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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 보는 대한뉴스(42) - 하이재킹을 몸으로 막다, KAL F27 납북미수

dolf 2025. 2. 14. 20:44

 

작년에 개봉한 우리나라 영화 가운데 '하이재킹'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UBD 단위로 망한건 아니지만 본전을 건질 정도로 흥행하지는 못했고 '고증은 잘 했는데 재현은 잘하지 못했다'는 좀 씁쓸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여간 이 작품은 대한민국의 정말 씁쓸한 어떤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은 현대사에서도 거의 안 다루는 내용,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입니다.

 

작년부터 우리나라의 역대적인 불행을 포함하여 전 세계가 여러 항공 사고에 시달리고 있는데, 항공 사고는 대체로 사람의 실수가 있건 자연의 재앙이건 의도해 벌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가운데 누군가의 의도로 이뤄지는 정말 불행한 사건도 있습니다. 그게 바로 '하이재킹(Hijacking)', 즉 항공기 납치입니다. 이 사건은 현재까지 대한민국 땅에서 벌어진 마지막 하이재킹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항공 보안이 정말 있는대로 강화되어 하이재킹은 전 세계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만(0는 아닙니다. 외부인의 소행으로 일어나는 하이재킹만 거의 없지 이 보안이 무력화되는 항공기 승무원이 벌이는 하이재킹은 21세기에도 발생합니다.), 1960~70년대는 정말 하이재킹의 시대였습니다. 항공기 보안에 대한 인식이 지금처럼 강하지도 않아서 비행기 납치가 지금보다 훨씬 쉬웠고, 한 번 납치에 성공하면 엄청난 수의 인질을 확보할 수 있어 정치적인 목적으로 하이재킹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현재의 각국 대테러부대가 발달한 것도 이런 하이재킹에 대한 대응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역사에서 하이재킹을 당한 것은 몇 번 있을까요? 세 번 있었습니다. 먼저 1958년에 창랑호 납북 사건이 있었고, 1969년의 대한항공 YS-11 납북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납북 사건이라는 이름 그대로 전부 북한에 납치된 것인데, 범인은 전부 북한 공작원이었습니다. 이렇게 납치된 사람들의 상당수는 이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예. 김일성 욕을 정말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건이 이번에 적는 1971년의 대한항공 F27 납북 '미수' 사건입니다. 다만 이 사건은 북한의 의도대로 납북이 성공한 앞의 두 번의 사례와 달리 납치에 실패했고, 그 원인조차 좀 다릅니다. 일단 이 당시 대한뉴스부터 보시죠.

 

 

아무리 봐도 연기 티가 나는 인터뷰는 그렇다 치고... 납치에 실패한 비행기는 불시착을 했는데, 기체는 저렇게 박살났음에도 승객 가운데 사망자는 한 명도 안 나왔습니다. 정말 다행인 이 일, 사실은 여러 우연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일단 시작부터 말씀드리면 범인은 '북한행'을 요구하긴 했지만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즉 북한의 지시를 받아 인질을 잡기 위한 것 보다는 그냥 본인이 북한으로 넘어갈 목적에 가깝습니다. 맨날 반공을 노래하는 대한뉴스 특성상 북한 탓을 하고 있습니다만, 적어도 이 사건만큼은 북한이 개입을 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아, 그래도 앞의 두 사건은 전부 북한 탓이 맞으니 김일성 욕을 열심히 해도 됩니다.

 

지금도 아름다운 화진포, 여기가 사건의 무대(?)입니다

 

범인인 김상태는 고성군, 그것도 북쪽인 거진에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거진 위에는 김일성 별장이 있는 화진포, 그리고 통일전망대로 가기 직전의 사실상 마지막 민간인 거주지인 대진리(실제로는 그 위의 명파리가 마지막입니다.)밖에 없습니다. 일단 범인의 가족 가운데 월북자가 있었고 이 때문에 주변에서 백안시당해 변변한 직업도 없이 살고 있었다는 나름 개인적으로는 불쌍한 것이 없지는 않은 과거사가 있습니다만, 범행 목적은 이전에 항공기를 납치한 북한 공작원들이 대접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차피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공하는건 무리니 북한에 가서 잘 살자는 그런 환상이 아니었나 추정되고 있습니다. 왜 추정인가 하면... 범인이 사건 과정에서 사살당했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범인은 하이재킹을 위해 사제 폭탄 제조 방법을 당시 세입자에게 배우고 아이들용 딱총 화약 등을 모아서 사제 폭탄을 만들어 비닐에 둘둘 싸 가방에 넣고 속초발 김포행 대한항공 F27기에 탔습니다. 여기에서 첫 번째 불행이 시작되는데, 이 당시는 두 번의 하이재킹을 겪어 나름 항공 보안을 강화한다고 했는데, 낡은 속초공항의 폭발물 감지기는 이걸 찾지 못했고, 수하물 검색도 제대로 하지 않아 폭탄을 못 걸러냈습니다. 바로 범인을 공항컷(?)시킬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이렇게 북한에 가려 하는 납치범과 폭탄을 실은 비행기는 하늘을 날아 대략 홍천 정도까지 왔습니다. 이 때 김상태가 설치한 폭탄이 터지며 조종실로 통하는 문이 날아갑니다. 그렇게 침입한 범인은 조종사들에게 폭탄을 보이며 죽고 싶지 않으면 북으로 기수를 돌리라고 협박합니다.

 

항공기 조종사들도 이러한 사태에 대비해 교육을 받고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범인을 안심시킨 뒤 요구한 곳이 아닌 곳으로 몰래 가서 하이재킹을 실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항공 관련 교육을 충분히 받지 않은 일반인은 하늘에서 보이는 풍경만으로 여기기 어디인지, 그리고 복잡한 계기를 보고 현재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빠르게 파악하는 것은 어렵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조종간을 잡고 있던 이강흔 기장도 이 전략을 따라서 범인의 요구를 따르는 척 하면서 중간에 불시착을 시키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두 번째 불행이 닥칩니다. 하필 불시착을 하기로 정한 곳이 고성군이었기 때문입니다. 범인인 김상태가 어디에서 살았다구요? 예. 고성군입니다. 그것도 하필 거진 근처의 간성이 불시착 예정지였습니다. 불시착을 위해 고도를 내리자 주변 풍경이 들어왔고 마침 그 곳이 거진 윗동네인 화진포였습니다. 이 동네 사람인 범인은 그곳이 북한이 아닌 화진포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고, 즉시 기장에게 '동작 그만 밑장빼기냐!'를 외치며 결국 불시착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대로 갔다면 납북이라는 배드 엔딩으로 갔겠지만... 여기에 한 가지 변수가 있었습니다. 폭탄이 터지고 납치를 당한 시점에서 기장이 관제탑에 하이재킹 사실을 비밀리에, 그리고 빠르게 알린 것입니다. 속초공항 관제탑에서는 이 무전을 받자마자 바로 군에 신고했고 군은 F-5A 전투기 두 대를 긴급발진시켜 여객기 주변을 에워쌌습니다. 지금은 똥파이브라고 욕을 먹지만 당시로서는 나름 신예기였습니다.

 

물론 이것이 바로 극적인 효과를 발휘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범인을 자극하여 폭탄을 터트린다는 위협을 당했는데, 조종사와 승무원들은 이 상황을 역으로 이용했습니다. 바로 저 전투기는 대한민국 공군기가 아니라 북한군의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이미 한 번 거짓말을 한 사람의 말을 또 믿기는 어렵겠습니다만 여기에서 조종사들과 승무원들의 기지가 돋보였습니다. 조종실 밖의 승무원들은 이 상황을 무전을 통해 듣고 승객들에게 '북한에 들어왔으니 망했어요.T_T'라고 방송을 했고, 정말 북한 영공에 들어온 것으로 믿은 승객들은 울고불고 난리를 쳤습니다. 여기에 당시 F-5는 나름 최신 기체라 국민들에게 덜 알려졌는데, 눈에 익은 F-86같은 것이 아니다보니 범인조차 이를 미그기로 믿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범인의 주의가 잠시 산만해진 틈을 타서 조종석에 타고 있던 항공보안관이 소지한 총으로 범인을 쐈고, 하필 범인이 떨어트린 사제 폭탄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럴 가능성 때문에 총을 쏘는 것을 망설였지만 남은 시간이 없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폭탄을 조종사 교육을 받기 위해 조종석에 타고 있던 전명세 조종사가 감싸안았고, 폭탄이 터지며 기체는 여압을 잃고 조종 계통에도 타격을 입었지만 바로 공중분해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정상적인 비행이 불가능한 상황에 빠진 것은 마찬가지라 긴급 불시착을 시도해 화진포 주변 바닷가에 하드 랜딩했습니다.

 

정말 운이 좋게도 승객들 가운데는 중상자는 없었으나, 폭탄을 몸으로 막은 전명세 조종사와 이강흔 기장을 포함한 승무원들 대다수는 중상 이상을 입었습니다. 이 가운데 전명세 조종사는 응급조치 후 서울로 이송 과정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전명세 조종사의 친형이 당시 대한항공 임원이어서 이는 한 가족의 불행이자 대한항공이라는 기업의 불행이기도 했습니다. 순직 후 국립묘지 안장, 정식 기장 추서, 보국훈장 1등(지금의 보국훈장 통일장이며, 대장 전역자만 받을 수 있습니다.) 수여 등 나라와 회사는 명예를 안겨 주었지만 그것이 순직한 사람과 유가족에게 기쁨은 될 수 없죠.

 

이 사건을 냉정하게 보면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북한에 대한 과도한 환상으로 가득찬 한 사람이 스스로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북한으로 가려고 여러 사람을 길동무로 삼으려다 자기는 지옥으로 떨어지고, 엉뚱한 조종사 한 명을 함께 저승으로 끌고 간 범죄입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왜 내가 욕을 먹어야 함?'하겠지만 이미 앞에 두 건 사건을 저지른 바 있으니 당시에는 북한의 소행이라고 해도 거짓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추신: 범인을 저격하여 사건을 마무리한 항공보안관. 왜 지금은 없는지(미국에는 지금도 있습니다.) 궁금하실 분을 위해 적으면... 이 제도는 1994년에 폐지되었습니다. 1969년에 제도가 도입되어 1971년 이 사건에 대활약을 했고 이후에도 기내 화재 진압이나 기내 난동 진압 등을 했으나 이후에 정작 큰 사건이 안 벌어졌기에 필요성이 줄어들었습니다. 하이재킹은 이 사건이 정말 마지막이구요. 그래서 지금은 승무원들이 이러한 교육을 받고 항공보안관을 대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