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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 보는 대한뉴스(43) - 쌍팔년도의 IoT, 홈 오토메이션

dolf 2025. 2. 19. 18:09

쌍팔년도. 과거에는 1955년(단기 4288년)이었다 지금 세대에는 1988년이 된 그 때는 나름 희망이 있었던 때입니다. 중진국은 확실히 굳혔고 올림픽도 치러서 이미지도 개선되었겠다, 과학 기술도 조금씩 발전했겠다 하며 이 땅에서도 나름 공상과학에서만 나오던 것들이 구현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어린이와 청소년기를 보낸 분들은 과학관 등에서 이런 기술들을 보며 미래는 밝고 편리할 것으로 믿었죠. 머리가 크고보니 현실은 그게 아니더라는 것을 처절히 다들 깨달았지만 말입니다.

 

이 때 미래 기술로 소개된 것 가운데 어린이들의 흥미를 끌었던 대표적인 것은 바로 가정 자동화, 홈 오토메이션이었습니다. 전화를 걸면 전등이 켜지고 커튼이 열리는 과학관에서의 시험 장면에 다들 놀라워했죠. 저는 당시 어린이대공원과 한국통신 본사(현재의 KT 광화문빌딩)에서 이런걸 보고 놀라워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런 폼나는 것을 대한뉴스가 놓칠 리 없죠. 이 홈 오토메이션에 대한 대한뉴스의 이야기와 이 뉴스 뒤에서 나온 통신 관련 이야기를 한 번 적어보고자 합니다. 예. 요즘 적을 주제가 영 없어서 대한뉴스가 잘 팔립니다.T_T

 


 

 

 

가정 자동화(Home Automation, HA), 요즘은 '스마트 홈'으로 부르는 것은 쌍팔년도의 대한민국에서는 정말 신기한 개념이었습니다. 전화로 전등을 켜고 선풍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과학 한국에 절로 신이 났죠. 저 당시에도 저런 원시적(?)인 가정 자동화는 이미 기술적으로 가능했습니다. 어디까지나 기술적으로는요.

 

가정의 가전 제품을 자동화하자는 개념은 선진국에서도 엄청나게 오래된 개념은 아니었습니다. 최초의 가정 자동화용 제어 규격인 X10이라는게 1975년에 나왔으니 저 당시 대한민국과 기술 격차는 10년 남짓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저 X10이라는 규격도 그냥 전기선을 이용한 4비트 통신 규격으로 기껏해야 가전 제품의 On/Off, 전등의 밝기 조절 그 이상은 하지 못했습니다만. 사실 저기 영상에 나오는 수준이 딱 이 X10 프로토콜로 제어가 가능한 것입니다.

 

여기에 나온 것 가운데 일부는 상대적으로는 빠르게 실용화가 이뤄졌습니다. 이 뉴스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인터폰 기능은 이미 1990년대부터 널리 보급이 이뤄졌고, 창문을 비롯한 문이 열렸을 때 경보음을 내보내는 것은 지금은 철물점에서 단 몇 천원짜리 센서만 사다 달면 해결이 되는 수준입니다. 뉴스에서는 가장 뒷부분의 이야기지만 컴퓨터 제어식 기계식 주차장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는 어느 정도 보급이 이뤄졌습니다. 이것들은 상대적으로 기술 구현이 덜 복잡한데다 필요성은 높아서 기술 역시 집중적으로 개발된 탓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눈길을 끌었던 전화를 통한 원격 가전 제품 조작은 이후 한 세대동안 거의 발전이 없었습니다. 즉 저 뉴스가 나오던 쌍팔년도를 지나 엑스포를 하던 1990년대 초중반, 심지어 2000년대 초반에도 거의 똑같은 레파토리를 팔아 먹고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발전이 없었을까요? 이게 나름 이유가 있었습니다.

 

일단 필요성이 낮았습니다. 최소한 가정에는 가족 가운데 한 명은 늘상 상주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가전제품을 깜빡 잊고 켜 놓았다 해도 바로 확인해 끌 수 있어 굳이 원격으로 제어를 하지 않아도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었습니다. 혼자 살거나 맞벌이 때문에 낮 시간에 상주하는 가족이 없다면 조금 더 필요성이 생기겠지만 기껏해야 에어컨이나 보일러를 미리 켜두는 정도나 필요한 것이지 밥통을 원격으로 켤 필요도 없고, 가스레인지는 이걸로는 제어가 쉽지 않죠. 즉 보기에는 흥미로운데 정작 자신의 삶에 꼭 필요하냐 물으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 할 수 있고, 당시 구축 가격을 생각하면 더욱 고를 이유가 없었습니다.

 

다만 이 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제어 기술의 발전이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당시의 가정 자동화는 그냥 집안에서 집중적으로 또는 유선 전화를 이용하여 제어하는 방식이었는데, 유선 전화라는 방식으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정보라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당시에는 컴퓨터라는 것은 보급도 제대로 이뤄져 있지 않았습니다. 일방적으로 전화를 걸어야 제어가 가능한 방식은 즉각적이지도 않고 정보 확인도 극히 제한적으로만 가능합니다. 즉각적으로 사용자와 가전 제품이 통신할 수 있는 수단이 갖춰지지 않았기에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나마 2000년 전후로 ADSL이나 케이블모뎀같은 어느 정도 빠른 유선 데이터 통신 수단이 등장하고 PC도 그런대로 보급은 이뤄졌으나 어디까지나 유선이라는 방법이었기에 가장 근본적인 제어의 편의성면에서 여전히 큰 개선이 없었습니다. 고정된 PC가 없으면 제어할 수 없었고, 무선 통신은 적외선 통신 등 제한적인 방법만 쓰였고, 무선 LAN이나 블루투스의 보급은 더뎠습니다.

 

단 돈 몇 천원에 깡 가전 제품을 스마트 가전제품으로 바꿔주는 어댑터(TP-Link Tapo 시리즈)

 

그래서 진짜 가정 자동화, 즉 지금의 스마트 홈이 현실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때는 전 국민의 손에 스마트폰 한 대는 기본적으로 쥐어져 있으며 블루투스와 무선 LAN 장치가 싸기도 너무 싼데다 흔하기도 너무 흔해진 2020년 전후가 되어야 했습니다. 스마트폰은 굳이 PC를 찾지 않아도 바로 가전 제품의 상태 확인과 제어가 가능했고, LTE와 5G 통신망은 굳이 무선 LAN이 되는 지역으로 가 있어야 할 이유도 없게 만들었습니다. 블루투스와 무선 LAN은 가전 제품을 이 규격으로 무선으로 묶음으로서 훨씬 제어를 쉽게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렇게 연결할 수 있는 준비가 갖춰지자 나머지는 물량공세, 즉 중국의 막대한 생산력으로 제어 기기가 우후죽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저 쌍팔년도 시절에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했던 것 이상, 즉 전등이나 가전제품의 On/Off를 넘어서 가전 제품의 세부적인 작동 환경의 변경과 구체적인 상태의 확인, 단순히 침입자 여부만 경고하고 유선으로 문 밖 사람이나 볼 수 있었던 보안은 원격으로 문을 개폐하고 보안 수준을 변경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게 되었고, 화재나 가스 등 다양한 위험 요소에 대한 빠른 경고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과거에는 없었던 로봇 청소기 등 가정 자동화에 더욱 밀접한 가전 제품이 추가되면서 그 필요성이 더욱 커졌습니다. 지금의 가정 자동화는 '정말 필요가 없어서' 안 하는 사람은 있어도 '하고 싶은데 너무 비싸서 못 하는' 경우는 일부 기능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결국 아무리 최신 기술이라 해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시장의 요구, 그리고 그 기술이 실제로 활용될 수 있는 다른 주변 환경의 성숙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에는 그냥 공상과학의 영역을 넘지 못하게 됩니다. 제트팩 타고 날아가는 보병이 바글바글할 것으로 생각했던 '꿈의 70년대 미군'이 생각나는 날입니다. 현실은 여전히 보병은 땅개에서 못 벗어나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