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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끓여주는 눈물나는 맛의 존슨을 먹다.T_T

dolf 2024. 3. 6. 07:22

옆나라 소여사의 모 만화에 나오는 '등가교환'이라는 단어를 꺼낼 필요까지는 없겠으나, 이 세상 모든 일은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 그에 따른 단점도 분명히 발생합니다. 보통은 자신에게 유리한 장점이 많고, 반대로 크게 자신이 잃을 것이 없는 단점만 있다면 그것을 고르게 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단점이 '자신에게만' 불리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다른 사람에게 불리함을 안겨 주더라도 무방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상거래처럼 서로 주고 받는 관계에서는 한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관계가 아닌 이상에는 불리함을 거래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불리함의 정보를 은폐하거나, 반대로 언론 공작 등을 통해 불리한 것을 유리한 것인 양 속이면 이런 불평등한 거래가 성립합니다. 사실 요식업계에서의 로봇 도입도 이러한 불평등 거래에 가까운데, 로봇이나 AI라는 폼 나는 단어를 꺼내 소비자에게 더 좋은 것 처럼 포장하지만 실상은 철저한 원가 절감이라는 공급자만의 이익을 위한 체계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은 이전에  포스팅으로 올린 바 있기에 한 번 읽어봐 주시길 바라며...

 

 

로봇이 끓여주는 라면, 그게 과연 소비자에게 이득이 될까?

이번 설 연휴 기간에 이런 뉴스가 나온 바 있습니다. 요약하면 문막휴게소에 로봇 셰프 시스템을 도입했고, 문제가 없으면 확대하겠다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로봇팔이 있어야 로봇이고 자동

adolfkim.tistory.com

 

이번에는 그 로봇이 끓여주는 라면 대신 로봇이 끓여주는 존슨을 먹어 보았습니다. 무려 4,900원에 이벤트 할인 판매한다는 존슨인데 로봇 라면은 비주얼의 문제 및 마무리의 문제는 있었어도 그 기술 성숙 때문에 맛 자체는 크게 문제는 없었지만 존슨은 어떨까요?


 

이게 존슨을 포함한 탕요리(한식)의 조리 시설입니다. 이전 포스팅에도 적었지만 정말 무인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고 재료의 공급, 기계의 작동 상태 확인 및 조리 시설의 청소를 담당하는 관리 인원은 상주합니다.

 

이 사진만 보면 도대체 어떻게 존슨이나 갈비탕이 나오는지 이해가 어려울 수 있는데... 대충 이런 프로세스로 굴러갑니다.

 

  • 주문을 접수하면 오른쪽의 재료 보관 냉장고에 냄비째로 보관된 레토르트(또는 냉동) 식자재가 나오고, 로봇팔이 이 냄비를 잡아 가운데에 있는 레인지로 옮깁니다.
  • 가운데의 원형 인덕션을 통해 돌아가며 음식을 끓입니다.
  • 다 끓으면 로봇팔 왼쪽의 냄비 받침이 하나 떨어지고, 이 냄비 받침으로 로봇팔이 조리가 끝난 냄비를 옮깁니다.
  • 컨베이어 벨트로 조금씩 이동하여 음식이 나옵니다. 끝. 알아서 파 집어 넣고 반찬 챙기고 밥 꺼내 먹으면 됩니다.

AI니 로봇이니 폼나게 적었지만 실상은 레토르트/냉동 존슨이나 갈비탕을 그냥 인덕션으로 끓여주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이전 포스팅에도 적었지만 고속도로 휴게소의 로봇 도입은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인건비 절약을 위한 것이기에 사람이 조리한다면 조금 더 개선할 여지가 있는 부분까지 그냥 포기하고 맙니다.

 

하여간 그 결과물이 이러합니다.

 

하여간 이렇게 끓인 4,900원짜리 존슨입니다. 정말 최초의 비주얼이 이렇습니다. 실제로 먹을 때는 여기에 파를 따로 넣어 먹기는 했습니다만, 슬프게도 최초 비주얼은 그리 먹고 싶은 모양은 아닙니다.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이 보통 퀄리티가 많이 떨어지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존슨하면 두부 조각이라도 들어 가거나 라면 반개라도 넣거나 떡이라도 넣거나 버섯 조각이라도 넣거나 하는 뭔가 추가로 들어가는 것이 있는데... 그런 거 전혀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정말 국물에 세 종류의 햄/소시지 들어간 거 말고는 없습니다.

 

그러면 맛은 어떨까요... 휴게소 관계자 분께는 매우 죄송스러운 일입니다만, 살다 살다 이렇게 눈물나는 맛의 존슨도 오랜만에 먹어 봅니다. 저가형 레토르트 존슨 팩을 그냥 대충 끓여 먹는 그 맛 그대로입니다. 존슨은 햄과 소시지를 국물에 오래 넣어 놓으면 특유의 비위를 상하는 냄새가 나는데(이 냄새를 알고자 한다면 존슨을 끓인 뒤 2~3일 정도 냉장고에 두었다 다시 끓여 드셔보면 됩니다.), 냉동과 달리 레토르트는 국물에서 이 냄새가 나는 것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정말 좋게 말하면 진한 맛이지만 좋은 냄새라 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사실 이는 완전 로봇화된 조리 환경에서는 피할 수 없는 사항입니다. 사람이라면 최소화된 공간에 식자재(양념 등)를 놓고 주문에 따라서 이를 적절히 넣어 아무리 원재료가 레토르트나 냉동 또는 반제품 식자재라 해도 먹을만하게 맛의 튜닝을 할 수 있지만, 로봇과 기계로 이를 구현하려면 훨씬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구성도 복잡해집니다. 즉 사람이 조리하는 것과 동급의 퀄리티를 내려면 오히려 사람의 인건비보다 기계의 가격과 유지비가 더 들게 됩니다. 사람의 인건비가 많이 든다고 툴툴대는 세상이지만, 요구 사항이 복잡해지고 다양해질수록 사람이 오히려 기계보다는 총 비용이 싸게 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부분은 라면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라면이 딱 네 종류 있는데, 육개장라면은 그렇다 쳐도 해물'맛'라면이라는 부분이 마음에 걸릴 것입니다. 예. 스프만 해물맛인 것이지 이 안에 해물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해물 토핑을 하게 기계를 만드는 것도 다 돈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요식업계에서의 로봇화 및 기계화는 철저히 수요자, 즉 요식업자의 원가 절감이라는 목적 하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여기에 재화를 공급받는 사람, 즉 손님의 입장은 철저히 배제됩니다. 이를 숨기기 위해 AI라는 폼 나는 단어를 붙여 스마트하고 깨끗하고 더 맛있을 것 처럼 포장합니다. 실상은 전혀 아니지만 말입니다. 아무리 4,900원이라 하지만 저 위의 퀄리티의 존슨은 그냥 '싸니까 참고 먹는다' 수준을 넘기 어려우며, 하물며 이를 제 값 다 받는다면...  그 퀄리티로 사람이 끓여준다면 상을 뒤엎고 나갈 사람도 꽤 있을 것입니다. 폼 나는 최신 기술이 늘 최종 소비자에게 좋을거라 생각하시면 그건 뒤에서 썩소를 짓는 누군가에게 돈을 안겨주는 시작이 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