무릎보다 조금 아래 정도의 길이까지는 사회적으로 허용된 수준이 되고 1950년대 전후가 되면 무릎 높이나 살짝 위 까지 올라갑니다.
그러던 것이 1958년에 영국의 디자이너 메리 퀀트가 '미니스커트'의 이름을 명명하며 허벅지 길이의 치마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선보입니다. 물론 그 전에도 발레리나나 실험적인 패션 의상에서도 있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미니스커트가 사회의 주류가 바로 되지는 않았지만 68혁명을 계기로 아예 전 세계에 미니스커트, 아니 더 심하면 마이크로스커트가 되는 것 까지 퍼지게 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당시 미국에서 활동하던 뮤지컬 배우 겸 가수인 윤복희 여사가 처음 선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1967년 귀국 시 이걸 입었고 계란세례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건 거짓이고(한겨울이라 짧은 치마는 입지도 못했답니다.) 당시 신세계백화점 광고에서 입은 것 때문에 유명해진 것입니다.
하여간... 그 몇 년 사이에 젊은 여성들 사이에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면서 역시 68혁명의 영향력 차단에 눈이 뻘개진 썬글라스 박 정권은 미니스커트 탄압에도 나섭니다. 치마 길이에 민감한 보수적인 사람들의 암묵적인 지지도 있겠다... 못 할 것이 없었죠. 당시 단속 기준은 무릎 위 20cm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성의 다리 길이에 따른 차이?! 그런 건 절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를 여성의 다리에 갖다 대면서 단속을 했기에 일각에서는 '합법적인 성추행'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정권 유지를 위해 서구의 불온한(?) 사상과 문화 수입을 막기 위해 벌인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 이는 유신시대에도 이어졌지만, 시바스 리갈을 앞에 둔 탕탕(?)과 함께 그 종말을 고했습니다. 억눌린 사회를 풀어줘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에 1980년에 두 가지의 단속을 사실상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처벌 규정은 1988년이 되어서야 사라집니다.
다만 웃프게도 시대가 바뀌면서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당시에는 최신 유행이었던 장발은 사회 생활을 위해서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여피를 비롯한 새로운 단발 문화가 들어오면서 지금은 메탈헤드나 하는 것 정도로 위상이 줄어들었습니다. 장발 자체에 대해 과거처럼 차가운 사회 분위기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려면 여전히 장발 유지는 어렵습니다.
당시는 젊은 성인의 유행이었던 미니스커트는 이제는 여중고생들의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고, 미니스커트 레벨이 아닌 마이크로스커트 수준으로 치마를 줄여 입고 다니죠. 하지만 한켠, 정확히는 막나가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미니스커트도 성상품화의 아이콘이네 코르셋이네 하며 욕을 하고 다닙니다. 그리고 세상은 돌고 돌아 지금은 다시 롱스커트가 유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뭐 유행은 늘 오고 가는 것이라서 다시 남성 장발이 유행하고 미니스커트가 여성 권리의 상징이라고 하는 날이 다시 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날이 오건 안 오건 최소한 사람이 하고 다니는 것을 가지고 나라에서 왈가왈부하는 세상은 다시는 안 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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