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학교와 관련하여 지금 시즌에는 할 말이 많기는 합니다. 입학생이 한 명도 없거나 겨우 한 명 뿐인 초등학교, 학령 인구 감소로 통폐합되는 중고교 등 다룰 이야기도 많죠. 사실 현재의 학령 인구 감소와 정 반대되는 바글바글한 입학식 풍경은 대한뉴스에도 남아 있는 부분입니다. 다만 이것만 갖고는 이야기가 좀 안 되어 오늘은 학교와 관련된, 정말 과거의 이야기를 하나 적어봅니다.
체육대학 입시에는 운동과 관련된 과목이 들어 갑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고, 안 들어가면 말이 안 되죠. 이딴 이야기를 왜 꺼내냐구요? 그런데 수학과 입시에 운동, 영문학과 입시에 운동, 정치학과 입시에 운동... 이건 좀 매칭이 안 되죠. 물론 어떤 일이거나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일이 잘 되고 배우는 효율도 올라가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운동 좀 잘 하는 사람이 잘 배운다는 법은 또 없죠. 하지만 그 매칭이 안 되는 것이 정말 현실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운동을 잘 해야 대학가던 그 시절 이야기를 잠시 꺼내보도록 하죠.
이건 1986년 9월, 즉 1987학년도 입시에 반영되는 대입 '체력장' 관련 뉴스입니다. 지금은 들을 수도 없는 체력장이라는 말. 사실 이 행사는 일단 이름을 바꿔서 지금도 비슷한건 하고 있습니다. PAPS, 풀어 쓰면 학생건강체력평가제라는 것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PAPS는 학생들의 건강 상태를 측정하고 통계를 내며 이를 바탕으로 체육, 보건, 급식 등의 정책을 정하는 참고 자료로 쓰기 위한 것이지 입시에 반영할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체력장은 정말 입시의 일부였습니다.
나라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의 체력에 신경을 쓰는 것은 사실 꽤 역사가 오래된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국민국가'의 탄생과 맥을 어느 정도 같이 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체력이 좋아야 이들이 성인이 된 뒤 국방력이 좋아지고 나라에서 일을 시켜먹기도 한결 좋아진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나쁘게 해석을 하면 지금 나라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급식의 질에 신경을 쓰고 우유 급식을 하는 것도 다 미래에 양질의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라 보면 됩니다. 철의 여인 대처, 이 우유 도둑은 영국이 존재하는 한 욕을 끝까지 먹어야 하는 것도 아이들의 건강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체육을 시키는 것도 이의 연장선인데, 학교 체육은 엘리트 체육 선수의 재목을 발굴하는 목적도 물론 갖고 있지만 전반적인 아이들의 체력을 끌어 올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솔직히 사회에 나오면 체력 단련을 꾸준히 해야만 하는 직종에 근무하지 않는 이상 체육 시간만큼 움직일 일이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기에 이 시기에 열심히 몸을 움직여 두는 것이 나중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회에서 구르고 구른 어른의 경험담이니 젊은 분들은 꼬옥 기억해 두시길 바랍니다.^^
하여간... 나라에서 아이들의 체력과 건강을 신경쓰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 최소 수준을 강요하는 순간 문제가 벌어집니다. 특히 이 측정 기준이 '운동 능력'이라면 더욱 문제가 됩니다. 사람의 운동 능력이라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으며, 건강한 사람이라도 개별적인 운동 능력은 서로 다릅니다. 머리를 쓰는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은 적절한 영양 섭취와 체력 유지를 위한 어느 정도의 근육 운동만 해도 충분하지 무슨 치타처럼 뛰고 사슴처럼 점프하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게 아닙니다. 그러나 저 시절, 군사정권 시절에는 정말 그걸 강요했습니다.
체력장의 종목은 100m, 오래달리기, 멀리뛰기, 윗몸일으키기, 던지기, 턱걸이, 팔굽혀펴기, 왕복달리기 등의 종목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기초적인 체력 측정인 윗몸일으키기나 턱걸이, 팔굽혀펴기를 빼면 이건 그냥 육상 종목이죠. 몸을 빠르게, 격하게 움직여야 하는 직종이라면 이들은 나이를 먹어도 중요한 요소이기는 합니다. 군대라거나, 군대라거나, 군대라거나 말이죠. 실제로 군에서는 여전히 이들 체력장 종목으로 체력 평가를 하고 진급에 나름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것만큼은 별 네개를 달아도 피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이걸 입시에 반영하면서 청소년들에게 강요했다는 것입니다.
보통 체력장은 학교 상황에 따라서 다르지만 보통 하루 날을 잡아서 치렀는데, 이 결과를 체육 점수에 반영하는 학교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고교 입시, 대학 입시에도 사용했는데 그냥 내신이 아니라 절대적인 점수로 작용했습니다. 학력고사 만점이 340점인데, 체력장 점수가 20점이었습니다. 이것을 더해서 대입을 치렀습니다. 고입은 200점 만점 + 20점이라 더 중요도가 높았습니다. 정말 SKY를 노릴 정도라면 체력장도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전종목 만점을 받아야 만점을 받는 구조는 아니라서 보통 잘 할 수 있는 한두 종목에 올인하고 나머지는 그냥 평균만 하는 전략이 만점 전략이었습니다.
여기에도 함정은 있습니다. 일단 체력장 응시만 해도 100점 만점에 80점은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16점)였기 때문입니다. 즉 체력장 결과가 미치는 영향은 단 4점에 불과했다는 것인데, 정말 1점 차이로 당락을 가르는 학교나 학과에 응시하고자 했다면 체력장도 열심히 해야 했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금 설렁설렁하게 해도 크게 영향을 받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너무 대충 했다면 체육 선생의 빠따(?)가 기다리고 있겠지만 말입니다. 실제로 체력장 점수가 나쁜 경우 체벌을 가하는 경우도 당시에는 꽤 있었습니다.
다만 그 군사정권 시절에도 체력장 결과의 입시 반영은 상당한 논란거리였습니다. 아무리 시민들을 거리낌 없이 학살하는 전대머리라 하더라도 학부모들의 전투종족적인 성향을 무시하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학부모를 건드려서 정부가 뭣된 역사는 은근히 긴데, 대표적으로 1964년의 중학교 입시 무즙 파동은 아예 중학교 입시를 없애는 계기가 될 정도였습니다. 윤가놈이 친위 쿠데타의 핑계로 삼은 의대 파동도 반발한 측이 학부모가 아니기는 하나 넓게 보면 입시 문제이기도 하죠. 몸이 좀 둔하다고 아들딸의 인생 계획이 틀어지게 되는 체력장에 대한 반감은 이 제도 시행 이래 계속 쌓였습니다.
이러던 것이 1990년에 체력장을 치르던 학생들이 연이어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이 반감이 더욱 표면으로 올라오게 되었고, 1994년에 학력고사를 수능으로 대체하면서 체력장은 1993년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폐지됩니다. 이 사망 사건이 오래달리기에서 벌어졌기에 말기가 되면 오래 걷기로 대체되는데, 일단 입시에 반영되는 체력장은 이 때 폐지되지만 체력장 자체는 일단 종목을 줄여서 21세기에도 이어졌습니다. 턱걸이나 던지기같은 것을 빼고 말입니다. 이게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 PAPS의 등장때 일입니다.
하기 전에는 친구들에게 다들 그냥 대충 한다고 말하고서 실제 닥치면 나름 용을 썼던 체력장. 정말 자신의 미래를 위해 젖 먹던 힘까지 꺼내야 했던 체력장. 과거에 환장한 몇몇 늙은이(?)들은 아이들의 체력이 떨어졌으니 체력장을 부활하라는 헛소리를 하고 있지만, 지금 청소년의 체력 문제는 체력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체육 시간이 부족해서가 원인입니다. 그 시간에 국영수만 파고 있으니 체력이 갖춰지겠는지요. 체육 시간은 줄어든 그대로 두고 체력장을 부활시키라는 것은 더 따질 것도 없는 헛소리일 뿐입니다. '체력은 국력'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현재의 교육과 경쟁 체계를 손대야 합니다. 과거로 몇몇 형식만 되돌린다고 아이들의 근육 사정이 좋아지지는 않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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