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해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정치테러, 일본에서는 지진에 비행기 사고까지 참 액땜을 제대로 하고 있는데, 새 해 시작의 대한뉴스 되짚어 보기부터 세상 욕하기로 들어가면 좀 거시기하여 오늘은 좀 소프트한 주제, 관광 이야기를 해봅니다.
자동차를 처음 지르면 여러 곳을 다녀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도시는 주변 풍광을 즐기는 드라이빙을 하기에는 영 좋은 도시는 아닙니다. 너무 곳곳이 도시화가 이뤄진데다 지정체도 심하죠. 그나마 새벽에는 고속화도로들은 잘 뚫리지만, 모든 사람들이 완간 미드나이트 팬이라 고속화도로에서 폭주를 즐기는 것도 아니구요. 그런 서울에서 나름 여유로운 드라이빙을 할 수 있는 구간이 있는데, 사실 나름 유명하다면 유명하지만 대다수의 서울시민에겐 '이름은 들어 봤는데 가본 적도 없고 어딘지도 모르는' 슬픈 도로입니다. 바로 '북악스카이웨이'입니다.
북악스카이웨이는 현재 '북악산로'의 일부 구간입니다. 서쪽으로는 자하문터널쪽에서 시작하여 북악산(구진봉)을 돌아 정릉 아래를 훓고 아리랑고개까지 갑니다. 옛 가요인 '아리랑낭낭'에 나오는 그 아리랑고개인지 여부는 넘어가고... 북악산로 자체는 저기서 더 동쪽으로 가서 고려대 윗쪽을 돌아 고대역까지 갑니다. 사실 서쪽으로도 인왕산로라는 도로와 이어져서 인왕산을 돌아서 사직까지 갑니다. 정말 여유가 되는 분은 이걸 풀 버전으로 달려 보시는 것도 좋죠.^^
1968년 10월에 개통한 이 도로는 대한뉴스에 나온 바와 같이 '관광 도로'라는 명분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관광 목적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목적이 있는데...
예. 이 사람과 관련이 있습니다. 썬글라스 박 각하 모가지를 따러 오신 분들로 인한 1.21 사태가 북악스카이웨이를 만들게 한 중요한 계기입니다. 이 분들의 활약(?) 덕분에 교외선과 경기도 북부 개발이 망해버렸지만, 청와대를 지키는 최종 방어선인 북악산은 좀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여기에 청와대를 방어할 수 있는 여러 군부대와 시설을 둬야 하는데 그것도 도로가 있어야 병력을 옮기고 장비도 옮기지 않겠습니까? 북악스카이웨이의 진정한 목적은 바로 이 것, 청와대 방어를 위한 여러 군부대와 거점을 잇기 위한 도로인 것입니다. 사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라서 청와대와 인접한 북악산 남쪽 부분에는 군부대(또는 국가정보원) 관련 시설이 있어 여기에는 주정차 제한 및 사진 촬영 제한이 붙습니다. 아, 겸사겸사 저 분이 망친 교외선 이야기고 읽고 가보세요~
물론 어디까지나 이 목적은 숨겨진(?) 목적이고 공식적인 목적은 북악산과 서울의 전경을 볼 수 있는 관광 도로는 맞기에 무려 '유료도로'로 만들었습니다. 개통 당시 통행료는 승용차 기준 50원인데, 대충 1970년 기준 서울시 시내버스 요금이 15원, 시내전화 한 통화 요금이 5원,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이 100원 정도 했으니 대충 지금 기준으로는 5,000원 정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비싸서 못 가겠다 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담이 없어서 매일 다니겠다 정도의 요금은 아니죠.
일단 개통 초기에는 '나름' 인기는 있었다고 합니다. 1970년 전후의 서울시에서는 놀 거리도, 볼 거리도 그리 없었고 사람들도 어디 멀리 구경을 나갈 상황도 못 되었습니다. 경부고속도로가 뚫린게 북악스카이웨이 개통 그 다음해니 정말 명절이 아니고서는 지방에 가기도 쉽지 않은데 그냥 눈 호강하겠다고 지방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었던 시절이죠. 제주도나 경주 등으로 신혼여행을 못 가는 신혼부부들이 택시를 빌려 여기를 신혼여행 겸해서 구경을 다녔다고 합니다. 경치 구경을 위해 만든 팔각정은 지금도 꿋꿋하게 이 길 가운데 버티고 있습니다.
팔각정 1층에서 그냥 맨눈으로 보면 북악산 뒤쪽(평창동, 구기동)쪽만 보이고, 팔각정 위로 올라가 카메라로 봐야 그나마 좀 서울 구경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서울 전경을 보기는 남산타워(지금은 N서울타워)가 좋지만 남산타워는 이 해 삽을 떴으니 6년은 더 걸려야 완공이 될 것이라서 팔각정 정도면 당시 서울 구경은 최고였겠죠. 스모그도 지금보다 적었을테니 더욱 그럴 것이구요.
그런데... 저 인기도 오래는 못 갔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나라의 경제 사정이 발전하면서 놀 거리, 볼 거리도 점차 늘었기 때문입니다. 1975년이면 저 위에 적은 남산타워도 개관하여 서울의 경관을 볼 수 있는 축이 옮겨졌고, 무엇보다 대중교통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북악스카이웨이(팔각정)와 달리 남산은 어떻게든 시내만 가면 걸어서 올라갈 수 있어 접근성의 차원이 다릅니다. 그 이외에도 서울에 볼 거리와 놀 거리가 늘면서 더욱 북악스카이웨이의 인기는 식어갔습니다.
결국 1976년에 강변북로 일부 구간에서 징수하던 통행료와 함께 무료도로로 전환했지만 그렇다 한들 이용자가 늘기는 어려웠습니다. 미아리나 길음동에서 서대문이나 홍은동쪽으로 가려고 해도 1971년에 북악터널을 뚫으면서 산을 뱅뱅 돌아가는 북악스카이웨이를 이용할 필요가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북악스카이웨이는 서서히 잊혀지는 듯 했는데... 1990년대부터 이 길은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합니다.
2004년 뉴스이긴 합니다만 1990년대부터 차량의 보급이 늘면서 공도 레이싱을 하겠다는 작자들이 이 길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서울의 아키나 고개 그 자체였습니다. 사실 경기도 주변까지 가면 지금도 공도 레이싱으로 나름 유명한(?) 고개들은 꽤 있지만 북악스카이웨이는 매우 좋은 접근성에 서울임에도 적은 통행량 등 이상적인(?) 공도 레이싱 코스였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팔각정은 이들의 소굴로 변했구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이런 공도 레이싱은 단속을 해봐야 그냥 그 때만의 일이라서 큰 효과도 없습니다.
이런 공도 레이싱을 막는 방법은 사실 정해져 있습니다. 일시적인 단속은 효과가 없으니 도로 자체를 뜯어 고쳐야 합니다. 중간중간에 중앙분리대(분리봉)을 놓고, 과속방지턱 도배를 하는 방법이죠. 자율주행 단계도 낮은 지금 세상에서 무슨 사이버 포뮬러를 하겠다고 리프팅 턴을 하시겠다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에는 과속방지턱 앞에서는 다들 얌전해질 수 밖에 없죠. 리프팅 턴이 아니더라도 차량 하부 박살은 못 피할테니까요. 이 방법은 북악스카이웨이에서만 통하는 방법이 아니라 이니셜D에 나오는 그 유명한 고개들에서도 다들 썼고 효과를 본 방법입니다. 사람 잡는 도로인 이로하자카도 저 짓 + 가드레일 증설 + 단속 증가로 문제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북악스카이웨이는 진짜 서울 안에서 조용히, 천천히 드라이빙을 하려는 사람이나 팔각정 데이트를 하려는 사람들, 그리고 자전거 동호인들이 어쩌다 찾는 길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자전거의 성지가 되어 버린 바람에 차로 갈 때는 이 자전거들을 조심해야만 합니다. 밤에야 거의 볼 일이 없지만 낮에 이 길을 갈 때는 자전거를 꼭 조심하셔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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