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한뉴스가 계속 땅에서 놀았으니 한 번은 하늘로 올라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하지만 어쩝니까. 이 블로그의 대한뉴스 코너에서는 좋은 소리가 그리 안 나오는데, 여기에서 다루는 하늘이 결코 좋은 내용은 아니겠죠. 예. 맑고 화창한 하늘이 아니라 꿈과 희망이 찢겨진(Shattered) 하늘입니다. 아, 제목에 적힌 Shattered Skies는 유명한 슈팅 콘솔 게임, ACE COMBAT 04의 부제입니다. 이 시리즈는 3편 이후로는 이런 식의 폼나는 부제들이 붙곤 하죠.^^
이제는 국산 로우급 전투기인 FA-50을 넘어서 미들급 전투기인 KF-21까지 성공적으로 개발 과정이 진행중일 정도로 항공쪽으로도 나름 발전을 이룩한 대한민국이지만, 사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여러 실패와 좌절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나름 성공적으로 개발을 했음에도 상용화를 실패한 사례도 있었죠. 그 대표 사례가 오늘의 대한뉴스 이야기의 주제인 창공-91입니다. 이 비행기 입장에서는 하늘은 결코 푸르고 넓은 하늘이 아닌 진짜 찢어진 하늘이 되고 말았죠. 그 좌절의 이야기를 열어봅니다.
사실 대한민국이 비행기를 만들어본 역사는 거슬러 올라가면 1953년까지 올라갑니다. 부활호라는 것인데, 사실 이건 자체 개발은 아니고 에어론카 L-16 연락기 부품으로 그냥 자체적으로 '재생 & 조립'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에서 영운기에 불과한 시발이 중요한 한 페이지를 차지하듯이 이 부활호도 중요한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역사이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물건이라 한 때 행방불명된 이 기체를 찾아서 복원한 뒤 공군사관학교에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등록문화재이기도 하구요. 비슷한 사례로는 해군에서 T-6 훈련기를 재생 & 마개조해 수상기로 만든 해취호가 있겠습니다. 부활호 레플리카는 전쟁기념관 가면 있으니 날 좋을 때 한 번 보러들 가보세요.^^
나름 '고유 모델' 항공기 역사도 길다면 깁니다. 1954년에 해군에서 SX-1이라는 것을 시작으로 SX 시리즈 항공기를 만들었는데, 엔진은 그렇다 쳐도 기체는 우리 손으로 만든 것입니다. 물론 제대로 된 개발 인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군에서 항공 정비를 배운 당시 해군 내 기술 장교들을 주축으로 그냥 제대로 된 도면도 없이 뚝딱뚝딱 만든 것입니다. 그래도 그냥 있는 비행기 재생 수준이었던 앞 사례보다는 낫죠. 어디까지나 제대로 된 항공기 설계를 배운 사람들이 아닌 정비 계통 사람들이 만든거라 품질은 조악했고 날기는 날았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만.
이후에도 대학교나 연구소 차원에서 초소형 항공기 제작은 간혹 이뤄졌지만 어디까지나 기술 검증 정도의 목적이었지 이것을 본격적으로 '판매'할 목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걸 본격적으로 팔겠다고 만든 것이 바로 이 창공-91인데, 제작사는 대한항공입니다. 항공사가 왜 비행기를 만드냐구요? 사실 항공기의 역사를 보면 비행기 제조사가 항공사를 겸업하는 경우는 꽤 많았습니다. 미국 3대 항공사인 유나이티드 항공도 원래는 보잉의 계열사였죠.
그 전에 악기 제조사인 야마하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 이야기를 해봅니다. 이 회사의 사업 확장은 나름 유명합니다. 그야말로 테크트리를 타듯이 확장을 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목제 악기 수리업으로 시작한 야마하는 그 경험으로 목제 악기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다시 목제 악기를 만들다보니 금속 악기를 만들 수 있게 됩니다. 금속 악기를 만들 수 있게 되자 이제는 그 금속 가공 기술을 이용해 여러 사업을 하는데 그 결과가 골프채와 엔진입니다. 목재와 금속 가공이 가능하니 FRP 가공도 가능해지고 그걸로 다시 모터보트와 오토바이를 만들었죠. 대한항공도 사실 이 테크트리를 탑니다.
항공기는 자주 점검을 하고 부품 교환을 해야 합니다. 정말 큰 파손이면 제조사 차원에서 수리를 해야 하지만 자잘한 통상 점검이나 소모품 교환도 제조사에 맡기면 돈이 비쌉니다. 그래서 자기가 직접 이런 정비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정비에 대해서도 외주를 받기 시작하는데, 공군과 미군 공군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교통 관련 사업을 하는 곳들은 다 비슷하죠. 그런데 정비 노하우가 쌓이다 보니 자주 쓰는 부품을 만드는 단계에 이릅니다. 정부 입장에서도 방위산업을 키워야 하기에 대한항공에 지원을 꽤 해줬구요. IMF 시절에도 대한항공의 정비 및 부품 제조 산업(대한항공 항공우주산업본부)은 그대로 유지되고, 오히려 다른 회사의 항공우주 산업이 KAI로 합쳐집니다. 이후 이 사업은 계속 커져서 지금은 보잉과 에어버스에 날개와 문같은 부품을 납품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항공기 분해 조립 및 수리도 가능하겠다, KF-5(제공호) 조립도 해봤겠다, 일부 부품은 항공기 제조사에 납품도 하겠다... 이 정도면 슬슬 뭔가 비행기를 만들어 볼 생각이 들기도 하겠죠. 그래서 대한항공을 중심으로 일부 항공기 부품 제조사가 컨소시엄을 꾸며 정부 지원하에 만든 경비행기가 바로 창공-91입니다. 그 전에 창공 시리즈 초소형 항공기가 있었는데,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기술실증기에 가깝고, 창공-91은 그 보다는 판매까지 생각한 프로토타입입니다.
비행기하면 다들 보잉이나 에어버스같은 여객기나 전투기만 생각하기 쉽지만 적게는 한두명 정도 타는 경량 항공기도 수요가 꽤 있습니다. 미국같은 곳은 이걸로 농약 살포같은 것을 하기도 하는데, 공군 방공 출신에게는 이가 갈리고, 예비군훈련에 가면 지겹게 듣는 AN-2같은 것은 원래 이런 용도로 쓰라고 만든 비행기입니다. 지금도 마개조를 하여 잘 팔리고 있구요. 그 이외에도 긴급 소화물 운송, VIP의 단거리 고속 이동 용도로 이런 소형 항공기, 흔히 이쪽의 제왕인 세스나의 이름을 딴 세스나기는 그런대로 수요가 있습니다. 창공-91이 바로 이 시장에 뛰어들 생각으로 만든 것입니다. 엔진은 이쪽의 제왕이라 할 수 있는 라이코밍사의 것을 쓰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국산입니다.
대한항공이 프로젝트 전반과 전체 조립을 담당하고 한 때 버스도 만들었던(지금 KG커머셜로 불리는 그 버스입니다.) 한국화이바가 FRP 동체 관련을, 삼선공업이라는 곳에서 알루미늄 부품을 공급하는 형태로 만들었는데, 91년에 발표를 하고 이후 테스트를 거쳐 92년 후반에는 감항증명, 즉 이 비행기가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증명을 받아 판매가 가능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사실 발표 당시만 해도 동급의 수입 항공기보다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고 그랬기에 나름 기대를 모아서 대한뉴스에도 나온 것이죠. 하지만 이게 성공했다면 '찢어진 하늘'이 아니겠죠. 결국 창공-91의 양산은 실패하는데, 결함이 있어서는 아닙니다. 이유는 간단한데, '수요가 없어서'입니다.
위에도 적었지만 농약 살포나 소형 화물 운송, VIP 운송, 나름 부자의 취미 등의 목적으로 소형 프로펠러 항공기는 전 세계적으로 수요는 꽤 있습니다. 그렇지만 항공기는 비싼만큼 꽤나 보수적인 물건이기도 합니다. 즉 신규 브랜드가 뛰어들어 시장을 파고드는 것이 어렵습니다. 지금은 전 세계를 잡아 먹는다는 에어버스도 창립 초기에 A300 하나만 갓 발표했을 때는 겨우 자국 항공사인 에어 프랑스 한 회사만 썼고 다른 항공사는 '에어버스? 뭔 듣보잡?'하며 거들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 때 대한항공이 에어버스 기체를 대량으로 주문한 것을 계기로 다른 항공사들도 조금씩 에어버스 여객기를 사들이며 품질 인정을 받았고 에어버스가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입니다. 괜히 대한항공 설립자인 고 조중훈 회장이 에어버스를 방문하면 레드카펫이 깔렸다는 말이 나오며, 프랑스에서 훈장까지 준 것이 아닙니다. 슬프게도 창공-91은 이 보수적인 시장을 못 뚫었습니다.
일단 대한항공 자체적으로 민간 조종사 양성을 위한 훈련기로 쓰고, 공군에도 초급훈련기로 납품할 생각을 품었으며, 일부 중남미나 중동 국가에서도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다 합쳐도 수요가 50대 남짓. 항공기는 커다란 생산 라인을 필요로 하기에 수요가 충분치 않으면 본전도 못 건지는데 창공-91의 양산은 최소한 300대 이상은 되어야 경제성이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면 만드는 족족 적자를 보는 것이죠. 사실 기체의 단점도 있던 것이 날기는 잘 날지만 상업용으로 쓰기엔 화물칸이 좀 작기도 했습니다. 공군에서 쓰자니 공군은 이미 비슷한 시기에 KT-1을 개발하고 있던 참이었으니 필요가 없었구요.
이렇게 잘 만든 항공기는 달랑 3대(실제 시험기는 2대)만 만들고 역사의 뒤로 사라졌습니다. 본격적인 항공기 수출은 공군, 그리고 KAI 주도로 만든 KT-1을 통해 이뤄지게 됩니다. 이후로 대한민국은 초등훈련기 및 전선통제기(KT-1/KA-1), 고등훈련기 및 소형공격기(T-50/FA-50)을 거쳐 중형 전투기인 KF-21에 이르는 테크트리를 구축했지만 아직 민간 시장용으로 쓸만한 항공기는 못 만들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수요가 있는 군용과 달리 무한경쟁인 민간 시장용 항공기는 사실 일본조차 고전하는 시장이기는 합니다만, 이 때 나름 성공을 했다면 지금은 좀 더 다른 모습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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