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돌아온 대한뉴스 이야기, 오늘은 나라를 까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나라가 잘 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무슨 심경의 변화냐구요? 사실 칭찬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니고, 다른 어떤 나라는 깔 생각입니다.^^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 드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해외의 좋은 것을 우리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인데, 가끔 현실에 안 맞는 것을 들여오자고 하거나 아니면 그걸 쓰는 나라들도 문제가 넘치는 것을 좋다고 받아들이자 하는 추종자들이 나와서 문제일 뿐입니다. 예전에 대한뉴스에서도 이 드립을 써먹었던 서머타임 이야기를 한 바 있는데, 이건 이 제도를 쓰는 나라들도 문제가 많은데다 대한민국 현실과 안 맞아서 결국 마지막으로 때려친 이후 수십 년간 도입 이야기도 안 나오고 있죠. 이 이야기도 한 번 다시 들쳐 보구요.
하지만 정말 도입해서 다행인 제도도 있습니다. 흔히 '미터법'으로 불리는 국제단위계(SI단위)입니다. 사실 나이 드신 분들은 아직도 옛날 단위가 익숙한 면도 있고, 낀 세대인 저희 세대도 기존 단위가 가끔 편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이 미터법을 강제한 것은 대한민국의 정말 신의 한 수라 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미터법이 뭐고, 이게 왜 좋은 것인지, 이걸 안 써서 발생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한 번 적어 봅니다.
이 대한뉴스는 1987년판인데, 사실 이 때 미터법(SI단위)가 도입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 뉴스는 '미터법 좀 잘 쓰자'라는 캠페인이지 이 날부터 미터법을 쓰자는 것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미터법 도입 역사는 사실 1961년까지 올라갑니다. 이 때 계량법이라는 법률을 만든 것이 시초입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좀 더 뒤에서 적기로 하고...
사회가 생기고 나라가 생기면 무엇이건 '측정'할 일이 생깁니다. 그게 쌀이나 밀같은 곡식이건, 땅이건, 금이나 은이건 말이죠. 그래서 각 사회에서는 각각의 측량 단위가 생겨났고, 영향력이 센 나라의 단위를 다른 나라가 받아들이기도 하면서 지속적으로 이 부분이 각각 발전해 왔습니다. 이거야 뭐 인류 역사를 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서 적을 것은 없겠습니다만...
열심히 유럽에서 과학이 발전하던 시절, 그 과학의 중심이던 프랑스에서 지금까지의 여러 단위를 '과학적'이고 '계몽적'인 기준으로 재정립하자고 하여 만든 것이 현재의 미터법의 시작입니다. 계산도 쉬워야 하니 단위는 10진법에 기반을 두었습니다. 하프, 쿼터... 그런 거 없습니다. 일단 미터법의 기초인 1m는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적도에서 극점까지의 거리를 1/10000000로 줄인 것입니다. 아, 미터법에서는 모든 숫자 표기는 붙여 쓰는게 원칙입니다.
이 미터법(현재는 SI단위)은 시간(초), 길이(m), 무게(kg), 전류(A), 온도(K), 부피(mol), 밝기(cd)가 정의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게 '기본'이라는 것이고 이걸 보조하는 단위들도 당연히 있습니다. 전류가 있으면 전압도 있어야 하니 V가 있고, 방사선이라는 힘은 또 다르니 Bq라는 단위가 있죠. 굳이 비유를 하면 저 7가지 단위가 신계의 주신이고, 전압이나 저항, 압력 같은건 종속신 개념이라 할 수 있겠죠.
물론 미터법이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이게 당시 과학 기술 기반으로 그럴듯한 것이라서 나중에 재 보니 좀 뭔가 안 맞는 것도 생겼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미터법의 그 미터조차 시대에 따라서 계속 발전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저 지구의 길이를 기준으로 했는데 이 조차 계속 변하는데다, 기준으로 삼는 물건(원기라 합니다.)도 계속 늘고 줄고 하다보니 지금은 아예 변할 건덕지도 없는 실제 물건이 아닌 것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예를 들어 1m는 '빛이 진공에서 1/299792458 초동안 가는 거리'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나름 과학적인 근거를 두고 만든 이 미터법의 시작이 1790년인데... 그 프랑스조차 보급이 잘 안되어 50년 뒤에는 아예 법으로 미터법을 쓰라고 강제해 버립니다. 사실 단위의 변경은 나라에서 이렇게 강제로 안 하면 도입이 잘 안 됩니다. 다만 다른 나라에서도 보니 프랑스가 하는 것이 꽤 그럴듯한 이야기라서 너도나도 미터법을 도입하겠다고 나섭니다. 그래서 1875년에 '미터 협약'이라는 것이 성립합니다. 웃기게도 미터법을 안 쓰는 미국이 이 미터 협약 초기 가맹국입니다. 지금도 가입되어 있구요.
다른 나라를 말하기 전에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냐구요? 사실 이 한반도의 기존 단위계는 일명 '척관법'으로 불리던 방식입니다. 길이의 경우 자(한자로 쓰면 척입니다.), 무게는 관, 부피는 석, 넓이는 평(보)를 기준으로 하는 것입니다. 아리랑에 나오는 '리', 금을 사고 팔 때 쓰는 '돈', 소주 양을 잴 때 쓰는 '홉' 등은 척관법의 보조 단위죠. 문제는 이게 상호 호환이 안 됩니다. 각각의 단위는 정의는 있지만 이게 다른 단위와 쉽게 변환이 안 되다보니 계산이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가로 2자, 세로 3자, 높이 2자의 그릇에 담긴 쌀의 양이 몇 홉인지 단번에 계산이 가능한지요? 이거 가능하면 나름 천재급입니다. 사실 다른 나라도 이 문제를 완전히 동일하게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나라의 형태가 잡히자 나라 발전을 위해서는 이 계량형의 통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들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썬글라스 박이건 런승만이건 장박사건 말이죠. 그래서 1959년에 대한민국도 미터 협약에 가입을 했습니다. 아, 부카니스탄도 미터 협약 정회원국입니다. 그리고 후속 조치로 '대한민국의 공식 단위는 미터법이다'라고 못을 박은 표준법이라는 것을 1961년에 제정합니다. 지금은 이 법을 대신하는 국가표준기본법이라는 것이 존재하구요. 내용은 그 표준법에서 확장된 것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적었듯이 프랑스에서도 50년동안 보급을 하다 안 되어 나라가 강제로 했는데 사회에 퍼진 척관법이 금방 바뀌겠는지요? 사실 교육계에서는 새 기준에 맞춰 교육을 하는 만큼 조금씩 미터법에 익숙해지는 세대가 생기기는 하지만 그 교육을 안 받은 세대는 미터법이 낯선 법이죠. 표준법을 만들고 3년 뒤 아예 법으로 '시중에서 미터법(SI단위) 이외의 것을 쓰는 것은 금지!'라고 했는데다 쉽게 안 바뀌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때는 넓이 기준인 '평'은 그대로 두는 실책을 범했습니다. 그래서 1970~80년대쯤 되면 길이나 무게는 그런대로 미터법에 익숙해졌지만 집이나 땅만큼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1983년에 들어서 평 단위까지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쓰지 못하게 하면서 대한민국은 사실상 완전한 SI단위 국가가 되었습니다. 물론 공식적인 자리에서 못 쓰게 한 것이라 그냥 일반적인 자리에서는 써도 문제는 없습니다만, 공문서는 물론이고 광고 등 공식적인 부분에서는 전부 SI단위를 써야만 합니다. 그래서 '34평 아파트'라는 말 대신 '34형 아파트'라는 돌려 표현하는 말을 쓰죠. 솔직히 아직도 주택이나 토지는 제곱미터 단위로 쓰면 이상하게 느낌이 잘 안 옵니다.T_T 모니터 역시 '인치' 단위를 못 써서 '27형'이나 '32형'이라는 표현을 쓰구요. 사람은 쉽게 못 바뀌고 결국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 세대 교체를 해야 이런 것도 바뀌는 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 기존에 척관법을 쓰던 나라들은 의외로 미터법(SI단위)로 변화를 빠르게 했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몇 년씩 빠르게 단위계를 엎어 버렸고, 중국은 공식적인 미터법 전환은 1985년으로 늦기는 했지만 '공산당 빠와'로 전환 자체는 상당히 빨랐습니다. 문제는 기존에 척관법과 다른 체계, 영미 단위계를 쓰던 영국과 미국입니다. 일명 '야드파운드법'으로 불리는 체계죠.
먼저 영국부터... 섬나라의 똥고집으로 야드파운드를 고집할 거 같은데 의외로 영국은 SI단위로 변화를 빠르게 했습니다. 정확히는 그 시도가 빨랐다는 것인데, 1965년에 '10년 뒤에 SI단위로 전환'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되면 영국이 아니죠. 실제로 민간에서의 전환도 제대로 안 되고 이후 정권에서도 전환에 영 소극적이었습니다. 결국 20년이 지난 1985년에 '2000년부터 SI단위 강제화'를 발표합니다. 즉 사회적인 전환에 15년이나 기회를 준 것이죠. 척관법을 쓰던 동양 국가들이 못해도 1980년대에는 강제화를 진행한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래도 2000년부터는 강제화를 했으니 된 거 아니냐구요? 그게 아니라는게 문제입니다. 브렉시트의 실제적인 원흉이라 할 수 있는 보리스 존슨이라는 작자가 2020년에 이걸 뒤엎으려 했습니다. SI단위 강제화를 때려 치우고 영미 단위계도 허용하려 한 것이죠. 태어날 때 부터 귀족처럼 자라서 자기만의 리그에서 성장한 보수당의 윗선다운 현실을 외면한 주장이었는데, 나름 영미 단위계에 환장한(?) 보수 노년층의 표를 노린 행보라는 평가지만 세상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우스운 행동이었죠. 그나마 생각이 있던 리시 수낙 정권에서 이 시도를 그냥 때려 치워 버리고, 세상을 모르고 브렉시트라는 똥을 싸지른 보수당을 영국 국민들이 심판하면서 들어선 흙수저판 노동당 정권에서는 이런 반동적인 주장을 꺼내는 멍청이는 현재까지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미국... 전 세계에서 SI단위를 안 쓰는 단 세 나라가 있는데 그 가운데 최종 보스가 미국입니다. 나머지 두 나라는 미얀마와 라이베리아입니다. 그 부카니스탄도 SI단위를 잘만 쓴다는 점을 생각하면 SI단위를 안 쓰는 것이 이상한 것이죠. 미국은 자유지상주의에 근본을 두어 연방정부가 강제적으로 뭘 할 수 있는게 꽤 제한이 있는데다, 미국은 영국보다 더 보수들이 넘쳐나는 나라입니다. '나는 잘 사니까 남들은 불편하건 망하건 상관 없음' 하는 것인데, 이 때문에 연방정부가 아니라 주정부 레벨에서도 SI단위 보급이 안 됩니다.
물론 미국 과학계에서는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아서 어떻게든 SI단위의 강제화를 추진해왔고 추진하고 있으며 미래에도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요일에 아멘을 외치며 한 손에는 버번 병을, 다른 한 손에는 돼지 껍데기 튀김을 들고 계신 분들(?)의 강한 반대 + 미국 단위계(야드파운드법의 변형)를 SI단위로 뜯어 고치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이 답이 안 나온다는 이유로 그야말로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문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나마 한 것이 법률로 미국 단위계를 미터법(SI단위)와 매칭시킨 것 뿐입니다. 이 문제 역시 SI단위가 나온 이유처럼 원기가 기후 및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 내용이 변해버리는 문제를 똑같이 겪어서 안 변하는 기준을 만들기 위해 미국 단위와 SI 단위를 연동시킨 것 뿐입니다. 그냥 날로먹기를 한 거죠. 하지만 그렇게 한들 미국 단위계는 SI단위처럼 계산이 편하지 않다보니 환산 작업이 극히 어렵다는 문제는 변하지 않습니다. SI단위에서 길이를 부피로 환산하는 것은 그냥 단순무식 사칙연산 레벨입니다만, 미국 단위에서는 머리에 김이 올라오고 처리 오류로 기절해버리는 문제가 됩니다.
그 결과 미국에서 초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는데, 1991년에 NASA에서 화성 기후 궤도선 하나를 날려 먹었습니다. 이유도 웃긴게, 제어 소프트웨어는 SI단위로 입력해야 하는데 궤도선 제조사는 관련 데이터를 전부 미국 단위계로 줬고 이걸 환산하는 작업 없이 그냥 때려 넣었기 때문입니다. 수 천억원이 그렇게 허무하게 날아갔습니다. 이 사건 이후 NASA는 '미국 단위계 X까!'를 외치고 내부적으로, 그리고 협력사들에게 SI단위만을 사용할 것을 강제하고 있습니다. 그 이외에도 미국 이야기는 아니지만 1983년에 캐나다에서 에어캐나다 143편 사고, 일명 김리 글라이더 사건이 터졌는데 이 역시 단위계 착오가 원인이었습니다. 이거야 야드파운드를 SI단위로 변경하는 적응기에 발생한 실수입니다만, 단위계가 달라지면 이런 실수가 얼마든지 벌어집니다.
그래서 민주당 정권이 미국에서 들어서면 꼭 이 SI단위 강제화가 나오는데, 정작 반대가 너무 심해서 제대로 추진도 못하다 시간이 흐르고,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면 그냥 그대로 쭉~ 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저 나라는 아직 뜨거운 맛을 더 봐야 합니다. 항공 분야처럼 미국이 워낙 힘이 세서 미국 단위계가 업계 표준이 된 경우도 없는건 아니지만 제 아무리 천조국이라도 세계에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는 결국 한 줌에 불과합니다. 다만 삽이 아닌 포크레인질을 할지언정 적어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미국이 SI단위를 법제화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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