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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 보는 대한뉴스(40) - 대한민국판 타워링, 대연각호텔 참사

dolf 2025. 1. 22. 15:34

 

오늘은 고전적인 재난 영화 이야기부터 시작을 합니다. 젊은 분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중년 이상에게는 최소한 이름만이라도 들어본 화재 재난 영화의 대표작, 타워링(The Towering Inferno)입니다. 지금도 이를 뛰어 넘는 화재 관련 영화가 안 나왔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화재, 그것도 빌딩 화재에 대해서는 역사에 남는 영화입니다. 1974년 전 세계 흥행 1위를 기록하면서 대박을 치기도 했구요. 원래 비슷한 주제의 영화 두 편의 제작 계획을 하나로 합쳐 만들었고, 그 결과 공동 주연이 된 스티브 맥퀸과 폴 뉴먼이 서로 영화 내 비중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더라는 뭐 그런 이야기로도 나름 유명한 재난 영화의 역작 되겠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더 정확히는 영화의 원작이 되는 두 개의 소설(원래 두 영화 프로젝트이니 원작도 두 개입니다.)에 모티브가 된 사건이 있습니다. 사실 대도시 마천루에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은 어느 나라건 다 있고 실제로도 간혹 벌어지는 문제라서 특정 한 가지 사고가 모티브일 수는 없지만, 시기(1973~74년)적으로 가장 크게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여전히 대한민국 최악의 화재 사고로 분류되는 이 사고, 바로... 대연각호텔 화재 참사입니다.

 

화재를 조심해야 하는 한겨울, 화재가 얼마나 무서운지 이 사건을 되돌아 보며 불조심을 다시 한 번 외쳐 보시길 바랍니다.


 

 

일단 이 참사의 무대가 되는 대연각호텔부터 살펴봅니다. 가끔 사람들이 '마가 끼었다'고 여기는 장소들이 있습니다. 즉 무언가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곳들을 말하는데, 이 대연각호텔이 있는 사리도 그런 마가 낀 자리 가운데 한 곳입니다. 이 자리는 원래 일제 시대에 백화점이 있던 자리였고 일제가 패망할 때 까지는 그런대로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시작과 함께 마가 낀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백화점을 인수해 연 서울만물전이라는 백화점이 1946년에 화재로 완전히 전소되었고, 전쟁통이 끝난 뒤에는 캬바레가 들어섰지만 이 역시 1959년에 화재로 사라졌습니다. 이후 다른 캬바레가 들어섰다 이 땅을 지금도 있는 극동건설에서 매입해 사무용 빌딩과 호텔을 1969년에 세웠는데, 그 호텔 부분이 바로 대연각호텔입니다. 지하 2층, 지상 21층 규모라서 지금은 대형 건물은 아니지만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마천루였습니다. 사실 사대문 안에서는 조선호텔(현재의 웨스틴 조선 서울)이 있기는 했지만 이 당시는 4층이었고, 다음 해 18층으로 리모델링을 했기에 1969년 기준으로는 대연각호텔이 서울의 플래그쉽 호텔로 불릴만 했습니다.

 

이 호텔은 나름 돈 좀 만진다는 사람들의 결혼식장 등으로도 애용되었지만 외교의 장으로도 활용되었는데, 사대문 안은 지금도 그렇지만 각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이 많고 그래서 이러한 외교관들이 참여하는 행사도 많이 열렸고 이러한 행사를 위해 내한한 외국인 VIP들이 투숙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나름 대기업이 공들여 지은 서울의 플래그쉽 호텔... 이 호텔은 그렇게 1971년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고 참사가 벌어집니다.

 

먼저 불은 1층에 있던 카페에서 발생했습니다. 조사 결과 예비용으로 둔 LPG통에서 가스가 새 가스레인지의 불꽃에 닿아 폭발한 것으로 원인이 확인되었는데, 가스가 샌 원인까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그 가스통을 한 번도 검사받지 않았으니 가스통 불량으로 가스가 샜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1층에서 난 불이 건물 전체로 옮겨 붙는 데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한데, 건물 내부가 가연 물질 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호텔은 인테리어를 신경 쓰면서도 가연 물질을 줄이는 데에도 나름 신경을 쓰지만 당시는 그냥 모든 것이 다 가연성 물질이었습니다. 벽과 천장은 나무로 도배를 하고 벽지로 한지를 비롯한 불에 잘 타는 종이도 다수 쓰였습니다. 더군다나 당시는 소방 관련 규정도 제대로 된 것이 없어서 화재 시 탈출을 도울 수 있는 비상구나 완강기 등의 시설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 계단의 문도 방화문이 아니요, 스프링클러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습니다.

 

화재가 나고 얼마 되지 않아 실내 계단과 엘리베이터는 전부 불길에 휩싸여 객실 투숙객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탈출할 길이 완전히 막혔습니다. 그나마 저층에 있던 사람들은 옆 건물 옥상으로 뛰어 드는 등의 방법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높은 곳에 있던 사람들은 그 조차 불가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운명은 여기에서 정해졌습니다. 옥외 비상구도 없고 아래로 가는 통로는 전부 불길에 휩싸였고 옆의 사무동으로 가는 문은 전부 걸어 잠갔습니다. 그리고 옥상으로 피하고 싶어도 이 문도 잠가 놓았습니다. 그렇게 지옥도가 펼쳐졌고, 옥상 입구에서 20여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연기와 불길을 피해 고층에서 뛰어 내린 38명도 참혹하게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물론 소방관들은 모든 노력을 다해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하려 최선을 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역부족이었는데, 딱 한 대 있다는 사다리차는 7층 높이에 불과해 그 보다 높은 층에 고립된 사람들을 보면서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머리를 굴리다 못해 국궁 궁사들까지 동원해 탈출 로프를 활로 쏴 보았지만 리얼 월드는 판타지가 아니었습니다. 미 8군까지 지원에 나서 불길을 잡았으나 결국 수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에 총 166명의 희생자와 25명의 실종자를 냈습니다. 어떻게든 탈출한 사람은 100여명에 불과했습니다.

 

이 희생자 가운데는 자유중국(현재의 대만)의 공사나 튀르키예 대사관 무관같은 외교관도 있었습니다. 추가로 함께 붙어 있던 사무동으로도 불길이 붙어 여기서도 사망자가 꽤 나왔는데, 대표적으로 이 건물을 본사로 쓰던 호남정유(현재의 GS칼텍스)의 임직원 가운데 사망자가 4명이 나왔습니다. 외교관들도 투숙하던 호텔인데다 200명 가까운 사람이 희생된 대형 참사이기에 이 화재는 외국에서도 뉴스로 보도되었는데, 그래서 이 호텔 화재가 타워링의 모티브 가운데 하나가 된 것입니다.

 

사진 출처: 카카오맵

 

참고로 이 건물... 지금도 있습니다. 회현 사거리에 가면 고려대연각타워라는 빌딩이 있는데, 이게 바로 옛날의 대연각호텔입니다. 일단 건물 골조는 멀쩡했기에 화재 후 수리를 거쳐 호텔을 다시 오픈했고 이후 다시 인수를 거쳐 사무용 빌딩으로 거듭나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일부 국가 대사관이 입주해 있기도 하구요. 물론 이 화재를 계기로 소방 관련 규정이 바뀌어 지금은 스프링클러나 외부 대피 시설 등 화재 관련 대피 시설은 제대로 갖추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타워링의 주제곡인 'We May Never Love Like This Again'을 틀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이 곡... 아카데미 주제곡상 받은 나름 명곡입니다.

 

 

 

추신: 아, 그리고 이 대연각화재와 관련되어 알아 두어야만 하는 중요한 정치적인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불리한 일이 있을 때, 정치적으로 더러운 일을 하고 싶을 때 여론을 돌리기 위해 사건을 일으키거나 사건이 일어날 때를 고르는 것은 단순한 음모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발생하는데, 이 때에도 썬글라스 박은 내외국인이 희생되는 그 와중에서 자기 권력만을 탐한 더러운 짓을 벌였습니다. 대연각화재에 숨은 이 더러운 이야기를 조금 써 보고 마무리를 합니다.

 

썬글라스 박이 3선을 넘어 영구 집권을 꿈꾼다는 것은 조금만 눈치가 빠르게 돌아가는 사람은 다들 알고 있었습니다. 여당인 공화당 안에서도 4인방을 중심으로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이전에 다룬 바 있는 광주대단지사건, 그리고 실미도 사건을 계기로 정부에 브레이크를 거는 10.2 항명 파동이 벌어졌습니다. 이걸 그야말로 무참히 진압하면서 당내의 반대 목소리를 싹 없애버린 썬글라스 박은 밑준비로 12월 6일에 국가비상사태 선언을 하고 완전히 거수기로 전락한 공화당을 통해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즉 국보위법을 12월 21일에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이 정도면 조금만 정치적인 생각이 있어도 썬글라스 박의 독재가 안 떠오를 수 없다보니 크리스마스 이브의 경축 미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썬글라스 박을 내놓고 깠고, 이 중계를 썬글라스 박은 강제로 중단시켰습니다. 바티칸에 김수환 추기경의 목을 날리라는 협박장까지 보냈다고 알려져 있으나 바티칸은 '엿이나 많이 잡수시오'라고 대놓고 씹었다 합니다. 사실 추기경쯤 되면 바티칸 국적을 이중국적으로 주는데, 이런 사태가 벌어질 때를 대비해서입니다. 하여간 국보위법은 국가비상사태에 대한 법적 규정이 없는 것을 채우기 위함이었는나 국보위법은 그야말로 국민의 권리를 있는대로 제한하는 악법이라 야당에서는 총력 투쟁을 선언했는데, 이 국보위법을 대연각화재 참사로 어수선한 12월 27일 새벽에 날치기 통과를 시켰습니다. 그렇게 국민의 주요 권리를 제한하고 약 1년이 못 되어 썬글라스 박은 10월 유신이라는 친위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이 일련의 행동... 지금 구치소에서 배를 째고 있는 돼지 한 마리, 그리고 법원 습격의 진정한 배후로 지목되는 장위동의 적그리스도와 비슷하게 생각되지 않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