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그리고 초봄에 산불로 고생하는 것은 연례 행사에 가깝지만, 올해는 그 고통이 너무 컸습니다. 당분간 깨고 싶어도 깨기 어려운 기록을 남겨 버렸고 수 많은 재산, 그리고 아까운 인명을 잃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의 선물, 불을 함부로 인간이 다룬 결과가 이렇게 참혹합니다. 불은 정말 다룰 수 있는 곳에서만 안전하게 다뤄야지 논두렁에 지르고, 묘소에 지르고 할 것이 아닙니다.
하여간 이 화마가 할퀴고 간 뒤... 당연히 이 사건에 대한 반성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방향이 잘못되었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지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현실을 모르고 그냥 써대는 지적은 그 뒷수습을 할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돈 낭비도 부릅니다. 그 사례를 하나 좀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뉴스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기존 산불 진화 차량보다 훨씬 수압도 세고 저수 용량도 큰 고성능 산불 진화차량이 있는데 산림청에도 극소수고 지자체에는 아예 있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수압이 세면 산불 진압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고 저수 용량도 크면 훨씬 오랫동안 불을 끌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건 아무도 모를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크고 아름다운건 좋은거고 이렇게 말하는건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저게 현실적인 이야기인지는 따지는 것도 기자가 할 일입니다. 저 고성능 진화차량으로 싹 갈아 엎자, 최소한 다수를 도입하자는 것이 주장이라면 일단 저 고성능 산불 진화차량이라는 것이 뭔지는 봤어야 합니다. 자, 저 영상을 잘 보십시오. 고성능 진화 트럭에 어디서 많이 보던 로고가 있지 않나요? 요즘 도로에서 정말 흔하게 보이는 로고 말입니다.
예. 벤츠 로고입니다. 저 차는 벤츠에서 만든 것인데, 벤츠는 BMW와 다르게 상용차도 만드는 회사라서(그래서 BMW 마니아들은 벤츠를 '트럭 회사'라고 깝니다. 반대로 벤츠측에서는 BMW를 '오토바이 회사'로 깝니다.^^) 뭐 저런 차도 만들 수 있죠. 그런데 저게 그냥 트럭일까요. 절대 안 그렇습니다.
다목적 엔진 탑재 농기계, UNIversal MOtor Gerät, 예. 벤츠 유니목(UNIMOG) 되겠습니다. 벤츠가 만든 독일판 세레스이자 때로는 트랙터도 되고 때로는 트럭도 되는 그런 정체 불명의 물건. 하지만 만들고 보니 산도 넘고 강도 넘는 무서운 물건이 되어 버린 그런 만능 트럭입니다. 현재의 중년 남성들을 불태운 만화, 에어리어 88에서 카자마 신이 대통령 일가 탈출 작전에서 정말로 잘 써먹은 그 트럭으로 나름 기억에 있을 것입니다.
당연히 저런 만능 고성능 트럭이라 베이스는 좋을 수 밖에 없는데... 벤츠가 만든 고성능 트럭이면 가격이 문제죠. 그러면 저 유니목 가격은 얼마나 될까요? 일단 ChatGPT에 한 번 장난스럽게 물어보죠.
소방서
펌프, 자재 또는 장비를 운반해야 하는 경우, 작업 중 물을 처리해야 하는 경우 또는 다목적 소화, 구조 및 복구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경우: Zetros는 소방대, 국제 구호 단체 또는 위기 지역으로
www.mercedes-benz-trucks.com
유니목의 산불 진화차량은 메르세데스-벤츠 트럭에서 국내에서 정식으로 파는 물건입니다. 일반 유니목도 팔기도 하구요.일단 홈페이지에는 가격 견적이 없어서 직접 현재 가격을 보기는 어렵습니다만, 저 ChatGPT 이야기대로 최소 레벨이 대당 4억은 넘는다는게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대형 소방차도 대당 2억을 보통 안 넘는다는걸 생각하면 최소한 두 배 이상 가격인 셈입니다.
유니목이 좋기는 좋죠. 하지만 이걸로 산불 진화차량을 다 바꾸자... 거의 이것만 1조원이 듭니다. 산림청의 1년 예산이 대충 2조5천억 왔다 갔다 하는데 이 정도면 지를만 하지 않겠냐 하겠지만 이 예산에서 실제로 산림 재난 관련으로 쓸 수 있는 예산이 8천억원 정도인데 이게 다 산불 전용이 아니라 산사태도 고려해야 하니 실제로 산불만에 쓸 수 있는 돈은 정말 얼마 안 됩니다. 이 부분을 저 뉴스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저 트럭이 좋아서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라는 뉴스였다면 대당 트럭 가격과 현재 산림청 및 지자체 예산 상황도 함께 다뤘을 것입니다. 이 부분을 싹 빼고 그냥 '이렇게 좋은 트럭이 있는데 몇 대 없다니!!!'라고만 말한 시점에서 이 뉴스는 트럭을 사게 산림청에 예산을 늘려주자는 여론 환기용도 아니며, 그냥 산림청과 산림 관련 업무를 하는 지자체를 그냥 깔 목적의 뉴스에 불과한 것입니다.
정말 산림청에서 중장기 프로젝트로 산불 진화 차량을 유니목으로 전부는 아니더라도 주류가 되게 교체하겠다 하면 언론은 뭐라 할까요? 아마 '독일 수입차를 사는 외화 낭비의 주범'이라고 깔겁니다. 산림청도 바보가 아니라서 유니목을 얼마 못 산게 아니며 없는 돈에서 나름 고민해서 저거라도 산 것일 것입니다. 나라 예산이 500조원이 넘네 어쩌네 해도 결국 각 부분에 쓸 수 있는 돈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사고가 난 뒤 무책임하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그냥 무시해버리고 하는 손가락질은 그냥 손가락질 자체를 위한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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