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볼 일 자체가 사실상 전무한 이 동전. 물론 나이 드신 분의 댁에는 어딘가 잘 찾아보면 하나는 있을 그런 동전입니다. 물론 지금도 만들기는 만듭니다. 은행간 정산용과 민트세트로 말입니다. 돈의 가치보다 수집품으로서의 가치가 더 큰 이 동전의 앞면. 대한민국의 초등학생 이상이면 모르면 옆 나라들 간첩인(조선을 있는대로 부인하는 북한일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그런 물건입니다. 예. 거북선입니다.
충무공하면 거북선이요, 거북선하면 충무공인 그런 존재. 임진왜란 그 자체의 아이콘이라 해도 좋을 이 배. 아래 대한뉴스처럼 툭하면 복원하고 방치하고 폐기하는걸 반복하는 그런 유물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 거북선이 임진왜란에 어떤 목적으로, 얼마나 쓰였는지는 아는 분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정작 충무공께서는 이 배를 타고 지휘를 한 적도 없다는 사실조차 아는 분이 적습니다. 임진왜란의 아이콘인 거북선, 이 배의 진실을 한 번 대한뉴스에 나온 김에 찾아 보도록 하죠.
충무공하면 임진왜란(+정유재란), 임진왜란하면 거북선이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합니다. 하지만 충무공은 거북선이라는 배 스타일을 처음 만든 사람도 아니며, 거북선이 임진왜란의 주역도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거북선이 쓸모 없는 배라는 의미는 아닙니다만.
사실 거북선의 프로토타입은 고려시대의 과선이라는 것 부터 올라갑니다. 사실 해적질을 해댄 것을 왜구만은 아니며 북쪽에서 여진족도 말 이외에 배를 타고 노략질을 해댔습니다. 동양이건 서양이건 해적질은 결국 배에 올라가서 약탈하는 것인데, 이걸 막으려면 일차적으로 배에 올라오기 어렵게 해야 하겠죠. 그래서 연구한 것이 배에 칼같은 날카로운 것을 박아 승선을 어렵게 한 과선입니다. 이게 또 개량되어 검선이 되고 거북선 이후에는 창선으로 진화합니다만...
그런데 이 배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주력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시 주력함보다 소형화하고 기동성을 중시하여 해적선단을 분단시키고 혼란시키는 돌격대장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이런 위험한 임무를 맡았으니 적의 승선 위험도 높고 그걸 막는 체계가 발전한 것입니다. 바다의 기병 역할을 이들 배가 맡은 것입니다.
거북선이라는 이름 역시 충무공의 전매특허는 아니며 태종실록에도 그 이름이 등장합니다. 다만 역할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하나 그 설계와 운용 개념은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고, 이후에 실록에 등장한 것이 없는 것으로 볼 때 딱히 쓸만한 것으로 보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거북선의 제작은 충무공의 지시에 의한 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이 때에도 거북선은 절대 주력함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조선 수군의 주력함은 판옥선이었습니다. 이 판옥선은 그야말로 왜군 입장에서는 바다의 성으로 불릴 정도로 컸습니다. 당시 왜군의 배는 크게 중형함인 관선(세키부네)와 대형함인 안택선(아타케부네)의 두 종류였는데, 특히 대장의 안택선은 왜군들도 '바다 위의 성'으로 부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 기함급 안택선도 판옥선보다 작았습니다. 이 거대한 배를 조선 수군은 주력으로 굴렸습니다. 왜군의 스파이(?)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수군 대부분을 말아 잡수실 때 판옥선 수량이 160척이었습니다. 이 때 거북선은 달랑 3척. 전체 건조 수량은 많아야 7~8척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칠천량 해전 이후에는 판옥선의 추가 건조는 있었으나 정유재란 기간동안 거북선의 추가 건조는 없던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당시 조선 수군의 전투 스타일과 거북선은 맞지 않았습니다. 왜구는 배를 가까이 대 적선에 승선하여 육박전을 벌이는 전통적인 해군과 해적의 스타일을 고수했는데, 이에 맞서 조선 수군은 멀리서 대포를 갈겨 적선을 침몰시키는 화력덕후식 전술을 구현했습니다. 즉 아웃복싱 스타일을 고수한 것입니다. 판옥선보다 소형함인 거북선은 이 용도에는 쓸만하지 않죠.
그러면 거북선은 어디에 써먹었느냐 하면... 위에 적은 바다의 기병 역할이었습니다. 기병은 적 전선에 균열을 내고 깊숙히 침투하여 적의 고가치 목표물(즉 적장)을 급습하는 역할을 맡는데, 거북선을 실제로 그렇게 운용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왜군 깊숙히 침투하면서 대포로 전선에 혼란을 일으키고, 그 사이에 적장의 배와 주변 부장들의 배를 부수고 도망치는 역할입니다. 전사를 보면 충무공은 철저한 사전 조사를 통한 적의 규모 및 예상 전술을 파악하고 유리한 전장 환경을 구축한 뒤 판옥선의 스펙을 잘 활용한 견실한 전술 운용으로 적을 부수는 매우 모범적인 제독임을 알 수 있는데, 그래도 돌격대장의 역할이 필요함은 잘 알아 이러한 거북선을 건조하고 나름 쏠쏠히 써먹었습니다.
정리하면 거북선은 절대 주력함은 아니었으며 그 수 역시 전체 조선 수군 규모와 비교하면 극소량이었습니다. 또한 그 운용 방식 역시 조선 수군의 일반적인 방향과 크게 달랐습니다. 하지만 전선에 돌파구를 만드는 바다의 기병인 거북선의 역할에 눈을 돌린 것은 분명한 충무공의 공적이며, 소량이라고 하지만 충무공의 전술적인 역량이 더해져 그 건조 목적을 충분하고 남을 정도로 달성했습니다. 대신 임진왜란의 주역은 판옥선이었으며, 충무공은 이 배를 타고 왜선을 때려 잡았다는 점은 나름 기억해야만 합니다.
정유재란 이후 충무공도 전사했기에 일단 나라의 전후 처리가 중요한 수십년간은 거북선을 추가 건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충무공이 남긴 거북선의 운용 성과는 분명했기에 이후에도 많지는 않지만 조금씩 추가 건조를 했습니다. 정조 시기에 이르면 최대 40여척을 운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 배는 19세기 말에 통제영이 사라지면서 그 역할을 다합니다. 사실 이 시기가 되면 철선 + 동력선의 시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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