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다면 긴, 아니 역대급으로 긴 설 연휴 되겠습니다. 해외로 나가신 분도 계실 것이고 국내 유명 관광지에 가신 분도 계시겠으나 아무런 계획을 안 잡으신 분께서는 그냥 집콕이 되겠죠. 하지만 집에서만 있으면 답답하죠. 그런 분을 위해 설 연휴에 아주 짧은 수도권 여행(?) 아이템을 하나 소개합니다. 마을버스보다 싼 기차 여행 말입니다. 어디서 그런게 가능하냐구요? 바로...
교.외.선.
...되겠습니다.
사실 이 블로그에서도 교외선 이야기는 한 번 다룬 적이 있습니다. 대한뉴스 이야기로 말입니다. 서울 바로 옆에 있는 철도 노선임에도 한 번 동결될 정도로 장사가 안 되었던 이 노선의 슬펐던 과거도 한 번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되짚어 보는 대한뉴스(6) - 기차가 가지 않아 슬픈 기찻길, 교외선
195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즉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이 한참 이뤄지던 시절에는 대한민국 국토는 10년이 우습게 휙휙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그 10년이 우습게 휙휙 쇠퇴한 것도 있었죠. 지방의 지
adolfkim.tistory.com
저 포스팅에서 마지막에 이 노선 부활을 위해 열심히 공사를 진행했다고 했는데, 원래는 작년 말 개통 예정이었지만 여러 이유로 조금 늦어져 이번달 초에 개통을 했습니다. 원래는 이 노선에 RDC(개조 디젤 동차) 무궁화호를 굴릴 예정이었지만, RDC가 수명을 이유로 전부 퇴역하는 바람에 도대체 여기서 뭘 굴릴 것인지 말이 좀 많았는데... 좀 엽기적인 구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관차 - 객차(1호) - 객차(2호) - 발전차 - 기관차
달린건 총 5량인데 객차는 달랑 두 량뿐인 이 조합. 사실 RDC(과거의 CDC를 포함해도)가 아닌 이상에는 발전차가 붙을 수 밖에 없는 구조라서 이건 어쩔 수 없는데, 기관차가 하나 더 붙습니다. 이건 출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냥 양방향 운전을 위한 것입니다. 기차는 방향을 180도 돌리는 방법이 꽤나 복잡한데, 가장 공간을 적게 차지하는 것은 전차대지만 이건 전용 설비가 있어야 하기에 차량기지나 조차장이 아니면 갖춘 곳이 드물고, 절차도 복잡합니다. 그렇다고 크게 빙 둘러 돌아 가게 할 정도로 땅이 넉넉한 것도 아니죠. 그러니 그냥 바로 의자만 돌려 갈 수 있게 기관차를 하나 더 단 것입니다.
기관차는 나름 번쩍번쩍한(?) 것을 씁니다. 4000번대 기관차를 징발해 전용 도색까지 해서 쓰는데, 무려 21세기에 만든 물건입니다. 제작사는 당시 일본에서 이름을 들으면 기겁을 했다는 KOROS(이걸 일본어로 발음하면 '죽인다'가 됩니다.), 지금의 현대로템입니다. 4000번대 기관차는 입환(기차 편성을 만들기 위해 객차나 화차를 붙여주는 역할)용 소형 기관차지만 중단거리 여객/화물 운송용으로도 쓰이는 것이라 지금의 교외선에 딱 맞죠. 사실 원래는 수소연료전지를 쓰는 동차를 개발해 여기에 넣을 계획이었지만... '돈이 없다'는 이유로 개발은 해놓고 실제 적용을 안 시키고 있습니다.T_T
아침에 2호선 첫차를 타고 열심히 홍대입구까지 가 다시 경의선을 타고 대곡역으로 갑니다. 그래도 첫차는 못 타고 두 번째 차를 타야 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는 대곡역의 ㅈㄹ같은 환승 문제. 사실 땅 속으로 깊게 들어가는 GTX-A 환승만큼은 아니지만 경의선-교외선 환승도 X같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경의선/서해선 플랫폼에서 위로 올라가 역 본건물이 있는 3호선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그 다음 계단을 내려가 역 밖으로 나갑니다. 그 역 밖에서 왼쪽을 보면 다시 한 층을 내려가는 계단이 나오는데, 이 계단을 내려간 뒤 다시 이 통로를 걸어가야 교외선 플랫폼이 나옵니다. 열차 출발 시간보다 20분 정도 먼저 열차가 도착하는데, 이 때 바로 탈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다 내린 뒤 청소를 하고 의자 방향을 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10분 정도 걸리고 이후에 플랫폼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현재의, 그리고 앞으로도 이럴 것으로 보이지만 교외선은 단선으로 운영합니다. 그래서 플랫폼도 그냥 한 방향만 운영합니다.
현재 운행 구간은 그냥 순수한 교외선 구간, 즉 대곡-의정부입니다. 사실 과거에 교외선이 동결되기 전에는 서울역-의정부를 운행했고, 그게 훨씬 더 많은 사람이 타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지금도 서울역-수색역 구간은 서울역과 용산역에서 출발/도착하는 모든 열차의 뒷감당을 해야 하기에 여유가 전혀 없어서 지금 이걸 바라기는 좀 무리일 것입니다.
슬슬 동이 틀까 말까 하는 이른 아침의 대곡역. 두 량 뿐인 열차에는 출발 시간이 되자 승객이 거의 꽉 들어 찹니다. 입석까지는 아니지만 아침 이른 시간임에도 80% 이상은 자리가 찼습니다. 다들 열차와 역 사진을 찍는 데 바쁜 것으로 볼 때 목적은 저와 같은 짧은 여행 목적으로 보였습니다.
이번에 여객 목적으로 부활한 역은 원릉, 일영, 장흥, 송추의 네 역입니다. 원릉은 고양 구시가지(원당)에 있어 나름 배경 수요는 있는 곳이며, 일영역은 현 시점에서 열차 교행이 유일하게 이뤄지는 역이라 혼자서 양방향 플랫폼을 가집니다. 장흥이나 송추역은 주변에 작은 아파트 단지를 품고 있는 정도입니다. 사실 원릉을 제외한 나머지는 여전히 공릉천 주변 유원지 수요입니다만, 일영을 제외하고는 내리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즉 사실상 현재는 전부 대곡-의정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 수요입니다.
사실 현재의 교외선은 중간 수요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현재 시험 목적으로 운행을 하루 네 번만 하고 있지만 그것도 아침과 저녁뿐입니다. 즉 낮시간에는 아예 운행을 안 합니다. 그러다보니 교외선의 원래 목적인 유원지 수요는 전혀 확보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아침과 저녁으로 운행하는 통근 및 통학 수요를 잡는 것도 불가능한데, 이는 교외선이 무궁화호로 운행하기 때문입니다. 1월은 이벤트 한정으로 1,000원만 받지만 원래 요금은 전 구간 2,600원입니다. 일반 철도라 수도권 통합 환승제를 따르지 않아서 단거리 이동을 할수록 손해가 됩니다. 원릉역처럼 그나마 통학/통근 수요가 있을만한 역도 이런 요금제에서는 그 역할을 다 하지 못합니다.
즉 지금의 교외선은 부활하긴 했으나 통학/통근 수요도, 유원지 관광 수요도 못 잡은 정말 애매모호한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경기도 북부 청사가 있는 의정부로 가려는 수요를 잡는 시간대도 아니구요. 전자를 잡으려면 수소열차를 빠르게 투입한 뒤 일반 철도가 아닌 광역철도(즉 지하철)로 취급해야 하고, 후자를 잡으려면 지금처럼 이른 아침이나 저녁이 아닌 낮 시간에 운영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시험 차원의 시간표라고 하지만 화제성이 떨어지면 아무도 안 타는 공기수송이 될 가능성이 극히 높은 상황입니다.
어쨌거나... 대곡역에서 출발하여 주변의 농촌과 군부대까지 싹 보여주고 열차는 50분 정도 뒤에 의정부에 도착합니다. 제대로 시간만 맞춰 타면 의정부에서 고양까지 정말 빠르게 이어주는 노선인 것은 맞습니다. 선형이 엉망이라 속도를 못 낸다고 하지만 어차피 도로 상황도 썩 안 좋은 구간이라 이것만으로도 경쟁력은 충분합니다.
설 연휴동안은 단돈 1,000원으로 탈 수 있으니 짧은 기차 여행의 낭만을 즐기고자 하는 분이 계시면 빨리 예약하여 한 번 타보시는 것이 어떨지요? 제 돈 주고 타려면 여러모로 속 쓰린 일이 될겁니다.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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