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이건 민주정권이건, 보수정권이건 민주계 정권이건 대한민국의 모든 정권은 국민을 대상으로 구라를 안 친 적은 없습니다. 정권을 쥐고 있는 자들의 사욕을 위해서, 그냥 자신들의 실수를 감추고 없는 쫀심을 살리기 위해서 구라를 칩니다. 그리고 그렇게 구라가 걸리면 손목이 잘리는 것 까지는 아니지만 정권에 꽤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본격적인 장마철을 맞이하여 오늘은 이 '비'를 갖고 정부가 구라를 치다 걸린 슬픈 사례를 소개합니다. 예. '구라청'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1시간 앞 날씨도 못 맞춘다고, 아니 1시간 전 날씨도 틀리다고 하는 그 구라청이지만 그냥 예보가 틀린 차원을 넘어서 아예 그 예보를 '속인' 일도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태풍/홍수 역사에서도 손가락에 드는 1987년, 태풍 '셀마' 이야기입니다. 장마가 쉬어가서 푹푹 찐다 하지만 일단 장마철이라 이런 내용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태풍 이름을 태평양에서 태풍의 영향을 받는 국가들이 순서대로 문제은행식으로 붙여서 뺑뺑이를 돌리지만, 과거에는 미국에서 임의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2차세계대전 이후 편의상 이렇게 붙인 것인데, 이것도 '피해 좀 덜 일으켜라'는 심정으로 여성 이름을 붙였는데, 여성 인권 향상으로 성차별 이야기가 나오면서 1979년부터는 미국식 남녀 이름이 모두 붙었습니다. 지금처럼 각국의 고유 단어가 붙기 시작한건 2000년 이후 이야기입니다.왜 저 시절 태풍 이름이 다 서양 남녀 이름이냐는 궁금증에는 이게 답이 될거고...
2020년대를 살아가는 지금이야 21세기 태풍인 매미, 볼라벤, 힌남노같은 것이 유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셀마는 지금까지도 레전드 태풍의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1987년 태풍임에도 인명과 재산피해 모두 역대 Top 10 자리를 여전히 유지할 정도입니다. 그나마 나라 꼴이 잡힌 1980년대 후반임에도 인명피해가 엄청났고, 물가도 낮았음에도 그 재산피해도 지금 물가를 반영하는 21세기 태풍들 사이에서 Top 10을 유지할 정도의 피해를 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태풍, 피해를 일으키는 기준이라 할 수 있는 최대 강수량이나 최대 풍속은 Top 10에 못 듭니다. 물론 한반도 접근 당시 파워는 나름 1등급이라 절대 약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실제 영향을 준 파워는 생각만큼은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태풍으로 내린 비는 경남 내륙과 영동 일부 지역에만 300mm 가까이 왔지 영호남 나머지 지역은 100~200mm 정도, 경기도는 아예 100mm 미만으로 내였습니다. 그런데도 현재까지 역대급 피해를 준 태풍으로 남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구라청, 아니 그 당시에는 기상대의 역대급 무능과 구라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게 실제 셀마의 진로입니다. 대충 주황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는 지점이 1987년 7월 14일이었습니다. 사실 이 시점부터 미국과 일본은 저 경로처럼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라청, 아니 구라대는 '양키와 쪽발이들이 글러먹는 넘들이고 태풍은 대한해협으로 갈거야 빼액~'을 시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런승만같은 소리를 해대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7월 14일에만 이랬다면 다행인데, 제주도 남쪽에 거의 다 이른 15일 오후까지도 같은 소리를 해댔습니다. 즉 태풍 별거 아니니 그냥 가볍게 준비하면 그냥 지나갈 것이라 말한 것입니다. 정말 그럴 줄 알고 국민들은 태풍에 대해 그렇게 큰 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대한해협으로 태풍이 가면 왜 위험하지 않은지 그 이유를 모르실 분을 위해 짧게 설명하면... 태풍은 대충 시계 방향을 기준으로 2시~8시 정도 부분의 위치를 '위험반원', 8시~2시 사이를 '가항반원'이라 부릅니다. 대충 태풍의 왼쪽에 위치하면 가항반원, 오른쪽에 위치하면 위험반원이라 생각하면 되는데, 위험반원이라는 말 그대로 그 위치에 있는 지역은 반대편보다 훨씬 강하고 많은 비가 내립니다. 태풍이 대한해협을 지난다는 것은 한반도는 위험반원에 들 이유가 없다는 의미이기에 상대적으로 마음을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태풍은 구라대의 주장을 대놓고 씹고 그날 밤 늦게 전남 고흥에 상륙합니다. 그리고 지리산을 낀 경상도 서부를 박살내고 추풍령 주변을 휩쓸고 태백에 폭우를 내리게 하고 강릉에 비바람 공포를 일으킨 뒤 동해로 빠져 나갔습니다. 이 때 순간 풍속은 상륙 시 최고 40m/s, 상륙 후에는 25~30m/s급을 유지했습니다. 사실 셀마의 순간 최대 풍속은 거의 50m/s 가까이는 되어야 Top 10에 들어가는 상위 랭커 태풍들과 비교하면 그렇게까지 세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단단히 대비한 40m/s와 별다른 방비가 없는 40m/s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의 결과를 냈습니다. 그것이 저런 농경지 침수와 345명의 인명피해를 낳았습니다. 남부지방의 피해는 거의 1959년의 레전드 태풍, 사라 이래 최초라 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엄청난 피해를 낳은 구라대... 이제 얌전히 오랏줄을 받을 시간이 왔군요. 하지만 그들의 추한 발악은 계속됩니다. 그냥 '예보를 잘못해서 죄송하다'고 했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일본이나 미국이 틀린게 맞고 태풍은 대한해협으로 빠져나간게 맞으며, 그런데도 저렇게 킹왕짱 셌던거라 우리 잘못 없음'이라고 구라를 쳤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당시에 해외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도, 사람도 적다고 하지만 저런 거짓말은 금방 들통납니다. 당장 AFKN(현재의 AFN 코리아)만 틀어도 미국발 기상 정보가 나왔으니 저런 구라로 속이는 것도 한계가 있죠. 결국 6개월 뒤 내부적으로 내놓는 자료인 기상월보를 통해 구라를 시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잠시... 셀마는 주로 태풍이 뚫고간 전남/경남 남부 및 경상도 내륙/강원도 내륙과 해안 지역에 피해를 주었고 서울과 경기도는 기껏해야 70mm 정도의 비와 17.5m/s의 최대 풍속을 기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서울과 경기도는 그 해 행복했을까요? 아닙니다. 역대급으로 불행했는데 셀마가 지난 직후 그 불행이 닥칩니다.
7월 27일 하루에만 서울에 300mm 가까운 물폭탄이 터졌습니다. 이런 집중호우를 못 견디고 서울의 제방이란 제방은 그냥 빵빵 터졌고 주변은 다 물에 잠겼습니다. 저 대한뉴스처럼 한강공원(고수부지)은 나무와 전등 말고는 보이는 것도 없을 정도인데, 이 때 기록한 잠수교 수위 13.7m는 아직까지 깨지지 않는 기록입니다. 이 폭우로 수도권에서만 339명의 인명 피해가 납니다.
이 때는 구라대가 구라를 치지는 않았지만, 서울시가 사고를 쳤습니다. 폭우가 거의 다 내린 이후에야 홍수경보를 발령했고, 둑과 수문은 그냥 빵빵 터져 나갔습니다. 그 결과 한강과 가까운 잠실과 마포쪽이 그냥 다 물에 잠겼습니다. 용산역이 물에 잠겼다는 소리가 나왔으니 말 다했죠. 서울 이재민만 10만명이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그 직전 수도권 홍수인 1984년 홍수를 기억하는데, 진짜 천호대교에서 돼지 떠내려 가는 모습을 봤죠. 그 홍수를 뛰어 넘은게 저 1987년 수도권 홍수입니다.
태풍과 장마, 집중호우는 하늘의 일이라서 사람이 어찌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피해를 늘리고 줄이는 것은 다 사람의 일입니다. 대비만이 살 길이며, 정부의 말은 듣기는 듣되 언제 어떻게 구라를 칠지 모른다는 마음을 갖고 임기응변의 대응 능력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올 여름, 다들 비 피해가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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