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한 운명'이라는 말을 참으로 많이들 씁니다. 정말 누가 봐도 눈물이 고이는 그런 운명. 이게 사람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기업이나 국가, 물건조차 이런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난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그 운명의 장난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지만 간혹 해피 엔딩을 찍는 경우도 있습니다.
2024년 말부터 2025년 초는 이래저래 대한민국 철도에서 기념할만한 시기라 할 수 있는데, 동해선이 드디어 완공되었고, 중부내륙선도 2단계 공사 개통을 했습니다. 그리고 중앙선 복선화도 완공되어 이제 부전발 청량리행 KTX도 가고 있죠. 오늘은 이 가운데 중부내륙선 2단계와 관련이 있는 어떠한 기구한 철도 이야기를 해봅니다. 바로 문경선과 문경역입니다.
이건 1954년, 대한뉴스에서도 초반인 66호 뉴스입니다. 오늘 이야기하는 문경선의 개통 이야기인데, 사실 이 문경선은 지금의 문경선과는 좀 다릅니다. 이 당시 문경선은 문경선 + 가은선이며, 지금의 문경선이 된 것은 1969년의 이야기입니다. 최초의 개통에서 15년이나 지난 뒤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 철도가 '산업선'이기 때문입니다. 일제시대가 아닌 대한민국 정부 성립 이후에 만든 철도, 특히 산업선으로 불리는 것들은 거의 대부분 탄광과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석탄만이 아닌 시멘트나 철광석도 있지만 에너지원인 석탄이 주된 이유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최초 개통된 문경선은 점촌-은성 구간이었는데, 이 은성역은 나중에 가은역으로 개칭됩니다. 이 당시 가은역에는 은성탄광이 있었고 이 철도의 목적은 이 탄광에서 캔 석탄을 경북선을 이용해 도시로 나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가은은 탄광 말고는 그냥 깡시골이라 이왕 철도를 지은 김에 중간에 분기를 시켜 당시 문경의 중심지인 문경읍까지 철도를 놓고 이게 현재의 문경선이 된 것입니다.
석탄 산업이 잘 굴러갈 때는 우스개 소리로 개도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지역은 나름 호황이었습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실제 광부들의 열악한 생활이 있고 실제 저기 강원도로 가면 사북사태까지 벌어질 정도지만 그나마 다른 깡시골과는 비교를 거부할 정도로 경제 상황이 좋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1960~70년대까지는 도시로 인구 유출이 치명적일 정도는 아니어서 시골에도 그런대로 인구가 있다보니 나름 철도의 장사가 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1986년에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 시작되며 본격적으로 문경선은 몰락했습니다. 탄광 없는 가은선은 그야말로 깡시골 적자 노선이며, 문경선 역시 문경읍 거주 인구가 도시로 빠져 나가며 역시 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10년을 돈을 까먹으며 보낸 문경선과 가은선을 철도청은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1995년에 가은선 전체, 그리고 문경선에서 문경-주평 구간이 영업을 중단합니다. 점촌-주평 구간이 살아 남은 것은 주평역 근처에 쌍용양회 공장이 있어 화물 수요가 있었기 때문인데, 이 조차 2018년에 이 공장이 문을 닫으며 운영 중단이 되었습니다.
1980~90년대에 폐선(영업 중단)된 철도가 여기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문경선과 가은선은 석탄을 비롯한 광업의 몰락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사실상 박제가 되었습니다. 완전히 폐선된 가은선은 문경시에서 매입하여 레일바이크를 만들었지만 여러 문제가 터져 나오며(뱀이 튀어 나온답니다.) 영업이 또 중단된 안습한 상황이고, 문경선 구간은 그 조차 없었는데... 사실 이게 이유가 있습니다.
1995년에 문경선은 영업 중단이 되고, 가끔 들어오던 관광 열차도 2000년을 마지막으로 끝났지만, 그 사이에 문경선 부활(?) 가능성이 조금씩 타진되기 시작했습니다. 예. 중부내륙선 계획입니다. 1997년에 처음 운을 띄워 2003년에 공식적으로 예비타당성조차(예타)를 통과했습니다. 이 당시에는 부발-문경까지만 계획이 있었는데, 이것도 이래저래 계획은 뒤로 밀리고, 실제 공사를 시작한건 2015년이고 2021년 말에 겨우 충주까지 1단계 구간이 완공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11월 말에 이 문경까지 개통이 완료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문경역'의 부활이지 문경선의 부활은 아니죠. 실제 문경선의 부활은 앞으로도 8년은 더 걸립니다. 사실 이것도 문경선의 부활이라 할 수 있는지는 좀 의문이지만 말입니다. 문경부터 점촌까지는 아예 새 철도 노선을 깝니다. 위 지도를 보면 아시겠지만 기존 문경선은 당시 기술력이 영 부족해서 낙동강 지류인 영강을 끼고 놓다보니 무슨 철도에 헤어핀이 있는 그런 속도와 거리가 먼 선형을 갖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고속철도를 못 굴리니 아예 새로 선로를 놓는 것입니다.
문경까지만 가는 기존 중부내륙선의 경제성은 당시로서도 영 아니라 평가를 했는데, 실제로 판교까지 연장했음에도 영 이용객이 안 늘고 있는 것으로 이는 증명되고 있습니다. 이걸 경북선과 이어서 제대로 써먹자고 한 것이 2016년 이야기인데, 예타 통과를 한참 못 하다 2022년에 억지로 경북선 일부까지 함께 개량하는 것으로 하여 2032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동대구-김천-문경-청주-판교-수서행 SRT가 굴러갈 것입니다. 일단 2단계 개통 이후로 문경새재 관광객이 늘었다나 뭐라나 그러고 있습니다만, 그 효과는 조금 지나봐야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추신: 이번 주 온천이야기는 쉽니다. 그 이유는... 지난 주말에 온천을 안 갔기 때문입니다. 대신 다음 포스팅이 주말에 뭐 했는지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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