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게 없으면 등장하는 대한뉴스의 시간이 돌아 왔습니다.^^ 이제 또 불금이 돌아왔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서 뭐 즐기기도 지갑이 허전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주말에 쉬기 전에 불타는 밤을 보내려는 분들은 여전하기에 퇴근 길 도로는 꽉꽉 막힐 것이며 번화가는 밤에도 불이 밝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불금의 역사, 그리 오래된 거 아닙니다. 토요일에도 일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한 번 다룰 일이 있으면 다뤄보기로 하고... 불타는 '밤'이라는 것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도 모순점은 한두개가 아니지만 과거의 대한민국 사회는 더 많은 모순과 억압으로 가득했습니다. 그 가운데 국민의 기본 권리 가운데 하나인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했던 대한민국의 암흑기가 있었는데, 그 암흑기의 대표적인 정책, 야간통행금지가 오늘의 주제입니다.
대한뉴스 자체는 '밤에 일해야 하는 서민을 위해 야간 통행증이라는 것을 끊어 준다'는 내용입니다. 부카니스탄도 아니고 뭔 넘의 야간에 통행증이 필요하냐구요? 이런 시절이 있었다는걸 모르신다면 부모님이나 조부모님께 물어보시면 되겠습니다. 부모님 세대까지만 해도 밤에 함부로 집 앞으로도 나가지도 못했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그 넘의 '통금' 때문입니다.
사실 밤에 어디 나다니지 못하게 한 역사는 매우 길며 나름 세계적인 역사입니다. 범죄를 막는 것도 있지만 노예(노비)나 먹고 살 길 없는 농민들이 야반도주를 하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입니다. 인권이고 나발이고 없던 근대 이전에는 서민은 정말 착취의 대상일 뿐인 개돼지 취급이었죠. 항공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공항 관련으로 많이 듣는 커퓨 타임(Curfew Time)의 커퓨라는 말이 야간통행금지를 의미합니다. 조선시대에도 남자들은 초저녁부터 새벽까지는 긴급 상황을 제외하면 집콕을 해야 했고, 낮에도 어디 못 나가는 여성들은 반대로 초저녁에만 한정으로 나다닐 수 있었습니다. 이걸 어기면... 잡아다 두들겨 팼죠. 나름 이 제도를 엄격하게 적용했는지 조선왕조실록에는 윗분께서 노비와 함께 통금을 어긴걸 윗분만 풀어줬다고 해당 윗분이 노비를 가둔 실무자를 처벌하라고 나랏님께 뻗대다 오히려 나랏님께서 빡이 돌아 높으신 분과 체포 실무자 둘 모두의 옷을 벗겨버린 일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시간은 흘러... 일제시대도 가고 대한민국이 들어섰는데, 대한민국 헌법은 제헌헌법부터 거주, 이전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었습니다. 즉 이사가는 것 말고도 어디 놀러가는 것에 대한 자유도 부여한 것입니다. 그런데 웬걸... 미 군정 시절부터 야간통행금지를 걸었습니다. 역시 맥아더는 대한민국에 득보다 실을 더 준 인물 맞습니다. 그나마 이 때는 서울같은 대도시만 걸었지만 이번에는 김일성과 런승만 각하가 합작하여 태클을 걸었습니다. 6.25 이후에 야간통행금지가 전국으로 확대된 것입니다. 런승만 각하를 빨아주는 영화가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하지만 통금의 전국 확대는 런승만 각하 작품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런승만 각하 치세에서 통금이 유지된건 물론이고, 장면 민주당 정권에서도 이건 안 달라졌습니다. 당연히 썬글라스 박 각하 시절에 통금이 없어질 리는 없죠. '빨갱이' 한 단어면 없던 명분도 생기던 시절이니까요. 대충 썬글라스 박 각하의 쿠데타를 기점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통금 체제가 완성되는데,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입니다. 시위가 나거나 하면 이걸 더 연장하기도 했고, 썬글라스 박 각하가 시바스 리갈을 앞에 놓고 흉탄에 저 세상으로 떠났을 때에도 잠시 연장이 이뤄졌습니다.
만약 이걸 어기고 밤에 야깅(?)을 뛰다 경찰에게 걸리면 어떻게 될까요? 일단 '예비 도둑놈' 취급을 받으며 경찰서로 질질 끌려와서 조서를 쓰고 유치장에 박혀 있다 해가 뜨면 범칙금 내고 풀려났습니다. 비싼 국립 여인숙(?)인 셈입니다. 사실 여기까지가 보통인데 정권이 사람 목숨은 개돼지 목숨 레벨로 취급하던 저 시절에 가끔 좋게 안 끝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바로 정부가 저지른 범죄 행위에 말려드는 경우입니다. 바로 삼청교육대같은 것입니다. 삼청교육대나 그 이전의 대한청소년개척단같은 정부가 저지른 납치 행위의 피해자 가운데는 이렇게 통금때 잡혀온 그냥 평범한 시민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냥 실적 채우기에 희생된 것입니다. 이러면... 몸 망치고 인생 망치고 인생 쫑나는 것이죠. 하지만 이걸 저지르고 처벌받은 윗분들... 한 분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밤에도 나다녀야 할 일이 아예 안 생기지는 않습니다. 속된 말로 아이가 아프고 부모님이 아픈데 응급실도 못 가게 해서 사람이 죽게 내버려두면 그게 나라인가요? 당시로서는 장거리 교통의 전부라 할 수 있는 기차로 상경하는데 이 기차가 10시에서 한참 전에 도착한다는 법도 없죠. 정부가 시민 납치해서 노예로 부리는 시절이지만 닥치고 모든 사람들을 처벌하고 납치하면 나라가 빵 터지죠. 그래서 늘 예외 사항이 있었습니다. 응급실 뛰어가는 사람은 경찰 보면 사정을 설명하면 임시통행증이라는 것을 끊어 줬고, '떠나가는 새벽 열차 대전발 0시 50분'을 타고 목포에 도착하는 사람은 역에서 임시통행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진짜 저럴 때만 써먹을 수 있었기에 임시통행증을 용도외로 쓰거나 위조하면 처벌이 좀 셌죠. 그 이외에도 그냥 바람 쐬러 대문 열고 집 앞에 섰다고 유치장에 쳐넣지는 않았고, 시골에서는 마을 입구 가게에 막걸리 한 주전자 사러 나온 정도는 봐주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다 아는 사람들이라서요.
그리고 통금에서 예외가 되는, 즉 정기적인 통행증이 발급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경찰이나 군인은 당연한 것이며 야간에 근무해야 하는 공무원, 왕진을 가야 하는 의사, 각하는 싫어해도 민주주의 간판 때문에 막지 못하는 기자들은 일회용이 아닌 정기 야간 통행증을 갖고 다녔습니다. 그 이외에도 명절 등에는 일시적으로 전체 통금이 풀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야간통행금지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는데, 일단 명분이 간첩이라서 간첩이 올 일이 없는 동네들은 통금을 유지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해군이 부실한 차원을 넘어버린 북한이 쳐들어 올 일도 없는 제주도나 울릉도를 시작으로 북한 공비가 내려오기도 힘든 내륙 충청북도가 1965년에 통금이 사라집니다. 그 다음해에는 관광 진흥을 이유로 경주나 온양온천 등 일부 지역이 통금이 사라집니다. 충북만 전체가 통금이 없다보니 충북과 도계를 접하고 있는 지역은 통금 전까지는 충북 외 지역에서 놀다 통금이 될 때 충북 도계 안으로 쏙 들어와 통금을 피하는 꼼수가 전설처럼 내려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서울과 경기도를 비롯한 대도시에서 통금이 풀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덤으로 통금이 있다고 퇴근을 일찍 시켜주지도 않았고 통금 시간까지 집에 못 도착하니 숙직실에서 자며 야근하라며 일만 더 시켰죠. 통금을 이유로 데이트하던 연인들이 여관으로 향하는 것은... 뭐 오래된 클리셰입니다.
그 이후로 큰 변화 없이 유지되던 통금은 썬글라스 박 각하도 저 세상을 가고, 광주의 학살자 전대머리가 집권하자 좀 달라집니다. 정통성 따윈 개나 주라 하는 기네스급 쿠데타 주범 전대머리는 일단 광주에서의 학살을 통해 억지로 민심을 억누르긴 했지만 없는 정통성의 한계를 계속 힘으로 누를 수는 없었기에 억압을 좀 풀어주는 유화책도 취합니다. 그 결과물이 일명 3S이며, 3S를 촉진하는 과정에서 연 행사가 국풍81입니다. 국풍81을 하면서 서울의 통금을 풀었는데, 반응이 나름 좋자 1981년 연말을 기점으로 전국의 통금을 폐지합니다. 이후에는 북한에서 간첩이라도 넘어오지 않는 이상 국내에서는 들을 수 없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국풍81이 뭔지 궁금하시면 이미 한 번 다룬 바 있기에 읽어 보심 도움이 되겠습니다.^^
추신: 사실 통금 이야기가 나오면 당시에 세트로 나오는 이야기가 미니스커트 단속과 장발 단속인데 이건 대한뉴스 시리즈가 계속되는 이상 언젠가는 다루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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