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목욕을 가지 않았더니 이번주 말에 쓸 포스팅 내용이 좀 비어 과거에 쓸까 말까 망설이던 좀 오래된 내용을 올려 봅니다. 주제도 레트로(Retro)입니다. 레트로가 요즘은 상술이라 별로 가성비가 좋지 않다는 것은 머리 속 이성은 분명히 파악하고 있는데, 감성은 여전히 '질러봐?'를 외쳐보는 것이 사실입니다. 마트를 갈 때 마다 이러한 갈등을 때리게 만들던 아이템이 하나 있었는데,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 지르지 않았으나 떨이(?) 기회가 생겨 하나 집어 왔습니다. 물론 그 떨이 반값으로도 이성으로는 돈 값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그게 뭐냐면...
칠성사이다는 패키지는 이미 세는 것이 귀찮을 정도로 많이 바뀌었고 심지어 맛 조차 바뀌었습니다. 이 물건은 그 가운데 1950년 최초 출시 제품에 대한 레트로 버전입니다. 정작 박스 포장의 모델은 1980년대 이선희 여사 버전입니다. 사실 저 때가 맛이 현재의 것에 가까운 3차 에디션 변화 시기입니다만. 칠성사이다는 1950년 최초 버전에서 1966년에 '화란 나르당' 향으로 바뀌었고(네덜란드 나르당사는 현재 수 차례 인수 합병을 거쳐 스위스 지보단에 합병되었습니다.), 저 1987년에 자체 개발 향으로 바뀝니다. 일단 칠성사이다의 리즈시절 그 광고 하나 보고 가시죠.^^
박스를 열면 위에 이런 식으로 종이가 하나 들어 있습니다. 투명 병이 아닌 이유는 변질을 막기 위해 직사광선을 차단해야 하는 컬러 유리병이 필요한데, 녹색 등 다른 병을 만들려면 복잡하니 그냥 흔히 쓰는 갈색병 생산 시설을 쓴 것입니다.
참고로 '순설탕'이라는 말이 강조된 이유도 있는데, 이게 1950년이기에 중요한 문제입니다. 일단 윤가놈 돼지색휘 일당, 뉴라이트가 환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부터 얼마나 개소리인지 까보면... 한반도의 경제 사정은 1910~20년대에 반짝 좋아졌고 특히 30년대부터는 완전히 고꾸라져 1940년대에는 1910년 강제 합병 수준의 경제 사정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즉 일제 강점기동안 한반도의 전체 경제 크기는 전혀 성장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제의 야욕으로 한반도를 탈탈 털었으니 이 꼴이 된 것이죠.
그래도 일제가 남긴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닌데 바로 조미료와 설탕입니다. 조미료(아지노모토)와 설탕은 나름 비싼 식자재이기는 했어도 민간에 깊게 침투했습니다. 그런데 일제가 도망치면서 이 두 가지 공급이 완전히 끊깁니다. 그리고 미 군정이 들어서고 혼란기가 오면서 경제는 더 망해 버립니다. 수입도 뭣도 제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 사회는 설탕과 조미료에 목마르게 됩니다. 그렇다고 사카린같은 인공 감미료는 설탕의 그 맛을 채우기엔 너무나 거리가 멀죠. 그래서 인공 감미료를 안 쓰고 설탕으로만 단맛을 냈다는 '순설탕'은 중요한 경쟁력이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설탕 공장이 1953년에 처음 지어지고(제일제당), 이후에도 1950년대에는 여러 번 설탕 파동이 벌어질 정도로 설탕의 가격과 공급이 요동쳤기에 더욱 그러하죠.
패키지는 6병을 넣을 수 있는 나무 박스로 되어 있습니다. 다만 구획을 나누는 것이 그냥 골판지인게 좀 아쉽습니다. 그냥 이것도 나무로 짜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물론 구획이 없는게 나중에 뭔가 더 써먹을 것이 있냐고 하실 분도 계시겠습니다만.
하여간 이게 사이다 본체입니다. 병은 그냥 355ml짜리 일반적인 사이다병 용량이며, 다만 기존 칠성사이다 병 모양이 아닌 투박한 전용 병입니다. 오히려 맥주병 디자인에 가깝죠. 여기에 옛날 디자인을 따른다고 라벨을 비슷하게 만들어 붙였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맛이죠. 일단 성분을 보시면 심플합니다. 물, 탄산, 설탕에 향료와 약간의 구연산. 이게 끝입니다. 요즘은 탄산음료에 과당이 들어가고 현재의 칠성사이다도 그러합니다. 사실 과당이 설탕보다 더 싸게 만들 수 있어서 애용되는 편이구요. 다만 전체적인 칼로리는 현재의 칠성사이다에 비해 이 레트로 버전이 더 낮습니다. 역시 과당이 들어가면 칼로리가 높아집니다.T_T
일단 맛에 대해서는... '묵직한 맛'이라는 한 마디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과당이 들어간 음료의 좀 가벼운 단맛이 아니라 끝맛도 설탕 특유의 좀 끈적하고 무거운 맛이 남습니다. 향 역시 현재의 가벼운 향은 아니고 약하면서도 좀 무거운 느낌입니다. 맛 없는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중량감이 있는, 요즘 음료에서는 좀 드문 맛입니다. 나름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젊은 세대 취향과는 약간 거리는 있습니다.
이걸 반값에 샀어도 병당 2,000원 정도라 솔직히 말하면 가성비는 꽝입니다. 편의점 사이다 가격도 아니고 마트 사이다 가격이면 이 돈이면 1.5L도 보일 정도죠. 그래서 가성비를 따지고 사실 분이라면 바짓 가랑이를 붙잡고 말리고 싶어집니다. 물론 이런 물건은 돈을 버릴 각오 없이는 사는 분은 계시지 않을 것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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