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성하지 않는 사람(정확히는 귀성에 걸어서 30분, 차로 10분 이하가 걸립니다.^^)은 얌전히 집콕하는 것이 예의. 그래서 이번 설 연휴는 목욕탕에 두 번 간 것, 그리고 새로 개통한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한 번 간 것 말고는 정말 집콕 모드라 온천이야기를 비롯한 쓸 거리가 없습니다.T_T 그렇다고 정치 이야기를 꺼내기도 좀 그러니 설 연휴 마지막날에 맞춰 이 설 이야기를 잠깐 해봅니다. 뭐 다들 아실 내용입니다만.
1989년 대한뉴스인데, '설날'이 1992년만에 되돌아 왔다는 것입니다. 정확히는 '양력 1월 1일'에서 '음력 1월 1일'로 돌아왔다는 내용입니다. MZ 세대 분들이라면 이게 뭔 소리인가 하겠지만 그 보다 조금만 윗 세대만 되어도 지금의 설날은 '구정' 또는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처음에는 들었던 날입니다. 지금은 반대로 양력 1월 1일을 '신정'이라고 부르죠.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권, 아니 꽤 많은 지역에서 음력을 썼습니다. 더 정확히는 동아시아권은 전통적으로 양력과 음력을 적절히 혼합한 태양태음력을 썼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날짜 계산은 음력을 바탕으로 하되 계절 구분이나 음력의 오차 보정은 양력을 쓰는 방식입니다. 24절기 구분이 이 양력 기반인데, 그래서 설날이 되기 전에 입춘이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국식 태양태음력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한반도나 일본에서도 널리 쓰였습니다.
그러다 일본은 서양 것이면 일단 받아들이고 본다는 메이지유신 시대에 닥치고 양력으로 전환했고, 기존 음력 기반의 명절을 그 날짜에 해당하는 양력으로 끼워 맞춰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일본의 영향을 받은 조선, 아니 대한제국 역시 1886년 을미개혁으로 양력 전환을 단행했습니다. 뭐 당시 정권이 을미사변으로 집권한 친일 정권이었으니 일본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었죠.
그렇지만 이미 수 천년을 음력(태양태음력)을 기반으로 살았는데 이걸 당장 양력으로 바꾸라면 익숙하지 않은 법입니다. 일본처럼 국민은 신민이라 위에서 닥치고 하라면 그냥 무뇌적으로 따르는 나라도 아니라서 더욱 그렇습니다. 대한제국이 무너지고 일제강점기가 되어 조선총독부는 강제로 명절도 일본식 양력으로 싹 바꾸고자 했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새로 제정하는 공휴일이나 서류상으로의 명절이나 가능한 것이었지 민간에서의 명절 행사는 그대로 음력을 기반으로 치렀습니다. 이것까지 일제도 막지는 못했습니다.
다시 시간은 흘러... 일제가 감자 두 방을 먹고 망한 뒤 대한민국이 이 땅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설날, 즉 새 해의 시작은 양력 1월 1일이었습니다. 당시 지배층이 친일 + 친미 구성이었으니 음력에 대해 딱히 좋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만, 어디까지나 설날(지금의 신정)은 그냥 공휴일이었지 이 때를 기준으로 세배를 하고 제사를 지내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군사정권에서도 이어진 이 친일 + 친미 성향 세력은 여전히 미국과 일본을 롤 모델로 따랐기에 음력 설을 낡은 문화라고 비하하고 양력만이 근대화의 상징이라고 밀어 붙였지만 일본과 달리 이 땅의 사람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그러면서 음력 설을 여전히 챙겼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정부 안에서도 음력 설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는 나왔지만, 정권이 친기업 성향으로 휴일을 늘리고 싶어하지 않는데다 지금까지 밀어붙인 것을 뒤집는 것도 폼이 나지 않아서 이 목소리는 힘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는 살인마 전대머리 시절까지 이어졌는데, 그나마 1985년에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음력 1월 1일이 하루 공휴일로 지정됩니다. 여전히 공식적인 설은 신정, 즉 양력 1월 1일이었습니다만.
한 번 음력 설이 공식적으로 휴일로 지정되자 아예 공식적인 설을 다시 과거로 되돌리자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고, 6공화국 때인 1989년에 드디어 음력 설이 되돌아 와 지금에 이르게 됩니다. 상황이 달라져 양력 1월 1일은 신정으로 하루 쉬는 날이 되었죠. 사실 명분도 있었던 것이 추석은 정부 수립 이후부터 계속 음력 8월 15일이었으니 설 명절만 양력으로 고집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설이 이름이 바뀌고 날짜가 바뀐 이 해프닝은 외국(서양)의 것이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믿었던, 그리고 일본의 것이면 다 좋은 것이라 믿었던 시절의 산물이며, 정부에서 아무리 홍보를 해도 수 천년동안 민간에 뿌리박힌 것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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