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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Goes On(생활|기타)

말 많은 GTX-A를 타보다

dolf 2024. 5. 3. 09:07

요즘 교통 분야에서 나름 말이 많은 것이 GTX-A라는 것입니다. 현재 1차 개통 구간으로 수서-동탄의 운영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교통 혁명이라고 있는대로 띄워 주더니,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치의 절반도 안 타더라고 돈 낭비라고 두들겨 패는 우디르급 태세 전환을 하는 언론들 덕분입니다. 철덕은 아니더라도 새로운 것이 나왔다면 한 번 타 보는 것이 예의. 그래서 타 보았습니다.

 


■ GTX, 그게 뭐여?!

 

GTX, 정확한 명칭은 '수도권 광역급행철도'라 불리는 이 물건은 이름 그대로 '수도권'내 도시들을 '급행' 규격으로 운영하는 '철도' 노선입니다. 왜 이렇게 띄어서 설명하는가 하면 그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좀 설명이 길지만 이걸 이해해야 왜 이런 이름을 붙여서, 철도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보통 우리는 지하철(전철)은 지하철이고 무궁화호는 무궁화호이며 KTX는 KTX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생김새나 차량의 종류에 대한 분류에 가깝지 이걸 어떠한 목적으로 운영하는지 정확히 담지는 않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대한민국의 철도에서는 의외로 '중간' 단계가 거의 한 세대 가까이 공중에 붕 떴기 때문입니다. 이게 뭔 소리인지 지금부터 설명합니다.

 

택시같은 맞춤형 교통수단을 제외하고 철도같은 다수를 수송하는 교통 수단은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편하게 수송하는가에 따라서 등급이 나뉩니다. 철도의 경우 보통(완행), 급행, 특급, 고속철도 등으로 나누는데 고속철도야 KTX나 SRT가 있으니 알겠는데, 나머지는 도대체 뭔 차이임... 이렇게 물을 분이 대다수일 것입니다. 무궁화호는 급행이요 새마을호는 특급 아니냐구요? 사실 맞는 말이지만 맞는 말이 아니기도 합니다. 이게 말장난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철도에서 보통 등급은 사실상 있는대로 역을 다 서는 것, 급행은 그 보다는 역을 덜 서는 것, 특급은 급행보다도 역을 덜 섭니다. 역을 적게 설수록 불필요한 감속을 하지 않아도 되니 표정속도(평균속도)가 빨라져 훨씬 목적지에 빠르게 도착하게 되죠. 물론 등급이 올라가면서 편안함을 더 중시하는 객차를 투입하고, 최고 속도도 더 빠른 것을 투입합니다. 일단 이게 열차의 등급의 원칙인데... 이 기준이 대한민국에서는 한 세대 이상 무너진 상황이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비둘기호나 통일호. 우리는 이걸 '보통 열차'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실상은 '급행' 열차입니다. 비둘기호는 최초 등장 시 급행이었는데, 나중에 통일-무궁화-새마을의 4단계로 정리가 되면서 보통 등급으로 추락한 것입니다. 통일호, 그리고 지금은 싸궁화로 불리는 무궁화호는 보통 등급으로 떨어진 적도 없습니다. 그러면 보통 열차는 뭐냐하면... 지금은 사실상 없어진 것과 같은 '통근열차', 그리고 우리가 흔히 '전철'이라 부르는 지하철 1호선같은 노선입니다. 사실 이것도 법적으로 따지면 도시철도와 광역철도로 나뉘기는 하는데(건설 및 운영비 부담 원칙 등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결국 똑같은 전동차를 쓰다보니 그게 그거입니다.

 

통일호와 무궁화호 있으니 우리나라도 급행 열차 있는데 왜 이게 공중에 붕 떴냐고 하냐구요? 그 이유는 대한민국에서 급행 열차 등급으로 분류되는 것들(무궁화, 누리로, ITX-청춘, ITX-새마을, ITX-마음)은 '출퇴근 목적', 특히 수도권에서의 출퇴근 목적으로는 부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철과 통근열차를 제외한 모든 열차는 사실상 중장거리 운행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원래 이런 중장거리 노선은 특급이 맡는게 원칙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일반 열차는 KTX 등장 이후 사실상 전부 급행으로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기에(구 새마을호는 특급이지만 이것도 사실상 급행 수준으로 운행했습니다.) 단거리 급행 운행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급행 등급 열차들이 다들 중장거리 운영만 하다보니 단거리 승객은 표가 없어서 못 탄다고 하고, 반대로 장거리 승객도 단거리 승객 때문에 역시 전체적으로 한 번에 앉아 가는 표를 못 구한다고 서로 불만인 상황이 수 십년을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불만 투성이인 급행 열차도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흔히 '지하철/전철 노선'이라 생각하지 않는 일반 철도가 운영되는 연선 지역에 한정된 이야기였으니까요. 경부선 열차가 안 가는 분당, 판교, 동탄같은 동네에서는 배부른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죠.

 

그러면 지하철(정확히는 수도권전철) 1호선이나 경의중앙선 등에서 나오는 '급행'은 뭐냐구요? 이건 사실 법적으로는 그냥 보통 등급입니다. 보통 등급 열차로 그냥 역 몇 개 빼먹는 수준에 불과한 것이죠. 이 조차 운영할 수 있는 곳은 손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느린 열차가 빠른 열차를 피해 기다려주는 대피선이 있어야 하는데 수도권에서 건설한 대부분의 지하철/전철 노선은 이걸 고려하지 않다보니 이런 가짜 급행 운영도 할 수 있는 곳이 얼마 없고 효율도 떨어집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에서 급행 열차 운영한다는 말 들어 보셨나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못 합니다. 대피선이 없거든요. 열차도 그냥 일반 지하철 차량이라 속도도 빠르게 못 냅니다.

 

길게 적었는데, 현재 수도권에서의 철도/지하철 교통은 '일반 열차가 수도권 내 도시간 급행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함', '나머지 수도권전철 노선에서 제대로 된 급행 운영이 물리적으로 불가'라는 두 가지의 문제를 안고 있고, 그 때문에 최근 수 십년간 건설한 수도권 내 신도시들 가운데 서울과 바로 인접하지 않은 곳들(파주, 판교/광교/동탄, 다산/마석 등)과 서울을 잇는 교통은 전부 버스계의 급행인 광역버스에 전부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도로는 꽉꽉 막히고 이들 지역 거주민들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래서 이들 지역과 서울을 아예 급행 운영 전용으로 새로 지하철을 놓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그게 바로 GTX입니다.

 

원래는 '도지삽니다'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하긴 했지만 이게 국가 사업으로 바뀌어 건설을 시작했고, 현재 3개 노선은 확정하여 건설중이고 나머지는 열심히 머리만 굴리는 단계입니다. 그 첫 번째 결실이 GTX-A의 1단계 구간인 이 남부 구간입니다.

 

■ GTX-A, 타보니 어떠한가

 

현재 GTX-A는 수서~동탄 구간만 먼저 개통한 상태입니다. 이 구간의 역은 딱 네 개인데, 먼저 강남 남부의 환승 요소인 수서역, 판교 한 가운데에 있는 성남역, 수지/죽전/마북 지역 아파트를 배후로 삼는 구성역, 그리고 제2동탄에 있는 동탄역입니다. 이것도 아직 구성역은 개통도 못 한 상태라 그냥 수서에서 타면 성남역 한 번 서고 바로 동탄역으로 내달립니다.

 

수서역 구내

 

먼저 강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수서역으로 갑니다. 하지만 광진구에서 수서역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GR맞은 수준입니다. 어디에서 타도 한 번은 갈아타야 하고, 보통은 두 번 갈아타야 합니다. 직선 거리로는 멀지 않아 보이지만 지하철로 가기에는 뭣같은 곳이 바로 수서역입니다. 여기서는 왕십리에서 분당선을 타 보았는데... 역시 강남리 마을전철은 느립니다.

 

3호선을 타건 분당선을 타건 일단 하차 태그를 찍어야 합니다. GTX-A 역은 이들 역과 SRT 수서역 사이에 있기 때문인데, SRT 수서역을 가는 길에 통로가 따로 있습니다. 여기에서 승차 태그를 한 번 더 찍어야 합니다. 일단 환승 할인은 적용됩니다. 여기에서 두 층을 더 내려가면 위의 승강장이 나옵니다.

 

현재 열차는 시간당 많아봐야 세 대 꼴로 운영합니다. 즉 재수가 없으면 20분 이상 기다려야 하는데, 제가 딱 그랬습니다. 역 구내에는 자판기도 뭣도 없어서 심심합니다.T_T

 

그리고 도착하는 열차...

 

일반적인 지하철은 1량에 문이 한 면에 네 개씩 있지만, GTX-A는 3개만 있습니다. 대신 문 하나가 꽤 크게 되어 있는데, 동시에 많은 사람이 우르르 타고 내리는 상황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적으로는 기우인 상황입니다만. 문은 일반 전동차와 다르게 KTX와 유사한 슬라이딩 도어로 되어 있습니다. 최고 운전 속도가 180km/h라서 풍압을 대비한 설계로 보입니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차내는 꽤 넓지만 조금 애매모호합니다. 일반 지하철이나 다를 바 없는 플라스틱 재질의 롱시트이며, 손잡이까지 달려 있습니다. 바닥은 모켓 재질로 추정됩니다. 철저히 통근 목적으로 만든 것이라 승객의 편안함은 그리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텅텅 비었습니다. 아무리 휴일 아침이라고 하지만 한 량에 탄 사람이 저 혼자 뿐입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이 칸에 저 혼자 탔습니다. 이후의 성남역에서 몇 명이 더 타기는 했지만(수서에서 탄 사람보다 성남에서 탄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래도 텅텅 빈다는 표현이 바뀔 정도는 아닙니다. 그 사람 없는 경강선 전철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여간... 열차는 출발하는데, 이 구간은 거의 대부분을 SRT, 즉 수서평택고속선과 공유합니다. 이 노선을 만들 당시부터 GTX와의 공유를 전제로 한 것인데 진동도 거의 없고 G 역시 일반 전철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즉 빠르다고 하여 몸에 더 부담이 가는 것은 없습니다. 서서 가더라도 큰 부담은 없을 정도입니다. 속도감은 없어도 진짜 속도는 빠른데, 아무리 구성역이 개통이 안 되어 표정속도가 더 빠르다고 하지만 농담이 아니라 정말 19분만에 도착합니다. 속도만큼은 정말 알짜배기입니다.

 

동탄역 구내

 

그렇게 19분 뒤 동탄역에 내립니다. 동탄역은 SRT와 역사를 공유하는데, 다만 고상홈인 GTX-A와 달리 중상홈인 SRT는 홈이 달라서 저런 식으로 역사가 나뉩니다. 나가는 길은 따로 있기는 한데, 개찰홈이 따로 없는 SRT쪽 통로로 나가는 경우 SRT 홈으로 이동하는 통로에 있는 개찰기에 태그하면 됩니다.

 

 

그리고 죽어라... 지하 6층부터 지상까지 올라오면 됩니다. 플랫폼에 있는 엘리베이터는 지하 5층까지만 가고, 5층부터 지상까지 올라오는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습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워낙 작아서 지금처럼 그 사람 없는 GTX-A만 도착하는 시간이 아니고서는 엘리베이터를 편히 타고 오는 것은 무리입니다. 언론에서 다룬 것 처럼 에스컬레이터만 죽어라 타고 지하 5층까지 오는건 상당히 시간이 걸립니다.

 

■ 2028년까지 답 없는 것은 분명하다

 

휴일 오전에 타본 GTX-A는 일단 시간면에서는 확실한 메리트를 줍니다. 지금도 안정적으로 19분, 구성역에 정차한다 해도 20분대 초반이면 수서에서 동탄역을 끊을 수 있습니다. 직장이 수서역 인근이거나 3호선/분당선 강남 연선 지역인 경우, 그리고 거주지 역시 동탄역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면 4,450원이라는 꽤 비싼 요금에도 불구하고 시간적인 단축 효과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노선의 승객이 정부 주장대로 '편한 것을 알게 되면 팍팍 이용객이 늘어난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이는 수서역과 동탄역의 입지 문제 때문입니다. 이유는 언론에서도 나와 있지만...

 

 

먼저 동탄측 문제부터. 동탄역은 이렇게 지도만 보면 전체 동탄의 중앙부에 위치하여 나름 좋아 보이지만, 실상은 제2동탄의 서쪽에 위치합니다. 경부고속도로로 막힌 부분을 지하화를 완료한 지금 빠르게 도로를 개통하여 제1동탄과 접근성을 개선한다 해도 제2동탄의 주요 아파트 단지가 서쪽에 있기에 1동탄에서의 접근성은 딱히 좋지 않습니다. 제2동탄 역시 저 골프장 덕분에 동쪽으로 단지가 늘어서 있어 의외로 동탄역의 접근성이 안 좋은 곳이 많습니다. 정말 동탄역 주변 아파트 단지 거주자가 아니고서는 동탄 내 이동에만도 시간을 꽤 잡아 먹습니다.

 

 

그렇다고 수서쪽은 상황이 나을까요? 오히려 더 나쁩니다. 수서역은 강남구에서도 거의 구석에 있고, 탄천을 건너면 송파 남부입니다. 말은 SRT/GTX-A/분당선/3호선 쿼드러플 역세권이라고 하지만 이 환승 저항이 문제가 됩니다. 분당선은 그 위로 강남리 마을전철로 돌변하여 표정속도가 느리고, 강남을 통과하기는 하는데 상대적으로 유동 인구가 적은 선릉쪽을 통과합니다. 동탄의 강남 환승 거점인 강남역도, 큰 회사가 많은 삼성역도 현재로서는 안 갑니다. 3호선 역시 더 서쪽으로 돌아가며 송파쪽으로도 남쪽으로만 가기에 잠실 등 거점으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한 번만 갈아 타고 갈 수 있는 곳에 직장이 있다면 낫지만, 정말 사람이 많은 곳은 두 번은 갈아타야만 합니다. 이 환승 때문에 기껏 벌어 놓은 시간을 다 까먹습니다. 차라리 이럴거면 동탄/기흥IC - 서초IC를 거쳐 강남역과 이어지는 광역버스(동탄역에서 한 블럭 걸어가면 6001번이 있습니다.)를 타고 맙니다. 버스전용차로 덕분에 어떻게든 고속도로만 올라가면 그런대로 몸이 편하게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탄 안에서도 환승을 거쳐야 하고, 수서에 도착해서도 여러 번 환승을 하면서 몸도 지치고 시간도 다 까먹는데 돈도 더 비쌉니다. 이거 누가 탑니까? 현재로서는 서울-동탄간 수요보다는 오히려 판교-동탄간 수요가 더 많을 지경입니다. 삼성역까지만 이어졌다면 강남역으로 가는 광역버스 킬러가 될 수 있었겠지만... 2028년에도 삼성역이 개통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저는 지금 하는 꼴을 보면 2030년에도 될까 말까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2차로 개통하는 파주-서울역 구간은 파주(운정)과 일산에서 북쪽의 환승 거점인 서울역으로 바로 꽂아버리는 만큼 적어도 현재의 수서-동탄 구간보다는 훨씬 상황은 나을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남쪽은... 삽을 뜨기는 커녕 설계도 못 하고 있는 삼성역이 끝까지 발목을 잡을 것이며 크고 아름다운 삼성역 욕심에 이도 저도 못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돈 까먹는 철도라는 악명이 쌓이는 시간만 길어질 것입니다. 아무리 빠르게 철도를 잘 만들면 뭘하는지요? 거기까지 가는 시간이 더 걸리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