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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 보는 대한뉴스(18) - 삼천포로 빠질 수 없는 진삼선 이야기

dolf 2023. 12. 20. 14:49

철도의 왕국, 일본도 지금 시골의 인구 감소로 인하여 지방 철도의 폐선을 끊임 없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철도를 민영화(JR)할 당시부터 폐선할 것은 폐선하고, 지자체로 떠넘길 것은 떠넘겼지만 지자체라고 하여 별 수 있는지요? 이렇게 지자체로 넘어간 철도들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폐선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철도 폐선은 대한민국에서는 한 번 겪고 넘어간 이야기인데, 일본과 다른 점은 일제시대부터 내려온 간선이 아닌 경제 발전기에 만든 철도들이 폐선 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인구 구성 및 산업 구조는 정말 한 세대만에 급변하여 한 세대 전에 만든 철도 노선도 다음 세대에 가면 돈 잡아 먹는 물건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탄광을 폐광하자 수요가 사라진 가은선, 느려서 속터지는 수려선, 김신조의 테러로 경기도 북부 개발이 물건너가면서 쓸모가 사라져 봉인된 교외선 등 이유는 제각각입니다. 교외선 이야기는 이전에 대한뉴스 이야기에서 한 번 다룬 바 있으니 한 번 읽어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되짚어 보는 대한뉴스(6) - 기차가 가지 않아 슬픈 기찻길, 교외선

195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즉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이 한참 이뤄지던 시절에는 대한민국 국토는 10년이 우습게 휙휙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그 10년이 우습게 휙휙 쇠퇴한 것도 있었죠. 지방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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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아예 해당 구간에서 교통 수요가 순식간에 증발하거나 예상만큼 늘리지 못해 문제가 되었지만, 구간 교통 수요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폐선된 노선도 있습니다. 바로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진(?) 진삼선입니다. 시외버스에 그야말로 KO를 당해 사라진 진삼선이 오늘의 이야기 주인공입니다.


 

 

1960년대까지 대한민국의 중장거리 교통하면 '철도'를 당연하게 떠올렸습니다. 당시도 지금 기준에서는 철도의 평균 속도(표정속도)가 빠르지 않았지만 버스를 비롯한 도로 교통은 이 보다 더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서울 시내조차 포장이 안 된 도로가 넘쳤는데 국도라고 포장이 잘 되어 있었을지요? 그냥 대충 낸 비포장길을 국도나 지방도라고 해 놓았으니 버스나 승용차도 빠르게 갈 수 없었고 그것도 철도 못지 않게 돌아 갔으니 철도가 가는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철도가 버스보다 빨랐습니다.

 

당연히 나라에서도 철도 노선을 만드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당시 나라의 기간 산업이자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석탄과 시멘트를 캐기 위한 철도의 부설과 증설, 전철화도 그렇지만 이러한 자원이 없어도 지역간 연결을 위한 철도 건설을 꾸준히 했는데, 진삼선 역시 그렇습니다.

 

원래 진삼선의 뿌리는 1953년에 개통한 사천선이었습니다. 과거 사천군 읍내, 즉 지금의 사천시 사천읍 지역에는 사천공항이 있는데, 지금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겨우 제주도 가는 비행기 하나 뜨는 정도고 군공항으로 대부분 쓰이는 곳이지만, 전쟁통에 공군을 유지하는 군공항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 여기에 기름을 대주기 위해 철도를 놓은 것이 바로 사천선입니다. 이걸 더 남쪽의 삼천포시와 잇겠다고 추가 공사를 하여 1965년에 개통한 것이 진주-사천-삼천포 사이의 진삼선입니다

 

사천시청이 어디 있나~~ 보시면 정말 뜬금 없는 위치에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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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삼천포는 사천에서 분리될 때도 좀 어거지라는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나름 수산업으로 흥한 지역이었기에 그 당시로서는 사천읍보다는 더 발전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당시부터 사천과 삼천포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사천시로 통합한 이후에도 사천읍과 삼천포 지역은 서로 싸우며 서로의 지역에 시청을 놓는 꼴을 못 보겠다 하여 시청도 중간 어딘가에 놓는 엽기성(?)을 발휘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도농통합을 하는 과정에서 내부 지역 감정을 보이는 경우는 꽤 있는 편입니다. 아, 삼천포로 이야기가 빠질 뻔 했습니다.

 

하여간... 삼천포는 나름 발전한 지역이라서 여기에 철도를 놓을만한 수요는 분명히 있었고, 실제로 개통 직후 몇 년은 나름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잘 나갈 때는 하루에 400명 이상 기차를 타고 내렸는데, 하루 10만명 클래스를 자랑하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인기역을 기준으로 꺼내면 '저게 뭐야~'라 할 법 하지만, 지방 소도시에서 저 정도만 꾸준히 이용해도 경제성은 충분했습니다.

 

이 당시 삼천포로 가는 진삼선 열차는 경전선을 타고 지금은 복선화 이설로 사라진 개양역까지 복합열차(두 행선지로 가는 열차를 하나의 편성으로 묶어서 간 뒤 특정 지역에서 연결을 풀어 각각 가는 형태)로 운행했습니다. 복합열차는 특정 지역까지 한 편성으로 갈 수 있어 선로용량의 부담을 줄일 수 있게 해주는데, 지금도 호남선-전라선 KTX는 이런 복합열차로 운행하여 익산역에서 분리/결합하죠. 그런데 이걸 모르고 진주로 갈 사람이 삼천포 방향으로 갈 열차에 타고 있다면... 개양역에 섰을 때 재빨리 진주로 갈 열차로 옮겨 타면 다행이지만 깜빡 졸거나 멍하니 있다면... 진주가 아닌 삼천포로 가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예. '삼천포로 빠진다'는 그 사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이 이 진삼선 복합열차에서 나왔다는 것은 가설 가운데 하나고, 그 이외에도 진주로 가야 할 사람이 삼천포로 가서 장사를 망쳤다는 일화나 조선시대의 조운선이 바닷길을 잘못 들어 통영을 갈 배가 삼천포로 갔다는 이야기 등 이야기는 많습니다. 다만 공통적으로 '삼천포 지역에서 이 드립은 치지 말 것'이라는 점은 잊지 마셔야 합니다.^^

 

다시 또 삼천포로 빠질 뻔 했는데...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낳은 이 진삼선, 처음에 장사가 잘 되었다고 했는데 정말 계속 그랬다면 이 포스팅을 할 필요가 없죠. 진삼선의 봄은 정말 짧았습니다. 1970년대 들어 정부의 교통 정책이 도로 중심으로 바뀌고, 지방으로 이어지는 국도도 나름 포장을 하며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초에 이미 시외버스가 삼천포로 들어왔는데, 시외버스가 들어오자 진삼선은 그야말로 망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시외버스 개통 직후 바로 이용객이 반토막이 나기 시작해 몇 년 지나서는 하루 이용객이 50명 남짓에 불과할 정도까지 떨어졌습니다. 1974년에 이미 중간역 3개를 폐역했고, 그래도 버티지 못해 1980년에 진삼선 여객열차가 사라집니다. 진삼선 개통 15년만의 일입니다. 한 세대는 커녕 반 세대를 겨우 채웠습니다. 이후에는 어쩌다 화물열차가 들어온 것을 제외하면 방치 상태로 유지되다 1990년에 공식 폐선을 하고 맙니다. 정말 한 세대도 못 채우고 개통부터 폐선까지의 짧은 생을 처절히(?) 살았습니다.

 

물론 사천공항이 살아 있는 이상 기름을 보내야 하는 일은 계속 해야 했기에 진삼선 폐선 이후에도 사천까지는 구간이 살아 있었고 이걸 지금은 사천비행장선이라 부릅니다. 경전선이 이설된 이후에도 이건 살아 남아서 여전히 진주역에서 기름을 받아 사천공항에 대주고 있습니다. 다시 철도가 부흥하는 21세기에 들어 다시 삼천포까지 철도를 놓자는 이야기는 나오고 있지만 뭐 이건 아직 그냥 계획중인 이야기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