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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 보는 대한뉴스(19) - 리얼 탱크덕후 국가의 시작, K-1 탱크

dolf 2023. 12. 27. 12:47

오늘 대한뉴스 이야기는 나라 까고 정부 까는 이야기가 아니라 살짝 칭찬하는(?) 이야기입니다. 아, 이 시절의 통치자인 살인마 전대머리를 칭찬하는건 아닙니다. 이 인간이 잘 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라서 말입니다. 반란군놈의 새끼에겐 탱크를 몰고가서 머리통을 터트려줘야 하는게 맞는거죠.^^

 

북한이라는 거대한 위협이 존재하는 이상 대한민국의 군 구성과 예산은 육군 중심으로 굴러갈 수 밖에 없고, 육군은 보병 중심으로 구성하되 못 사는 나라의 군대가 최대한의 화력을 얻을 수 있는 포병에 투자를 하여 '화력덕후'의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그렇지만 '기갑'에 대해서도 꾸준히 관심을 가졌는데, 6.25때의 T-34의 공포는 잊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소총조차 고유 모델을 만들지 못하는 나라에서 기갑 장비까지 국산화할 수는 없었고, 대한민국 전용 '탱크'가 선보인 것은 1980년대의 일입니다. 그 첫 출발선에 선 모델이 지금 살펴보려는 K-1 전차입니다.


 

 

그런데 이 대한뉴스 내용에서 오해가 될 수 있는 사항은 좀 먼저 말씀을 드립니다. 저기 영상에서는 "88전차"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그게 '공식 명칭'이 아닙니다. 그냥 전대머리가 임의로 붙인 '별명'입니다. 이미 저 당시부터 공식 명칭은 'K-1'이었습니다. 전대머리가 올림픽 전후에 나온건 전부다 88로 갖다 붙이는 취미가 생겨서 저것도 88전차라고 별명을 붙인 것인데, 처음에야 저 이름이 꽤 불렸지만 전대머리가 백담사로 셀프 도망간 이후부터는 서서히 쓰는 사람이 줄어들어 이제는 저 이름은 나이든 분들 아니면 국내 정보를 제대로 모르는 해외에서나 저렇게 부르는 정도입니다. 이제는 언론에서도 K-1 전차로 제대로 불러줍니다. 저 조차 '비공식 별명'이었다 21세기에 들어서야 통상 명칭, 즉 공식 별명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여간... 국산 '땅크' 개발 계획은 전대머리가 아닌 썬글라스 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0월 유신이라는 폭거를 저지른 썬글라스 박은 하필 그 시기에 인권과 민주화를 강조하는 미국 카터 정권을 파트너로 만납니다. 당연히 대한민국에서 깽판을 치는 썬글라스 박과 대립각을 세울 수 밖에 없었으며 실제로 썬글라스 박이 궁정동에서 시바스 리갈을 앞에 두고 탕탕을 당하는 그 때까지도 미국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1960년대 후반부터 베트남전으로 통장을 탈탈 턴 미국이 닉슨 독트린을 내세워 '미국은 돈 없으니 동맹국은 알아서들 방위해라'고 방향을 틀면서 주한미군 감축을 진행했기에 더욱 불안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썬글라스 박은 미국이 대한민국, 정확히는 자신을 버리고 주한미군이 철수하거나 신무기를 팔지 않겠다 할 때를 대비하여 북한에 꿀리지 않는 국방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품었고, 마침 1975년부터 방위세를 걷으며 국방부에 예산 여유가 생겼기에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게 됩니다. 그걸 율곡사업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1981년까지의 1차 사업과 86년까지의 2차 사업으로 나뉘며 보통은 2차 사업만 율곡사업으로 부르고 이 2차 사업이 워낙 비리의 온상이어서 나름 유명하긴 했습니다. 전대머리 욕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기죠? 추가로 전대머리는 썬글라스 박이 나름 비밀리에 진행하여 성과를 본 백곰 지대지 미사일 사업을 정권 유지를 위해 그냥 뒤엎었다 땅을 치고 후회한 전력도 있죠.

 

1970년대 후반을 기준으로 육군은 M48 탱크를 주력으로 쓰고 있었고, 미군은 M60이 주력이었습니다. 예산에 여유가 생긴 육군은 M48을 나름 최신형으로 개량하면서 M60을 직도입하고 나중에 라이선스 생산을 할 생각으로 미국에 판매를 요구했습니다. 일단 M48은 나름 개량하여(M48A3K 및 M48A5K) 아직까지도 해병대 등에서는 쓰고 있습니다. 곧 퇴역할 처지긴 하지만요. 그런데... 차세대 주력으로 생각한 M60 판매를 카터 정권은 그냥 거부했습니다. 북한 대비 전력이 이미 충분하다는 이유 때문인데, 이미 이 시기부터 국군의 전력이 북한에 그렇게까지 뒤지지는 않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적이지 않은 썬글라스 박 정권을 믿지 못한 것이 배경일 것입니다.

 

이에 빡이 돈 썬글라스 박... 보통은 '씁 어쩔 수 없지'라고 하겠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미국거 안 사면 되지'라고 한 것입니다. 사실 서방에서도 탱크는 만들 수 있는 나라가 꽤 되는 편입니다. 프랑스도 있고 독일(서독)도 있고 영국도 있죠. 이 가운데 레오파르트1을 만든 서독과 접촉합니다. 사실 육군 내부에서는 아무리 서방 국가라 하지만 미국과 보급 체계가 다른 서독제 무기 구매에는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이는 정치적인 문제인데 어쩌겠습니까? 당시 서독도 1979년부터 레오파르트2를 배치했기에 레오파르트1 기반으로 뭔가 만들어주는 것에 딱히 부담은 없어 나름 협상이 진척되고 있었습니다.

 

이걸 본 미국이 그제서야 '아임 쏘리'를 외치고 새로운 카드, 즉 '완전 신형 한국형 전차 개발'을 제시했습니다. 아무리 카터가 썬글라스 박을 싫어했다고 해도 경제가 나름 성장하기 시작하여 10~20년 뒤쯤 되면 미래의 미국 무기 큰 손이 될 가능성이 있는 국가와 척을 지는 것은 미국 군수 산업 입장에서는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입니다. 이걸 프랑스나 서독, 영국 등에 빼앗기는 것은 미국도 원치 않죠. 당연히 서독보다는 좋은 조건을 제시해야 하기에 따끈따끈한 새 전차를 설계해주기로 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는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최선의 결과였습니다. 2세대 전차인 M60을 직도입/라이선스 생산했다면, 또 같은 2세대 전차인 레오파르트1을 기반으로 조금 뜯어 고친 것을 사왔다면 지금도 대한민국의 주력 전차는 이런 2세대 전차였을 것입니다. 열심히 개량은 했겠지만 그래봐야 3세대 전차 정도의 전투력이지 3.5세대급은 얻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배짱에 몸이 달아 오른 미국의 '3세대 전차 설계해 줄께'의 결과 대한민국은 현재 3~3.5세대 전차를 주력으로 한 리얼 화력덕후 국가가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최신예 전차, M1 에이브람스는 차세대 국산 전차의 기술적인 뿌리가 됩니다.(사진 출처: Wikimedia)

 

이 당시 미국은 M60과는 다른 차세대 전차, M1 에이브람스를 개발중이었으며, 이 개발사인 크라이슬러 디펜스(나중에 제네럴 다이나믹스에 팔려서 GDLS라는 이름이 됩니다.)가 대한민국의 차세대 전차 설계를 맡게 됩니다. 이 프로젝트를 ROKIT(한국형 전차)라 부릅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1년까지 준비를 거치고 육군의 요구 사항(ROC라 합니다.)을 확인하여 본격적인 탐색개발(프로토타입까지 개발) 단계에 진입합니다. 1984년에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이래저래 굴렸는데, 어디까지나 미국측은 이걸 설계만 해주지 생산에는 관여하지 않는 계약이라서 그 사이에 이 물건을 직접 만들어야 할 현대정공(현재의 현대로템)과 이걸 기반으로 차세대 전차 개발을 해야 할 ADD에서 열심히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워 왔습니다.

 

M1을 만들 때 들어간 기술의 상당수가 이 ROKIT에도 적용된 만큼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K-1은 M1과 생김새는 꽤나 유사한 편입니다.그렇지만 생긴것만 비슷하고 부품만 서방제지 그 개발 이념은 오히려 소련제 T 시리즈와 유사합니다. 이는 미국과 대한민국의 전장이 다르기 때문인데, 미국은 M1 개발 당시에 서유럽의 개활지에서 쓸 것을 전제로 했고, 이후에도 주로 사막 등 평지에서 전차를 굴렸습니다. 그래서 크기도 크고 피탄 시 방어력을 중심으로 설계했습니다.

 

그와 달리 대부분이 산지인 한반도에서는 피탐지성(즉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이 낮은 것이 중요하기에 크기는 상대적으로 작아야 했고 포탑도 낮아야 했습니다. 다만 이렇게 되면 포탑의 부양각(상하 각도)이 줄어서 숨어서 아래로 포를 쏘는 것이 좀 힘들어지는데, 이를 보완하고 산지 주행에 적합하게 유기압(유압+공압) 높이 조정 서스펜션을 도입했습니다. 엔진+변속기인 파워팩 역시 범용성은 좋아도 연비가 나쁜 M1의 가스터빈 엔진 대신 독일제 1,200ps급 디젤 엔진을 썼습니다. 미국제 파워팩을 쓰고 싶었고 실제로 M60의 후속 업그레이드용으로 만든 디젤 엔진이 있었지만 이걸 프로토타입에 썼더니 문제가 좀 많아서 독일산으로 갈아탄 것입니다. 이 결과 거주성이 떨어지고(즉 내부 공간이 좁음), 확장이 좀 제한되는 문제가 생겼지만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습니다.

 

꼬마 에이브람스, K-1은 확실히 높이만 봐도 M1보다는 낮습니다(역시 출처는 Wikimedia)

 

이렇게 전대머리 시절 내내 미국에서 열심히 지지고 볶아 설계하고 국내에서 열심히 생산 공장을 돌려대기 시작한 ROKIT, 즉 K-1 탱크는 1987년에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수기사, 즉 맹호부대를 시작으로 국내 기갑 부대들에 배치를 시작했습니다. 이걸 시점으로 대한민국 육군의 기갑 전력의 질은 확실히 북한을 찍어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K-1을 만들고 또 많이 만들어 1,000대를 찍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슬슬 성능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105mm L7A1 강선포였는데, 이건 M48 시리즈부터 써먹던 물건이라 당시로서는 무난했지만, 1990년대가 되면서 조금씩 아쉬워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에서 105mm 포를 그런대로 막을 수 있는 나름 검증된 탱크인 T-72를 양산하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화력 부족이 현실화하는 모습이었습니다.(실상 북한은 T-72 양산화는 못 했고, 21세기에 들어와서야 이 급의 전차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에 포 자체를 120mm로 바꿔버리자는 업그레이드 계획을 세워 120mm 포의 명품인 독일 Rh120을 라이선스하여 탑재한 후속 모델인 K-1A1을 500대 가까이 더 찍었습니다.

 

K-1을 업그레이드하여 K-1A1을 만든게 아니라 완전 신규 생산이며 그래서 기존 K-1과 K-1A1은 업그레이드에서 전혀 다른 테크트리를 탑니다. 기존 105mm K-1은 전자장비를 업그레이드하여 K-1E1이 되었고, 다시 이번에 엔진과 방어력, 생존성 등 크게 뜯어 고쳐 K-1E2가 될 예정입니다. K-1A1 역시 비슷한 내용으로 K-1A2로 업그레이드를 진행했습니다. K-2 흑표를 만들긴 했지만 이게 단가가 비싸서 그리 많이 만들지 못해 K-1을 당분간 계속 써먹어야 하는 문제 때문에 이런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는데, 다행인지 인류에게 불행인지는 몰라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K-2가 전 세계에 잘 팔리게 되면서 K-2 생산 단가가 낮아지면서 K-1, 특히 105mm 계열은 업그레이드 추가 필요성이 줄어들기는 했습니다. 

 

어떻게 되었건 미국이 낚여 만들어준 3세대 탱크, K-1은 우리나라에서 직접 탱크를 만들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고 이걸 만들고 업그레이드한 경험은 K-2라는 전 세계에서 손꼽힐만한 현용 탱크를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국산 탱크를 동유럽에 팔아먹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한 썬글라스 박도, 이걸 실제로 진행하던 시점의 전대머리도 여기까지는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지만 어찌 되었건 이들이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중간에 태클을 걸지 않은 결과 대한민국은 화력덕후, 전차덕후 국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